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단순 의학 기준 따라 차등 복지 지원 ‘장애등급제’
‘획일적 서비스 → 맞춤형 서비스’ 전환 필요 의견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지난 20일 ‘제37회 장애인의 날’을 맞으면서 장애등급제 폐지를 둘러싼 논쟁이 재점화되고 있다. 현재 1~6급으로 분류해 복지 서비스를 차별 지원하는 장애등급제를 폐지하자는 주장과 폐지보단 현실에 맞게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대선주자들도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잇따라 관련 공약을 내놨다. 장애인등급제에 대해서는 주요 후보 5명 모두 이를 폐지·개혁 대상으로 삼은 모습이다. 또 장애인등급제를 포함해 장애인 2대 ‘악법’으로 꼽히는 ‘부양의무제’에 대한 폐지 목소리도 계속 나오고 있다.

2014년 고 송국현씨 사건은 장애인등급제의 허점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2014년 4월 17일 송 씨는 장애인용 연립주택 지하 1층에서 발생한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당시 송 씨는 보행과 거동이 불편한 뇌병변장애 5급 장애인이었으며, 동시에 언어가 자유롭지 못한 언어장애 3급의 중복장애인이었다.

이 같은 장애를 앓은 송 씨는 화재 사고가 발생해 전신에 3도 화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숨졌다. 당시 송 씨는 3급 장애인이란 이유로 장애인활동지원제도의 혜택, 즉 활동보조인 지원 서비스를 받지 못했다. 활동보조인은 장애등급제에서 1, 2급까지만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애인 복지 서비스의 ‘미스매치’로 인해 폐지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장애인 개별 특성과
서비스 필요도 ‘소외’ 지적


장애인 등급제는 1989년 장애인복지법이 시행되면서 만들어진 제도로, 의학적 기준에 따라 장애인들의 장애를 등급화한 뒤 복지 서비스를 차등 제공한다. 하지만 단순히 의학적 기준 중심으로 설계돼 장애인의 개별적 특성과 서비스 필요도 등이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420공투단) 등은 지난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장애등급제 희생자 고(故) 송국현 3주기 추모 결의대회’를 열어 장애등급제 폐지를 촉구했다. 이들은 “장애등급제는 의학적 손상 기준에 따라 등급을 판정해 획일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장애등급제가 있는 한 장애인은 등급에 따라 생사 기로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최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장애등급제 개편 시범사업은 장애등급을 ‘중증’과 ‘경증’으로 단순화한 것이 골자”라며 “장애 서비스에 대한 필요와 욕구를 무시하면 이름만 바꾼 또다른 ‘장애등급제’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는 4월 말부터 10월까지 6개월간 ‘장애등급제 개편 3차 시범사업’을 진행할 방침이다. 하지만 장애인 단체들은 여전히 핵심 내용이 획일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대선 후보들, 등급제
폐지·개혁 필요 강조


대선 후보들은 장애등급제에 관해 각론은 다르지만 폐지 또는 개혁해야 한다는 총론은 유사하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5대 장애인 복지정책을 발표하면서 장애등급제에 관해 “나의 몸이 얼마나 불편한지 스스로 입증해야하는 행정 편의적 방식 끝내겠다”며 “등급에 따른 획일적인 지원이 아니라 개개인의 필요를 고려한 맞춤형 복지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복지 사각지대 발생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부양의무자 기준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부양의무제는 현재 소득인정액이 수급 기준을 충족해도 부모, 자녀 등 부양의무자가 일정한 소득이나 재산이 있으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 못해 지원에서 배제되는 등 각종 부작용이 제기됐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안심(安心) 장애인 복지’ 정책을 발표하면서 장애인 차별 철폐를 위한 최우선 과제로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현재의 획일적인 장애등급제를 폐지해 장애인 개인별 욕구와 필요에 따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방침이며, 부양의무제도 단계적으로 폐지해 나가겠다고 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오랫동안 장애인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주장해온 만큼 이번에도 폐지하겠다고 밝혔으며,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등급제 폐지보다 ‘장애판정 체계 개편’을 강조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장애등급제를 서비스종합판정제라는 새로운 제도로 개선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간단한 작업 아냐”
개별적 지원 전환 강조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학술지 ‘장애와 고용’에 장애인등급제 관련 논문(2015)을 기고한 성신여대 이승기 교수는 장애등급제 폐지에 대해 “30여 년간 장애인복지의 토대로 작용한 장애등급제를 폐지하는 것이 간단한 작업은 아니다”라며 “장애등급제의 토대위에 쌓여진 수많은 제도가 연결되어 있고, 이러한 연결을 무리 없이 정비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장애계 내에서도 각기 위치한 지점에 따라 입장이 달라 갈등이 야기될 수 있다. 그간 잘 해온 제도를 왜 바꾸려 하는지 모르겠다는 의견도 있다”며 “그러나 장애인복지의 기본적인 이념 중의 하나인 자립생활을 영위하려면 장애등급에 따른 지원이 아닌 장애인 개인과 가족의 삶을 향한 개별적 지원을 실시하는 제도로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진정한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해 ▲소득보장 체계를 의학적 기준의 한 요소로 사용 ▲직업과 근로 능력기준 활용 ▲장애인의 일상생활을 파악하고 이를 서비스에 연동시킬 인정조사표의 개발과 전달체계 구축 등이 실질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녕찬 기자  kwoness7738@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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