전쟁 파도치는데 방향타 잃은 韓 외교

<뉴시스>
中 기존 방향 선회에 한반도 전쟁 가능성 대비
유사시 즉시 투입 가능한 해병사단 창설 배치
강대국에 둘러싸여 헤매는 외교…‘코리아 패싱’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한반도에 전쟁 먹구름이 드리워진 형국이다. 중국 전문가와 관영 매체에서는 한반도 전쟁위기론을 언급하고 있고, 전쟁에 대비하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그간 한반도 전쟁불가론을 고수했던 기존 입장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한반도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 배치 결정 이후 한·미·일과 북·중·러 간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일촉즉발의 상황이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 같은 ‘살얼음판’ 한반도 정세를 풀 수 있는 ‘키’(key)인 외교는 방향을 잃은 듯 헤매는 실정이어서 국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한반도 문제에서 정작 한국이 제외되는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이란 용어까지 등장할 정도다.
 
사드 배치와 중국의 사드 보복, 상존하는 북한의 도발 가능성과 소녀상을 둘러싼 한·일 갈등 등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엄혹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중국이 한반도 전쟁을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라 제기됐다.
 
中 국제학자
“무력 충돌 가능성 ↑”

 
왕하이윈(王海運) 중국국제전략학회 선임 고문은 지난달 21일 관영 매체 ‘환구시보’에 게재한 기고문에서 최근 한반도에서 무력 충돌 발생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언급은 최근 동북아 3국을 순방한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고 말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왕 고문은 기존의 한반도 전쟁 불가 원칙을 내세우면서도 전쟁 위기가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우선 “중국은 한반도 문제와 중요한 이해관계가 있는 관련국으로서, 한반도 위기의 평화적 해결을 끊임없이 추진해 왔고 ‘무핵(無核), 불란(不亂), 불전(不戰)’의 3대 원칙에 따라 6자회담 재개를 추진해 왔다”라고 밝혔다.
 
이어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와 한미 대규모 군사훈련을 동시에 중단하는 ‘동시 중단 구상’, 북핵 폐기와 평화협정 ‘투트랙 구상’을 제안했다”며 “동시 중단 구상과 투트랙 구상은 한반도 위기해결의 정확한 해결책임이 분명하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한미 양국과 북한은 모두 멈춰 서지 않고 있다. 중국 측의 제안이 한반도 긴장 국면을 진정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가 됐고, 한반도에 새로운 전쟁이 발생할 위기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며 “중국은 북핵, 남북대치, 사드 문제를 해결하는 한편, 한반도 상황이 통제에서 벗어나 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왕 고문은 특히 한반도 전쟁 발발 시를 가정한 중국의 구체적인 대응 계획도 제시했다. 그는 ▲중국군 북부 전구(戰區) 병력의 북중 접경지역 전진 배치 ▲해군·공군·로켓군의 타격 준비 ▲대규모 난민 유입에 따른 난민센터 마련 ▲핵무기 사용에 따른 핵 확산 예방 대책 등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2월에도 중국 관영 영자誌 ‘글로벌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중국은 한반도에서 최악의 시나리오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며 “미국이 F-22 스텔스 전투기를 비롯한 전략자산을 잇따라 한국에 전개함에 따라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돼 심각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게 중국 전문가 다수의 진단”이라고 밝혔다.
 
기존 방식과 배치…왜
정세 변화로 원칙 깰 가능성

 
이 같은 중국 매체의 잇따른 전망은 최근 중국이 한반도 정세 문제를 기존과 다른 접근 방식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간 중국 관영매체나 관변학자들은 대부분 한반도에서 전쟁 발발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2006년 북한의 첫 핵실험 이래 여러 차례 한반도에 긴장 국면이 발생했고 때론 전투 상황까지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모두 전쟁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는 게 주요 근거였다.
 
