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검찰, ‘6·15 이후 최대 간첩 조직’ 규정
피의자들 vs 공안당국이 벌인 氣 싸움의 연속


2007년 민주노동당 분당의 계기를 제공한 ‘일심회’ 사건은 2006년 하반기 정치판에 친북(親北)논쟁을 불러왔던 간첩단 사건이었다. 검찰이 ‘6·15 이후 최대 간첩조직’이라고 규정했던 일심회는 장민호(미국명 마이클 장)씨가 주축이 돼 최기영 전(前) 민노당 사무부총장과 이정훈 전 중앙위원, 손정목, 이진강 씨 등이 조직원으로 가입된 단체로 ‘모두 한마음이 돼 통일을 이룩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단체. 검찰은 이들을 국가보안법상 간첩, 특수잠입, 탈출, 이적단체 구성 등 혐의로 2006년 12월 기소했다.

검찰 기소 내용에 따르면, 이들은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직접 또는 이메일 등을 통해 지령을 받아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협상, 평택 미군기지 이전 등을 반미(反美)운동에 활용하려 하고 민노당 방북대표단 및 당직자 성향 분석, 각종 선거동향 등 국가기밀을 북한에 넘긴 것으로 돼있다. ‘일심회’ 사건은 당시 김만복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에 대한 2006년 11월 20일 국회 정보위의 인사청문회를 통해 상당 부분 윤곽을 드러냈다.

김 후보자는 “장민호 씨 등 5명 모두 ‘간첩죄’를 의율(구체적인 사건에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지만 ‘간첩단’ 사건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고 답변함으로써 국정원 수사의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발언은 검찰에서 진행 중인 일심회 사건의 수사 방향을 간접적으로나마 읽게 해줬다는 의미를 가졌다.

국정원은 장 씨 등의 ‘간첩’ 혐의를 밝혀낸 만큼 ‘간첩단’ 여부를 규명하는 것은 서울중앙지검 공안수사팀의 몫이라는 얘기였다. 당시 검찰은 수사 진행 상황 등을 일절 언급하지 않았지만 압수물 분석 등을 통해 ‘일심회’ 조직이 지시·명령 체계를 갖추고 일사불란하게 임무를 수행한 ‘간첩단’인지를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됐다.

국정원이 ‘간첩’ 혐의를 추가해 송치했다고 해도 검찰이 기소나 공소 유지 등을 책임져야 하는 만큼 증거를 재확인하고 피의자의 진술을 얻어내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됐다.

■ 국정원이 밝혀낸 혐의

김만복 후보자는 장 씨 등에 대해 “체포할 때는 잠입·탈출 혐의였지만 송치할 때는 간첩단이란 용어는 없는 대신 간첩 혐의자들로 송치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실무자들은 자신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정원은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 장 씨는 북한에 들어가 노동당에 가입한 뒤 지령을 받아 일심회를 조직하고 조직원들을 포섭해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촉하도록 주선한 혐의(국가보안법상 잠입·탈출과 회합·통신)를, 또 다른 4명은 북한 공작원을 만난 혐의(회합·통신)를 적용했었다.

따라서 김 후보자의 발언은 장 씨 등을 20일 동안 수사하면서 국가보안법 4조1항의 ‘국가기밀 탐지·수집·누설·전달 또는 중개’ 등 간첩 혐의를 더할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국정원은 사건 초기 피의사실이 외부로 흘러나가고 구속자들이 단식을 단행하거나 묵비권을 행사하는 등 수사에 협조하지 않아 심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이들로부터 압수한 USB 저장장치 및 컴퓨터 디스켓에 들어있는 파일 등을 분석해 모종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였다. 국가기밀을 암호화해 북한에 보고하거나 이메일을 통해 북한 공작원과 송·수신한 정황 등을 찾아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였다.

일심회 사건 수사는 변호인의 조언에 따라 묵비권을 행사하는 피의자들과 이들의 간첩 혐의를 밝히려는 공안당국이 벌인 기 싸움의 연속이었다. 검찰은 장민호 씨 등에게서 압수한 문건을 토대로 피의자들을 추궁했고, 민노당원인 최기영·이정훈 씨를 제외한 이진강·손정목 씨가 장 씨와 연계성을 시인했다고 한다. 당시 마라톤 수사는 변호인 접견권 등을 둘러싼 각종 논란거리와 함께 흥미로운 뒷얘기도 많이 남겼다.

■ ‘지령-보고’ 퍼즐 맞추기 주효

장씨는 체포된 다음날 오후 변호사를 접견한 뒤부터 묵비권을 행사했고 뒤이어 구속된 피의자들도 입을 닫아버리는 바람에 수사는 한 걸음을 내딛기 힘든 상황이었다. 검찰은 국정원이 장씨 등에게서 압수한 방대한 분량의 문건을 날짜별로 정리하면서 북한의 지령과 그와 짝은 이루는 보고 문건을 찾는 데 주력했다.

퍼즐 맞추듯 특정 지령과 이에 상응하는 보고 문건을 찾아낸 뒤 이를 근거로 피의자들을 추궁하자 그들 중 일부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고 수사팀 관계자가 전했다. 서로 같은 암호 체계로 이뤄진 문건도 이들의 혐의를 입증할 주요한 수단으로 사용됐다.

예를 들어 장 씨와 손 씨가 주고받은 지령-보고 문건의 암호가 일치하면 이는 두 사람이 내통했음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로 봤다는 것이다. 여기에 검사 1명이 피의자 1명을 전담해 장시간 면담하면서 인간적인 신뢰를 쌓은 점도 피의자들이 조금씩 이야기를 털어놓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 단체 성격 놓고 난상토론

일심회의 실체를 규정하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였다. 국정원이 일심회를 반(反)국가단체로 송치했지만 검찰은 일심회가 국가변란을 직접 도모했다는 증거가 없어 이적단체로 결론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간단하지 않았다. 2차장검사 산하 공안 1.2부 검사 15명은 기소 시한을 나흘 앞두고 한자리에 모여 난상토론을 벌였다.

1980년대 이후 70여 건에 이르는 반국가단체와 이적단체 관련 판결문을 분석한 성과를 토대로 논의한 결과 반국가단체가 아닌 이적단체라는 의견이 절대 다수로 나타났다. 이런 결론을 도출한 데는 장 씨가 “남북이 현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느슨한 형태의 연방제를 거쳐 통일돼야 한다. 남한의 자본주의 체제가 변해서도 안 된다”고 말한 점이 크게 작용했다.

■ 초라해진 북한 공작금

예상보다 적은 공작금은 북한의 경제난을 반영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과거 냉전시기 남파간첩들이 받았던 공작금 규모에 비춰 너무 초라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일심회원들은 북한 공작원을 만나면서 고작 여행경비 수준인 200만~300만 원밖에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장 씨가 북에 보낸 보고 문건에는 공작금을 더 보내달라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 노무현 대통령 당선 정확히 예측

장 씨가 북에 보낸 보고문 중엔 2002년 대선 결과를 정확히 예측한 문건도 들어 있어 수사팀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대선 당시 노대통령 당선을 선거일 1개월 전에 정확하게 예측해 북에 보고한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특히 북한이 장 씨에게 보낸 지령 가운데 ‘장군님(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일심회 조직원들을 천금같이 여기고 있다’고 밝히는 등 일심회 활동을 높이 평가한 내용도 있다고 공안당국 관계자는 전했다.

윤광제 작가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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