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보수의 딜레마’... 돌파구 있나?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보수층이 안철수 후보를 두고 ‘딜레마’에 빠졌다. 보수층에게 문재인, 홍준표 후보는 각각 ‘최악’과 ‘최선’이다. 그런데 ‘최선’인 홍 후보의 지지율이 좀처럼 상승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보수의 딜레마’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보수층에는 ‘최선’에 욕심을 부리다 자칫 ‘최악’을 마주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최악’만은 피하기 위해 ‘차악’인 안철수 후보를 택하자니 이 역시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안 후보가 보수층의 ‘차악’이 아닌 홍 후보를 대체할 ‘차선’이라며 애써 합리화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보수 진영에서 활발히 활동해온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전 월간조선 편집장·대표이사 사장) 역시 [일요서울]과의 전화통화에서 “‘보수의 딜레마’는 ‘최악이냐 차악이냐’이다. 차선이 있다면 이는 좋은 선택 아닌가. 둘 다 보수에겐 나쁜 선택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설상가상으로 ‘보수의 딜레마’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가능성이 희박한 ‘최선’과 자존심 상하는 ‘차악’ 중 하나를 선택해도 자칫 보수층이 완벽히 결집하지 못해 지지층이 둘로 갈라진다면 이 또한 문 후보에게 어부지리를 선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수층이 사면초가에 빠졌다는 지적이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安, 자신을 둘러싼 세력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나?
- 홍준표 찍으면 문재인 된다던 ‘홍찍문’, ‘홍찍홍’ 조짐

 
‘장미 대선’의 관전 포인트는 ‘프레임 대결’이다. 대통령 탄핵 사태로 인해 60일 만에 치러지는 대선이다. 정책과 공약보다는 ‘구도 싸움’에서 승패가 결정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보수 진영은 ‘4자 구도’를 기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보 진영의 표가 분산되고, 보수 진영이 결집할 수 있어 ‘진보 vs 보수’ 프레임으로 몰고 갈 수 있어서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4자 필승론’을 내세우며 바른정당에 ‘러브콜’을 보내는 배경도 같은 맥락이다. 홍 후보는 지난 17일 대구를 찾아 “좌파 3명, 우파 1명이 겨루는 이 선거에서 우파가 지면 낙동강에 빠져 죽자”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안풍(安風)에 분열되는 보수
 
그러나 지금까지 상황만 보자면 홍 후보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 보인다. 19대 대선에 불어 닥친 안풍(安風)은 철옹성 같던 ‘문재인 대세론’을 단번에 무너뜨렸다. 그런데 안풍(安風)을 만든 주인공은 아이러니하게도 보수층이었다. 홍 후보의 지지율이 밑바닥을 맴돌자 기존의 보수층이 ‘최악’인 문재인 후보의 당선만은 피하기 위해 ‘차악’인 안철수 후보를 선택하는 현실적인 판단을 내리면서다. 야권보다 오히려 보수층이 분열되고 있는 것이다.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본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철수를 선택하자니 자존심이 상하고, 홍준표를 선택하기에는 너무나 위험천만한 상황이다”라며 “보수 분열뿐만 아니라 이렇게 되면 자칫 보수의 투표율이 낮아질 수도 있다. 이 역시 아주 치명적이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기존의 보수가 그나마 합쳐지지도 못하고 사분오열돼 있는 사실이 안타깝다”며 “보수가 이기기 위해서는 한군데로 몰아줘야 한다. 100% 모이게 되면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저지할 수 있겠지만 사실상 분열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보수의 분열은 이미 20대 총선에서 시작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 때 방점을 찍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조 대표는 통화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사태와 작년 총선 이전의 이념지도를 보면 그 당시에는 보수층이 40%, 진보층이 35%, 중도층이 25% 정도 고정적으로 유지됐지만 최근 보수층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진보층과 중도층이 커졌다. 다자구도에서 보수는 필패할 것이다”라고 홍 후보의 ‘4자 필승론’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특히 그는 보수 분열의 결정적 계기인 박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언론의 난’이라고 못 박았다. 그는 통화에서 “선동 언론에 의해서 국민이 뽑은 정권이 무너졌다. 언젠가 언론이 이 사태에 대해 반드시 책임질 날이 올 것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언론은 오보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보가 밝혀졌을 때 정정을 해야 하는 데 그렇지 않았다. 거짓말의 산을 만들어 박 전 대통령을 짓눌렀다”며 “언론은 오만했고 저널리즘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이념적으로도 좌편향돼 있다. 대한민국은 껍데기는 민주주의지만 언론의 선동에 의해서 선동적 대중정치가 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은 언론이 주도했고, 이후 갈 곳 잃은 보수층이 ‘최악’만은 피하기 위해 ‘차악’인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기 시작했다는 게 조 대표 발언의 골자다.
 
