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여론조사에서 ‘무응답’은 투표 참여로 봐야 할까, 불참으로 봐야 할까.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숨기는 것일까, 아무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일까. 여론조사의 신뢰성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은 바로 이러한 ‘무응답’을 해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응답층의 대부분은 보수층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다가오는 5월 9일, 이들에게는 세 갈래 길이 놓여 있다. 첫째, 정체성을 지켜 홍준표 후보를 선택하는 것. 둘째, 문재인 후보의 당선만은 막기 위해 안철수 후보에게 ‘전략적 투표’를 하는 것. 셋째, 끝내 투표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들의 결정에 따라 ‘양강 구도’로 고착화된 대선 지형에서 지각변동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샤이(shy) 보수층’ 앞에 놓인 세 갈래 길
- 홍준표냐 vs 안철수냐 vs 기권이냐… 선택은?


각 정당들이 여론조사에 드러나지 않은 ‘숨은 표심’을 잡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정치권이 ‘숨은 표심’에 주목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4·12 재보궐 선거이다. 선거 결과 자유한국당은 ‘보수의 심장’ TK의 6개 지역에서 바른정당에 전승을 거뒀다. 놀라운 ‘싹쓸이’였다.

지금껏 언론과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외형상의 민심은 자유한국당을 외면하는 듯 보였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 보니 그 안에는 ‘샤이(shy) 보수층’이 이미 결집해 있었다. 이번 재보선에서 유일하게 국회의원을 뽑은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 선거구에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재원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당선된 것이 이를 방증하는 대목이다.

“지지율에 반영되지 않은 ‘보수 몰표 지역’ 있다”

민주당은 4·12 재보궐 선거 직후 한국당이 선전한 것은 숨은 보수층 때문이라는 분석을 담은 내부 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상호 민주당 선대위원장은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여론조사를 보면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적게는 1% 포인트, 많게는 10% 포인트 차이도 나지만, 지지율에는 반영되지 않은 ‘보수 몰표 지역’들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여론 조사에 숨겨진 몰표의 함의가 고통스럽고, 그에 대한 대책을 어떻게 마련할지가 큰 과제”라고 ‘샤이(shy) 보수’의 존재를 인정했다.

이번 대선이 지난 대선과 다른 점은 보수층의 무응답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지난 2012년 대선 한 달 전인 11월 21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에서 후보 지지를 밝히지 않은 무응답층은 40대가 20.0%, 광주·전라가 21.0%로 가장 높았다. 그러나 60세 이상은 13.0%, TK는 8.0%에 불과했다.

반면 지난 4월 12일 한국일보가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40대의 무응답은 4.0%에 불과했다. 광주·전라 역시 4.5%에 그쳤다. 그러나 60세 이상에서는 16.2%로 집계됐다. TK도 17.8%였다. 두 여론조사의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모두 바로 이러한 ‘무응답층’ 공략을 위해서 연일 ‘보수의 심장’ TK를 찾는 것이다. 이들은 TK의 ‘무응답층’이 결국 선거 막판이 되면 ‘보수의 대표’에게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국민의당과 안 후보를 ‘민주당 2중대’, ‘보수 코스프레’라고 비판하는 등 안 후보가 ‘진짜 보수’가 아니라는 점을 집중 부각하는 점도 바로 이러한 판단에서다.

“무응답층, 선거 당일 결국 투표장으로 향할 것”

그렇다면 이들의 바람대로 여론조사에 무응답하고 있는 TK와 60세 이상 부동층이 선거 당일 투표권을 행사하면서 안 후보가 아닌 보수의 손을 들어줄까? 이에 전문가들은 ‘자부심’이 높은 보수층이 현재까지는 무응답, 안철수 후보 지지 등으로 떠돌고 있으나 결국엔 ‘제 집’을 찾아올 것이라고 평가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보수층에 ‘사표방지심리’가 작용해 안 후보를 지지하거나 여론조사에 무응답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선거 당일까지도 이들은 고민할 것이다”라면서도 “그러나 결국 이들의 자존심이 안 후보를 찍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계자는 또 보수층의 여론조사 무응답이 결국 투표 당일 기권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일각의 전망에 대해서도 “이들은 ‘강경 보수’라는 비난에도 대한민국 산업화와 발전을 이끌었다는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거의 모든 선거에서 투표에 참여한 무응답 보수층은 결국 투표장으로 향할 공산이 크다”고 일축했다.

특히 그는 “지난 2012년 대선과 얼마 전 4.12 재보선 결과만 놓고 보더라도 ‘보수층의 무응답=선거 당일 기권’이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9일 열렸던 2차 TV토론회에서는 보수층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국가보안법과 주적 개념 등 색깔론 프레임이 재등장했다. 이 자리에서 문재인 후보는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북한이 우리 주적인가? 주적?”이라고 묻자 “그런 규정은 대통령으로서는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끝내 ‘주적’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무응답층은 대부분 보수층이다. 보수층에게 문재인 후보는 절대 피하고 싶은 ‘최악’이다. 그나마 ‘차악’이라 판단한 안 후보는 2차 TV토론회에서 햇볕 정책의 의도가 좋았다고 말했다. 유승민 후보는 지난 4·12 재보선 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보수층에게 ‘배신자’일 뿐이다. 공직선거법상 여론조사 결과 발표가 금지되는 ‘암흑의 6일’이 지난 선거 당일,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반전’ 결말이 일어날 수도 있는 배경이다.

고정현 기자  jh0704@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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