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보수 지지층 PK 무응답 많은 추세
- 여론조사상 우위가 선거 결과와 일치할지는 판단하기 힘들어

 
현 시점 여론조사상에서, 치열하게 달아올랐던 문재인-안철수 양강 구도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추격세가 다소 꺾이면서 조정되는 추세다. 안철수 후보의 하락 원인에 대해선 TV토론이나 교육 공약 등을 지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지지층 구성의 문제가 컸다고 볼 수 있다. 비교적 균질하고 충성도가 높은 지지층을 가졌던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는 달리, ‘반문정서’만을 공유하는 안철수 후보의 지지층은 쉬이 결합한 만큼 쉬이 해체도 가능했다. 안철수 후보 본인의 카리스마가 그다지 강하지 않다는 사실도 한몫했다.
 
보수층 응답 않고 무응답 '다수'
 

하지만 추세는 보이지만 실상은 오리무중이다.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 비해 얼마나 뒤지는지가 여론조사마다 달리 관측되기 때문이다. 10% 이상 벌어졌다는 조사도 있는 반면 여전히 박빙에 가까운 여론조사도 있다. 그렇기에 정말로 뒤지고 있기는 한 건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안철수 후보가 무섭게 치고 오를 때 일부 문재인 지지자들이 언론과 여론조사 기관을 문제삼은 것과 비슷한 심리일 수 있지만, 여기엔 구체적인 근거가 있다. 이른바 ‘샤이 보수’ 현상이다.

‘샤이 보수’란 말은 2016년 미국 대선에서의 ‘샤이 트럼프’ 현상에서 유래했다. 한국에서도 ‘어대힐’(어차피 대통령은 힐러리)이란 말이 유행했을 정도로 확정적으로 보였던 여론조사상 선거 예측를 뒤집고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후 본인이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은 몇 프로의 유권자를 ‘샤이 트럼프’라고 지칭하면서 예측 실패를 설명하는 논의가 나타났다.

이 담론을 한국에서 처음 적용한 이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 청와대의 측근들이었다. 그들은 여론조사에 잡힌 여론을 부정하고 ‘샤이 박근혜’가 상당수 있을 거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렇게 큰 격차에서 ‘샤이’를 주장하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니기 어려웠다.

이 선거전에선 얘기가 다르다. 보수층의 표심이 여론조사에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는 가설은 많은 여론조사 기관 관계자들이 하는 것이다. 지표로 봐도 대구·경북이나 60대 이상 노년층 등 기존 보수 지지층의 비율이 높은 집단에서 무응답층이 예전보다 현저하게 높게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현장에선 이 집단에서 여론조사 응답을 채집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심지어는 대선 여론조사가 아닌 경우에도, 경북 지역에서 여론조사 응답을 얻어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ARS 음성이 들리면 바로 끊어버리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현재 여론조사의 적합도에 관한 논의는 주로 유선인지 무선인지, ARS인지 면접인지 등 방식의 문제에서 나온다. 집전화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주로 중노년층이기 때문에 유선 비율이 높으면 보수가, 무선 비율이 높으면 진보가 과잉 대의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ARS라면 편하게 자신의 견해를 밝히지만, 전화 면접일 경우 주변에 말하기 민망한 견해는 밝히지 않는다고도 한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엔 밝히기 어려운 견해는 주로 보수층에 해당한다.

지금은 유선이나 면접 비율이 높은 조사에서도 문재인 후보가 안철수 후보를 앞서는 흐름이 뚜렷하다. 그러면 일단락된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조사방식을 넘어 아예 응답을 하지 않는 이들의 의중을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침묵한 이들이 투표권 행사를 사실상 포기한다면 선거 결과는 여론조사에 근접하게 나올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정말로 ‘샤이 트럼프’ 현상의 그 유권자처럼 투표의 결심을 단단히 했지만 침묵한 경우라면 얘기가 다르다. 이들의 규모가 얼마나 될 것인지가 문제가 되고, 십프로 이상의 격차가 수프로의 박빙 우세, 수 퍼센트의 격차는 선거 결과가 뒤집힐 수도 있는 초박빙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샤이 보수' 적극 구애 못하는 안철수
 
여론조사의 정확성은 결국 결과를 통해 검증될 수밖에 없다. 선거를 치르지 않은 시점에서 어떤 방법론이 정확하다고 누구도 단언할 수 없는 이유다. 유권자들은 여론조사 기관에 대해 언론과 유사한 방식으로 공정성을 불신하기도 한다.

그러한 불신이 전적으로 부당한 건 아니지만, 한국의 여론조사는 여러 가지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오히려 다양한 실험이 어려운 지점이 있다. 2016년 총선처럼 엄청난 예측 오류가 터져야 앞다투어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는 식이다.

나날이 변화는 사회 환경과 매번 다른 유권자의 심리 사이에서, 이번 여론조사가 최적의 방법으로 수행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만 그래도 총선이나 지방선거보다는 대선에서 여론조사의 정확도가 더 높았다는 추세를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전체 유권자 기준으로 볼 때 대구·경북의 인구는 10%, 60대 이상 인구는 25%가량이 된다. 그리고 이들 중 16~19%, 거의 20% 가까운 비율이 무응답층으로 분류된다. ‘샤이 보수’의 선택은 문재인과 안철수 후보의 승부에서 마지막 변수가 될 수도 있다.

다만 역전극을 노려야 할 안철수 후보로서는 이들에게 대놓고 구애를 할 수 없다는 것이 부담이다. ‘샤이 보수’층의 마음을 얻기 위한 행보를 구체적으로 보이다간 문재인 후보와 분할하고 있는 호남 지지층 등 야권 성향 지지층의 이탈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안 후보로서는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지 않으면서도 문 후보에 대한 상대적 우위를 증명해야 하는 어려운 싸움이다. 최근 그가 TV토론 등에서 고전하는 이유는 그 딜레마를 명확하게 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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