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장휘경 기자] 우리 경제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중소기업이 대한민국을 떠나고 있다. 이미 해외 진출이 대세가 된 대기업에 이어 중소기업도 국내 채용을 줄이고 해외에 공장을 건설하는 등 탈(脫) 한국 추세가 나타나고 있는 것. 지난해 해외에 투자한 중소기업의 투자금은 총 6조8700억 원에 이른다. 해외에 설립된 법인수도 크게 늘어 1600개에 육박했다. 이는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해외로 떠난 대기업들의 하청이 줄고 있고 여기에 각종 규제와 인건비 상승 등 불리한 환경들이 가중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국내 제조업 취업자는 매달 수만 명씩 감소하고 있으며 이는 또다시 우리 경제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2~3년 뒤 엄청난 후폭풍이 올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는 바, 중소기업들의 탈 한국 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경기도 안산공단에 입주해 있는 가전 부품업체 H사. 창업한 지 30년이 된 이 기업은 최근 공장을 중국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한국보다 값싼 인건비와 공장부지 확보의 용이성 등 조건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약 30여명에 달하는 대부분의 직원이 50대 이상인 H사가 해외로 공장 이전을 결정한 건 비단 인건비와 공장부지 때문만은 아니다. 20~30대의 젊은 신규 직원을 뽑기도 힘들뿐더러 어렵게 구한 인력도 금방 퇴사하는 사례가 잦았다. 또 약 30% 가까운 외국의 이주근로자의 채용도 여러 가지 조건으로 어려움에 처하면서 아예 회사의 해외 이전에 눈을 돌리게 된 것.

인천 남동공단에 입주해 있는 자동차 금형 관련 소형업체 P사 역시 현재 태국 현지공장 설립을 추진 중이다. P사는 최근 1~2년 동안 직원 채용을 단 한 명도 하지 못했다. 몇 차례 면접을 봤지만 낮은 임금과 현장 분위기를 둘러본 지원자들이 입사를 포기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에 중소기업들이 가파른 인건비 상승과 각종 규제의 덫에 걸려 중국을 비롯해 태국, 베트남 등 상대적으로 지대와 임금이 싼 지역으로 둥지를 옮기고 있는 것이다.

이미 2000년대 초반 해외로 나가기 시작한 대기업들에 이어 중소기업까지 한국을 등지고 나가면서 우리 경제에 빨간 불이 켜졌다는 경고가 나온다.

한국수출입은행이 지난 4월 16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중소기업체들이 해외에 투자한 금액은 총 60억23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6조8700억 원 규모다. 이는 관련 통계를 조사한 이래 최고치를 나타낸 것으로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지속될 전망이다.

해외 투자금액의 상승과 더불어 해외법인 설립도 지난해 기준 1594개로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최근 3~4년간 해외투자액과 법인설립 등의 수치가 그 어느 때보다 가파르게 나타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기업 해외 이전으로
고용 기반 붕괴될 수 있어


이렇듯 대기업에 이어 중소기업들마저 해외로 떠나게 되면, 무엇보다 지금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고용의 기반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선 국내 시설 투자가 줄고 기존 공장 등 인프라의 축소도 불을 보듯 뻔하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우리나라 고용시장의 88% 이상을 분담하고 있기 때문에 그 폐해는 더욱 심각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해외 진출 초기에는 주로 노동집약적인 산업 위주로 우리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이뤄졌는데 최근에는 화학, 전자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나간다”며 “전반적으로 해외 이전 붐이 모든 중소기업으로 확산하면서 가뜩이나 실업률이 높아진 우리 고용 시장에 적색등이 켜졌다”고 강조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들어 부동산·건설·소매업 등 내수 업종의 호조로 국내 전체 취업자 수가 늘긴 했지만, 제조업 취업자는 지난해 7월 이후 올 3월까지 9개월째 매달 수만 명씩 줄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최근 대기업들이 근로자 고용을 줄이는 분위기인데 중소기업마저 해외 이전으로 인한 고용 축소가 현실화될 경우 고용 시장의 파이가 작아지고 다시 실업률이 높아지는 등 고용 부문의 악순환이 지속적으로 반복될 수 있다.

