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장휘경 기자] 지난 17일부터 제19대 대통령 선거의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진세연, 산들, 장나라, 김연우 등 ‘아름다운 선거 홍보대사’로 뽑힌 연예인들은 본격 활동에 들어갔고 각 당 후보들은 로고송을 공개했다. 그러나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각 캠프에 얼굴을 내보이는 연예인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구속으로 이끈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놀란 연예인이 이번 대선에서는 몸을 사리는 것이라는 평가다. 그런 가운데 가수 전인권이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는 이유로 난데없이 정치권 한가운데로 소환되면서 이번 대선에서는 연예인들이 입장 표명을 더욱 꺼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코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전인권이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혀 다른 후보 진영에서 ‘문제’가 됐다.

5월 공연을 앞두고 지난 18일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노래 이야기를 하다가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잠깐 밝혔던 전인권은 졸지에 ‘적폐 가수’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비난에 맞비난, 어부지리와 무임승차 등 정치권의 갖가지 셈법이 바쁘게 오가는 가운데, 환갑이 넘도록 평생 노래만 해온 가수가 하루아침에 ‘정치의 아이콘’이 돼 버리는 촌극이 펼쳐졌다. 안 후보를 지지한 전인권이 KBS ‘2017 대선후보 초청토론’에서 뜨거운 감자가 된 것이다.

‘정치의 아이콘’된 전인권

안 후보는 지난 19일 방송된 KBS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문재인 후보 지지자 중 한 명이 KBS 출연을 거부당한 뒤 ‘분노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느냐”며 “전인권 씨가 저를 지지한 후 문 후보 지지자들로부터 ‘적폐 가수’라는 말까지 듣는 수모를 당했다. 이게 옳은 일인가”라고 에둘러 따졌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는 “우선 제가 한 말은 아니지 않느냐. 정치적 입장을 달리한다고 해서 폭력적인 문자 폭탄을 보내는 건 옳지 않다고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이에 안 후보는 “잘못된 일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왜 문자 폭탄을 양념이라고 하셨느냐”고 했고, 문 후보는 “경선 동안 더불어민주당 후보끼리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것이 경선을 위한 양념이라고 말한 것이다”고 맞섰다.

문 후보는 지난 3일 민주당 경선을 마친 뒤 일부 지지자들의 문자 폭탄과 ‘18원 후원금’ 공세 등을 두고 양념이라고 표현했다가 당 내외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고, 문 후보는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앞서 이날 낮에 전인권은 안 후보를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국민의당 선대위 대변인실은 “전인권 씨가 오늘(19일) 점심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안철수 후보를 만나 적극 지지하기로 했다”며 “전인권 씨와 안철수 후보가 1시간가량 정치와 사회, 음악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고 밝혔다.

대변인실은 “전인권 씨는 증오와 분열의 정치가 통합의 정치로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는 안철수 후보의 생각에 크게 공감을 표시했다”며 “안철수 후보가 새로운 정치에 가장 적합한 후보이므로 적극적으로 지원할 생각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전인권은 전날인 18일 공연 홍보를 위한 기자간담회에서도 안 후보를 스티브 잡스에 비유하며 간접지지 발언한 바 있다.

전인권은 “내가 안 씨를 좋아하나 보다”며 “안철수란 사람도 스티브 잡스처럼 완벽증을 갖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얘기가 안 통할 수 있지만 나쁜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대충 넘어가면 발전하지 못하지 않나”라고 했다.

문재인 지지자들
공연 예매 취소


이 말에 문 후보를 추종하는 일부 지지자들은 전인권이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확정되기 전 안희정 충남지사를 지지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비판적인 댓글을 달았다. 또한 전인권을 ‘적폐가수’라고 비난하며 줄이어 공연 예매를 취소했다. 이와 관련, 공연 관계자는 지난 20일 “개별적 예매 취소가 있는 반면 새롭게 표를 구매하는 이들도 늘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예매율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문 후보 지지자들이 빠져 나간 반면에 안 후보 지지자의 구매가 늘었다는 게 공연계 관측이다.

전인권은 “문화예술인의 사회적 발언에 대해 정치권과 일부 지지자 그룹이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쉽다”며 “저희(들국화) 땐 늘 맑고 깨끗한 노래만 불러야 한다고 제한하는 어두운 시절을 경험했다. 그래서인지 밝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문화예술인들도 정치 이야기를 편안하게 하며 지지 후보도 밝힐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공방을 지켜보는 한국의 대중문화인들은 침묵으로 일관하며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다. 몇몇 공식 행사에서 “선거에 참여해 권리를 행사하자”는 목소리를 내지만, 정작 정치적 소신은 밝히지 않고 있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민주화가 덜 된 데다, 정치적 입장 표명이 사익을 추구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서 스타성이 강한 유명인이 공개적으로 자기 정치적 입장을 표명한 사례는 거의 없다”며 “하지만 이제는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성숙해진 상황에서 유명인이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필요한 과정일 수 있고, 개인들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자유롭게 밝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전인권은 지난해 9월 제8회 DMZ국제다큐영화제 사전행사인 ‘다큐&뮤직콘서트’ 무대에 섰을 때 안 후보를 만났다. 안 후보가 이 행사에 참석해 객석에 앉아 있었던 것.

안 후보는 콘서트가 끝난 뒤 페이스북에 “전인권 씨가 무대 아래의 저를 소개하며 ‘걱정말아요 그대’를 불러주셨는데, 그 어떤 때보다 큰 울림을 받았다”고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정치가 우리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만들어가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당부의 말씀 가슴 깊이 새기겠다. 더 열심히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무대 전까지 안 후보와 전인권은 행사장에서 한 차례 마주쳤을 뿐 특별한 친분은 없었다고 한다.

록밴드 들국화의 일원이었던 가수 전인권은 TV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덕분에 젊은이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드라마에 나와 인기를 끈 이적의 노래 ‘걱정 말아요 그대’가 본래 전인권의 곡이다.

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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