정치권 역시 보수 후보 지지율 정체 현상을 가리켜 보수층의 ‘전략적 투표’라고 분석하고 있다. 좋아하고 지지하는 후보를 선택하는 ‘선호 투표’가 아니라 가장 싫어하는 후보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차악 내지 차선을 선택하려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安 선택은 ‘전략적 선택’인가 ‘최악의 수’인가
 
다만 정치권은 안 후보에 대한 보수 유권자의 지지가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안 후보에 대한 보수층의 지지는 대안적 지지일 뿐이고 실제로 투표장에서 투표로 연결되는 지지는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안 후보를 둘러 싸고 있는 박지원 대표와
 
최근 실시된 4·12 재·보궐 선거의 결과는 이 같은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겉으로는 보수층이 안 후보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듯했지만 ‘보수의 심장’ TK 지역 민심은 변함이 없었다. TK 전 지역을 자유한국당이 싹쓸이했다. 친박계로 분류된 김재원 전 청와대 정무수석도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또한 지난 19일 JTBC에 따르면, 여론조사기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18~19일 이틀간 전국 성인 1천200명을 대상으로 차기 대선 후보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문재인 후보 42.0%, 안철수 후보 31.8%로 조사됐다. 문 후보 지지율이 4.0% 포인트 오른 반면, 안 후보 지지율은 6.5% 포인트 급락했다. 특히 홍준표 후보는 지난주 대비 2.0% 포인트 상승한 8.5%를 기록했다.
 
아울러 여론조사기관인 한국갤럽의 분석에 의하면 이른바 ‘집 나간 집토끼’로 설명되는 안 후보를 지지하는 보수 표심은 대체적으로 반기문 전 총장의 지지층이었다. 이후 반 전 총장의 중도 포기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안희정 지사로 옮겨갔다가 이후 황 대행의 불출마, 그리고 안희정 후보의 경선 탈락으로 다시 안철수 후보로 이동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즉 안 후보를 지지하는 보수층은 정치 지형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 이동할 여지가 있는 유동층일 뿐이고 이는 ‘집 나간 집토끼’가 언제든 ‘제 집’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있음을 뜻한다.
 
조 대표는 통화에서 홍 후보의 지지율 상승이 그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홍 후보가 아닌 안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결국 ‘사표방지심리’ 때문이다”라며 “이는 다시 말해 홍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해 15%정도라도 기록한다면 안 후보의 표는 선거 날 당일 예상보다도 더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퇴 후 일방적지지 선언이 현실적인 방법”
 
다만 홍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해 안 후보에게 옮겨갔던 보수층이 홍 후보에게 되돌아온다고 해도 보수층의 ‘딜레마’는 여전히 남아있다. 보수층이 자칫 안 후보와 홍 후보 둘로 양분되면 제일 큰 이득을 보는 사람은 문재인 후보가 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조 대표는 최근 ‘홍준표-안철수 연대’를 주장하고 나섰다. 그는 통화에서 “안 후보는 누구와도 손을 잡지 않고 혼자 힘으로 대통령에 당선되겠다고 했지만 선거는 약속대로 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안철수 후보 지지율이 37%에서 떨어지고 홍준표 후보 지지율이 15%까지 접근해 문재인 집권이 확실해지면 안-홍 두 사람에게 연대하라는 압력이 가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연대 명분으로는 지역구도 타파를 꼽았다. 조 대표는 “안 후보 지지율은 호남과 TK에서 상당하다”며 “안 후보가 홍 후보 지원을 받으면 경남, 부산, 울산 지역에서도 과반 득표할 가능성이 있다. 경상도 전라도, 두 지역은 오랫동안 대통령 선거 구도의 양대 축이었다. 격렬한 지역구도가 극복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이 선거 연대해서 당선되면 그 이후 국회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도 국민의당과 자유당이 협치 구조로 갈 가능성이 있다”며 “40여 석인 국민의당으로는 국정 운영이 어려울 것인데 선거 과정에서 반문 연대 구도가 만들어지면 향후 국정을 협치로 끌고 갈 수 있는 구도가 만들어진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안 후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세력인 박지원 대표, 정동영 의원, 천정배 의원 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며 그들이 대북 정책을 좌지우지하게 될 것이라는 세간의 우려에 대해서도 “안보정책은 대통령이 하는 것이다. 안 후보가 보수적 안보 정책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본다”고 일축했다.
 
다만 조 대표는 “시간이 촉박해 현실적으로 연대 가능성이 높진 않다”며 “안철수 후보나 홍준표 후보가 하차하면서 일방적으로 지지선언을 하는 방법이 더 효율적.”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안-홍’ 연대가 성사되기 위해서는 걸림돌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당장 위에서 언급했던 안 후보 주변 세력들과 호남 지지층이 반대하고 나설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안 후보가 ‘연대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고, 주변 상황 때문에라도 결단을 내리기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만약 홍 후보가 자신의 지지율을 잠식해 나가기 시작한다면 안 후보뿐만 아니라 그의 주변 세력들도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평가한다.
 
특히 문 후보의 집권은 한국당과 바른당보다도 국민의당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점은 이 같은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한국당과 바른당은 어차피 대선 이후 보수 색채를 강화할 것이기에 문 후보의 집권은 보수 야당의 선명성을 보장하는 기회가 된다. 그러나 국민의당과 안 후보로서는 대선 후 1년 뒤 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에서 설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다. ‘민주당 2중대’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는 지적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