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발전·민주화 경험 동남아와 공유해야
韓·미얀마 관계 긴밀화, 미국의 이익에도 부합


[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새 정부 출범이 임박했다. 다음달 10일 오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19대 대통령 선거 당선자를 공표하면 그 순간부터 새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한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으레 정부조직 개편이 이어진다. A부처와 B부처를 합쳐 C부처를 만들기도 하고 D부처를 E부처와 F부처로 쪼개기도 한다. 역대 정부에서 흔히 본 모습이다.

그렇지만 정권 변화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는 부처도 있다. 외교부와 국방부가 대표적이다. 외교부는 그 수장이 어느 나라에서나 최선임 각료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경제·사회 두 부총리가 있어 다소 예외적이지만, 외교-내무-재무-국방으로 이어지는 각료 서열은 대부분 민주 국가에서 공통적이다. 특히 외교는 어느 국가에서나 가장 중요한 국무(國務)다. 그런 까닭에 미국 외교장관은 아예 이름부터 국무장관(Secretary of State)이다.

한국 외교가 약체라는 사실은 그간 국내외 언론이 꾸준히 지적해 왔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정(性情) 자체가 외부 세계의 변화에 민감하다기보다 국내 사정에 관심을 집중하는 편이다. 이런 국민성이 우리나라 외교 행태에 그대로 투영됐다고 보는 전문가가 적지 않다. 당장 눈앞의 현실에 매몰되는 것은 외교에서는 금기다.

신정부 출범을 앞두고 한국 외교, 그 가운데 특히 대(對) 동남아 외교의 강화를 주문하는 서양 정치학자의 글은 이런 측면에서 신선한 충격을 던진다. 워싱턴에 있는 한미경제연구소(KEI)에서 펴내는 학술논문집에 최근 발표된 에세이 ‘미얀마에서의 한국 - 네피도행(行) 열차를 놓치고 있는가?’가 그것이다. 네피도는 미얀마의 수도다. 2005년 11월 미얀마 군사정부가 수도를 양곤에서 핀마나로 이전한 뒤 2006년 3월 새 수도의 이름을 네피도로 정했다.

네피도는 ‘황도(皇都)’라는 뜻이다. 이 에세이의 필자는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 있는 중부유럽대학교(Central European University: CEU) 국제관계학과의 마테오 푸마갈리 조교수다. CEU는 그저 그런 대학이 아니다. 대학원 중심 대학으로 사회과학·인문학·법학·공공정책학·경영학·환경공학·수학을 가르친다.

학생 1500명은 100개국에서 모인 사람들이다. 교수 300명의 출신지도 30여 개 국이다. 무엇보다 이 학교는 ‘헤지펀드 계(界)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헝가리 출신의 미국인 부호 조지 소로스가 1991년 설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소로스는 모국 헝가리에 CEU를 설립하기 위해 8억8000만 달러(약 1조 원)라는 거금을 기부했다. 그럼 이제 에세이를 따라가 보자.

한국이 미얀마에 관심을 갖는 것은 주로 이 나라의 경제적 자산, 즉 값싼 노동력, 인구 5100만 명의 시장, 그리고 풍부한 천연자원 때문이다. 하지만 미얀마에는 이 나라가 한국을 위해 발휘할 훨씬 더 큰 전략적 역할이 있다. 미얀마에 대한 한국의 경제적 진출
은 광범하며 한국은 이 나라의 중요한 경제 동반자로 떠올랐다.

2013~2015년 한국의 미얀마에 대한 경제원조는 5000만 달러이며 미얀마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10대 지원국 명단에 올라 있다. 2010년 이래 양국 간 교역은 3배로 늘어 2015년 8500만 달러를 넘어섰고, 한국은 미얀마의 6번째 수입대상국이 됐다. 한국은 미얀마의 10대 투자국이며, 미얀마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 10개국 가운데 4번째로 한국이 투자를 많이 하는 나라다. 하지만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한국의 대(對)미얀마 개발원조는 적은 편이다.

서양과 아시아 국가들이 앞다퉈 미얀마에 원조를 제공하려 들었지만 정작 미얀마는 프로젝트를 소화할 능력이 모자라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2014년 현재 미얀마의 주요 수입 대상국은 중국(42%), 태국(20%), 싱가포르(10%)다. 한국의 비중은 3.8%다. 이 나라의 주요 수출 대상국은 중국(32%), 태국(31%), 인도(9.2%)이며 한국은 순위로 9번째, 비중으로 4.9%다.

미얀마에 대한 한국의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1억7000만 달러로, 싱가포르(43억 달러)와 중국(33억 달러)에 크게 뒤진다. 한국은 경제력을 활용해 더 크게 전략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한 미얀마에서 영향력을 키울 수 없다. 최근의 지정학적 사태 전개를 감안하면 지금이야말로 미얀마에서 한국이 그 역할을 평가할 최적의 시점이다.

트럼프 정부는 미얀마의 정치 변동(군부→민간정부), 인권 문제(소수민족 탄압), 국내 불안·저개발에 별 관심이 없다. 한국 자체가 트럼프 정부의 최우선 관심사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국보다는 북한과 중국이 주요 관심사가 될 것이다. 바로 이런 문제들 때문에 한국은 미국에 자국의 전략적 중요성을 환기시킬 필요가 있으며, 그 목적을 위해 미얀마에서의 자국의 증대되는 존재감을 이용할 수 있다. 미얀마는 미중 관계라는 프리즘을 거쳐 미국에 보일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동남아에 관심이 있되 그 지역에 직접 관여하기를 꺼리는 것을 감안할 때, 한국은 자국의 존재감이 중국의 의심을 북돋울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미얀마에서 더 큰 역할, 그리고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부합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군부 독재에서 민주정부로 나아가는 미얀마가 필요로 하는 모든 자원을 갖추고 있다. 정치적·역사적 부담에서 자유로운 한국은 미얀마로 하여금 한국을 서양국가들보다 선호하도록 만들 수 있다.

미얀마 정부는 미국과 긴밀한 군사적 관계를 추구할 처지도 아니고 그럴 의사도 없다. 장비·훈련 측면에서 미얀마 군부는 미국을 직접 끌어들이지 않으면서 한국과의 안보협력에서 이득을 취할 수 있다. 이것 말고도 한국은 더 광범하고 집중적인 개발 프로그램 참여, 정부 인력교류 등을 통해 미얀마에서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 무일푼에서 거부가 된 한국은 여러 면에서 전환기를 겪는 나라들에 경험을 전수할 법한데, 어찌된 셈인지 한국은 이 분야에서 놀랍게도 자제력을 보여 왔다.

현실정치(realpolitik)에 압도된 한국은 사실상 중국과 구분할 수 없게 돼 버렸다. 이렇게 된 데에는 ▲그때그때 정권의 입맛에만 맞추는 근시안적 외교정책 ▲외교 상대방에 대한 낮은 전문성과 정부-학계-재계 간의 대화 결여라는 두 요인이 있다. 동남아 전문성이 있는 이화여대·한국외대·부산외대가 아니라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외교부가 선호하는 것도 문제다. 한국의 대(對) 미얀마 관계는 한국 외교의 더 광범한 추세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한국은 네피도 행 열차를 놓칠 처지가 아니다.

곽상순 언론인  ilyo@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