하지만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데다 협상을 통한 해결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중국의 대(對) 한반도 정책의 세 원칙 중 하나인 전쟁 불용 원칙을 유지해나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도 지난달 20일 중국발전고위급포럼에서 한반도 향후 정세를 두 가지로 전망했는데, 하나는 양측의 대립이 격화돼 최종적으로 충돌 심지어 전쟁 상황까지 치닫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각 당사국이 모두 냉정을 찾아 정치외교적으로 해결 궤도로 돌리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 중국이 전쟁 발발 가능성에 대비하는 듯한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중국이 지난달 한반도 유사시 바로 투입 가능한 해군 육전대(해병대) 사단을 창설한 것으로 밝혀졌다. 홍콩 시사월간지 경보(鏡報)에 따르면 중국군 동부전구와 북부전구의 육군 집단군 소속 각 1개 사단이 1월과 3월에 해군 산하로 들어가 육전대 사단으로 탈바꿈했다.
 
이들 사단은 병력과 편제 등 일체가 해군 예하로 편입돼 동해함대와 북해함대의 일선 전투부대로 재배치됐다. 이에 따라 중국은 해군의 남해함대를 포함한 3대 함대 모두 해군 육전대 전력을 보유하게 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또 지난해 초 중국군은 과거 7대 군구(軍區)를 5개 전구 체제로 개편했다. 이는 소규모 전구급보다 대규모인 전역급(戰役級) 전투를 대비함을 뜻한다는 게 전문가들 얘기다. 아울러 중국군은 장교의 계급제도 개선과 전역 연령 유연화 등에 초점을 맞춘 2차 개혁에 나설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세기의 정상회담’이 열렸다. 하지만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지난 6일(현지시간) ‘사건’이 터져 세계를 긴장케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플로리다 주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시 주석과의 만찬회동 직후 전격적인 시리아 공습 감행을 지시한 것이다.

북한 문제를 두고 중국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이 북핵 문제를 앞장서 해결하지 않는다면 ‘무력’으로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그간 후순위로 밀려 있었던 ‘선제타격론’도 부상할 조짐이다.
 
정작 한국 ‘소외’
차기 정부 리더십 주목

 
문제는 한반도에 주도권을 가지고 나서야 할 우리나라가 정작 북핵 문제에 소외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미·중 정상회담, 미·일 정상통화 등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정작 한반도의 당사국인 한국은 정상 간 논의에 끼지 못해 ‘코리아 패싱’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건으로 국가 리더십은 부재 상태고, 엄중한 한반도 정세를 풀어갈 외교는 무력한 모습이다.
 
물론 군사적으로 한미 동맹은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다. 올해 한·미 연합합동훈련은 대규모 화력훈련을 전개하며 북한의 도발에 대한 한미동맹의 응징 의지를 과시하는 중이다. 지난해에는 유사시 해상 교두보를 확보해 북한 지역에 상륙한 뒤 내륙으로 진격, 평양을 최단 시간에 함락하는 시나리오를 상정한 한·미 연합상륙훈련을 경북 포항에서 실시했다.
 
하지만 안보와 함께 한반도 정세를 풀어갈 핵심 축인 외교 문제에 있어서는 힘을 쓰지 못하는 실정이다. 예컨대 지난달 23일 미국 백악관은 일본 주재 미국대사를 임명함으로써 ‘한국을 뺀’ 동북아 3강(중·일·러)의 트럼프 행정부 외교라인 인선을 완료했다.

초기 트럼프 정부에서 한반도 문제가 가장 중요한 외교·안보 문제로 부상하고 있는 데도 정작 주한 미국대사 인선만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마크 리퍼트 전 대사가 임기를 마친 지난 1월 이후 3개월째 공석 상태다. 이처럼 공석이 길어지는 건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별 관심이 없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달에는 취임 후 한국을 첫 공식 방문한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정부의 만찬 요청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외교적 관례에 비춰볼 때 양자회담을 하게 되면 오찬 또는 만찬으로 이어지는 게 일반적이지만, 결과적으로 일본, 중국과는 가진 만찬을 한국과는 하지 않았다.

틸러슨은 이후 “한국으로부터 요청이 없었다”고 밝혔으나, 정부 측 주장과 배치돼 현 정부와는 깊은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위안부’ 문제로 일본과의 외교마찰도 심각한 상황이다. ‘소녀상 이전’ 문제를 두고 양국이 갈등을 빚으면서 언제 어떻게 실마리가 풀릴지 요원한 상태다. 부산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에 반발해 일본으로 돌아갔던 나가미네 주한 일본 대사는 지난 4일, 85일 만에 복귀했다.

대선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그 어느 때보다 외교·안보에 대한 차기 정부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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