고용 문제에서 더 나아가 중소 제조업의 공동화(空洞化) 현상까지 나타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제조기업들의 공동화가 이뤄지면 그야말로 우리 경제는 휘청할 수밖에 없다.

특히 중소기업들의 해외이전은 업종을 가리지 않고 최근 3~4년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反기업 풍토 쇄신·
정부 적극지원 등 대책 절실


중소기업들이 이렇듯 앞 다퉈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은 대기업의 해외 진출로 국내 하청 물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한 데 따른 것이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한 중소기업 대표는 “국내에 앉아서 주문을 기다리다가는 망하기 십상”이라며 “자금력 있는 중소기업들은 대부분 대기업이 진출한 해외 공장 주변 부지를 알아보는 게 추세”라고 말했다.

여기에 나날이 증가하는 인건비 부담과 각종 규제 강화로 인한 중소기업 경영의 어려움도 한몫하고 있다. 한국에서 기업하기 힘들다는 인식이 팽배한 이유다.

또 우리 사회에 팽배한 반(反)기업 정서도 해외 이전을 부추기고 경제 성장의 과실 대부분을 대기업이 독식했다는 논리가 통념화하면서 중소기업이 설 자리를 우리 사회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지적도 많다.

그렇다면 해외로 빠져나간 기업들을 다시 국내로 불러들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외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미국과 독일 등 선진국들의 경우 해외로 이전했던 기업들이 최근 다시 자국으로 유턴하는 추세인데 이는 정부의 주도적인 노력이 뒷받침된 결과다. 먼저 정부가 나서서 기업에 혜택을 주고 기업이 잘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는 것.

이와 더불어 기업의 운영 시스템을 ‘스마트화’함으로써 인건비 등 비용을 줄이고 생산성을 늘리는 방향으로의 혁신을 도모해 해외로 이전할 필요 없는 기업 환경을 만든 사례도 있다.

대기업 성장 중심에서
중소기업 성장 중심으로


이와 관련해 차기 정부를 이끌어 갈 대통령 후보들의 중소기업 공약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 대권주자들의 기업 공약은 중소벤처기업부 신설, 국책연구기관과 중소기업 R&D 투자, 임금 격차 해소 등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균형 및 불평등 해소 등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하지만 4차 산업을 통한 국내 유인책이나 기업의 근본적 생태계 변화 등 해외로 이전한 기업들이 회귀하는 데 필수적인 근본 요소들의 세부 내용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해외로 빠져 나간 제조업체들의 10%만 국내로 돌아와도 약 29만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는 ‘한국경제연구원’의 보고서가 아니더라도, 우리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 기업들의 국내 회귀는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 2013년 6월, 국회에서 ‘유턴기업지원법’이 통과돼 약 4년간 시행됐지만 실제로 국내로 복귀한 기업이 30개에 불과하는 등 실효성은 없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국내 복귀 30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절반의 기업들이 ‘유턴기업지원법’상의 지원제도와 인센티브에 대해 만족하지 않았다.

또 이들 기업들이 느끼는 애로사항으로 노동시장 경직성(18.7%)과 높은 인건비(17.6%), 자금 조달의 어려움(16.5%) 등을 꼽아 아직도 유턴기업들에 대한 지원 부족은 물론 반(反)기업적 풍토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음을 드러냈다.

이와 관련, 중소기업들의 해외 이전을 막고 또 해외로 빠져 나간 기업들을 되돌아오게 만들려면 정부가 나서서 잘못된 기업 환경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즉, 대기업 성장 중심의 정책에서 중소기업 성장 중심의 정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

더불어 사회 전반에 뿌리를 내린 반(反)기업 정서를 불식하고 법인세 인상이나 상법 개정 등으로 기업을 옥죌 것이 아니라 정부 주도의 투자지원,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규제 철폐 등 실효성 있는 정책 가동이 필요하다고 귀띔한다.

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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