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인 출산 때 휴가 주고, 소득공제·건강보험도 적용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정부가 동거를 결혼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공론화했다. 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춘 동거도 법률적으로 결혼과 동등한 혜택을 받게 해준다는 것. ‘동거관계 등록제’의 도입을 통해 우리 사회의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 동거인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없애겠다는 취지에서다. 이미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비슷한 형태의 제도를 운영해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전통적 유교문화의 영향 때문에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과연 외국처럼 동거도 가족의 한 형태로 인정받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유교적 전통의 영향으로 ‘가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아직까지도 보수적인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최근 가족에 대한 인식 변화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2008년 호주제가 폐지되고 가족관계등록부를 도입한 점이나 재혼 가정 자녀에게 어머니의 성(姓)을 쓸 수 있도록 한 사례 등은 전통적 가족 인식을 극복하고 가족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촉구하는 혁신적인 조처였다.

지난 3월 31일, 기획재정부 내 민간 전문가들로 이뤄진 중장기전략위원회가 4차 산업혁명, 인구구조 변화 등에 대한 중장기 대응전략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나온 ‘동거관계 등록제’도 그러한 가족에 대한 인식변화 추세와 맥을 같이 한다.

위원회는 이날 사회적 차별과 함께 저출산 문제 해결 방안의 하나로 ‘동거 차별 해소’를 건의했다. 일정한 요건을 갖춘 동거에 대해 기본 소득공제 혜택을 비롯해 자녀 출산 시 배우자의 출산휴가 혜택, 건강보험 부양·피부양 관계 인정 등의 제도적 혜택을 주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결혼하지 않아도 아이를 낳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라면서 “비혼은 물론 한부모가족과 같이 동거도 다양한 가족 형태의 하나로 받아들여 사회적 수용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 관계자는 또 포용적 가족관을 우리 사회가 받아들이면 동거로 인해 포기되는 출산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지난 10여년 간 평균출산율 1.3명 미만의 초저출산이 지속되는 우리 사회가 가까운 미래에 닥칠 ‘인구절벽’에 대비하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결혼이 부담되는 사회
‘동거’가 늘고 있다

 
우리 사회에 동거가 증가하고 있는 현상은 경제적 어려움과 궤를 같이 한다. 특히 청년실업이 늘면서 결혼적령기에 이른 이들은 막대한 결혼비용 부담으로 결혼을 포기하는, 이른바 ‘비혼(非婚)’ 동거족들이 크게 늘고 있는 것.

역대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었지만 번번이 실패해 온 정책이 바로 ‘저출산 대책’이다. 출산율 감소를 막기 위해 보육 투자를 비롯해 각종 대책을 마련, 지원해왔지만 출산율은 해가 갈수록 감소 추세를 나타냈다.

이번에 위원회가 동거에 대해 결혼에 준하는 혜택을 주기로 한 것은, 저출산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만혼(晩婚)’과 ‘비혼’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그간의 저출산 극복 대책들의 경우 기혼자들의 출산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초점이 맞춰졌지만 결과적으로 그 성과는 미미했다. 따라서 그동안 저출산 대책의 핵심이었던 ‘재정을 통한 보육 지원’ 프레임에서 ‘출산을 늘리는 방향으로의 사회적 인프라 구축’이라는 프레임으로 선회할 전망이다. 비혼 동거인들에게 결혼에 준하는 혜택을 줌으로써 이들의 출산을 독려하는 방안이 거론된 것도 이 같은 흐름에 맞춰진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동거관계 등록제’의 도입을 통해 반드시 결혼을 해야만 출산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려는 의도도 있다. 경제적 부담으로 결혼을 포기하고 동거를 택하는 이들이 고민하지 않고 출산을 선택할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자는 것.

이와 관련해 동거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변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프랑스, 스웨덴, 캐나다 등 일부 선진 국가들의 경우 동거를 가족의 한 형태로 받아들이고 있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동거에 대한 인식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올해 초 한 결혼정보회사의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46.9%가 10년 후 가장 보편적인 가족 형태로 동거를 꼽았다.
 
사회 분위기는
아직 ‘동거’ 금기시

 
하지만 유교적 전통이 공고한 우리 사회에서 아직까지 동거는 ‘금기’에 가깝다. 특히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출산을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부정적 인식이 극도로 강하다.

통계청이 조사한 ‘2016 사회조사’에 따르면, 결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절반이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답했고 동거에 대해서도 48%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반면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는 75.8%가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

그 때문인지 정식 혼인관계 외의 상황에서 태어난 신생아 비율이 50% 이상인 프랑스 등 서구국가들에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는 채 2%가 되지 못할 정도로 적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 우리도 동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이와 동시에 우리 사회가 동거가족의 안정된 생활이 가능한 기본적 토대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와 관련, 1999년 ‘시민연대협약’을 도입해 동거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면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한 프랑스의 사례가 우리나라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견해가 많다. 프랑스의 경우 1993년 출산율 1.66명으로 OECD 국가들 가운데 최악의 수준을 나타냈지만 시민연대협약 제도 도입 후 2.08명까지 오르는 등 큰 효과를 봤다.

한 여성 문제 관련 전문가는 동거와 관련된 보호 장치 마련에 대해 범국가적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하며 비혼 동거 인구에 대한 정확한 통계와 실태조사가 우선돼야 한다고 귀띔했다.

정부가 저출산 대책 차원에서 ‘동거관계 등록제’ 도입을 공론화하면서 동거인들에 대한 관심의 눈길은 늘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는 게 중론이다. 위원회의 이번 ‘동거관계 등록제’ 도입은 문제 제기의 차원일 뿐 구체적인 로드맵이나 정책 방향을 정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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