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리트(UAE) 원전사업 성공으로 평판 확보
영국 에너지장관이 직접 서울로 날아와 참여 타진

[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한국전력이 세계 원자력발전소 건설 시장에서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영국 잉글랜드 북부 컴브리아 주(州) 무어사이드에 영국 정부가 원자력발전소를 짓기로 한 사업(‘누젠 프로젝트’)이 참여 업체들 가운데 하나인 일본 도시바의 재정 위기로 미래가 불투명해지자 영국이 이 프로젝트를 살리기 위해 한국, 구체적으로 한국전력에 매달리고 있는 형국이다.

누젠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그렉 클라크 영국 비즈니스·에너지·산업부 장관이 지난 4일 한국으로 직접 날아와 우태희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조환익 한전 사장,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등을 만났다.

클라크 장관은 이튿날인 5일 서울 주한영국대사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전력이 아랍에미리트(UAE)의 원전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며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 건설 사업의 잠재적 투자자로 한국전력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한국전력이 누젠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면 추가지원 방안 등을 논의할 의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영국 경제신문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앞서 클라크 장관의 서울 방문 목적을 ‘누젠 프로젝트 살리기’라고 소개하고 그가 한국 정부 고위관리들 및 원자력 산업계 간부들을 만나 한전이 누젠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무어사이드 원전은 에너지 안보를 위한 영국의 차세대 원전 건설 계획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 프로젝트의 추진 주체인 누젠(NuGen·‘New Generation’(신세대)의 약자)은 일본 도시바가 60%, 프랑스 에너지 기업 엔지가 40% 지분을 가진 합작회사다.

누젠은 2019년부터 무어사이드에 총 3.8GW 규모의 원전 3기를 짓는다는 계획이다. 사업비는 최대 150억 파운드(약 21조원)이며 2024년 완공이 목표다. FT는 도시바가 누젠에 갖고 있는 다수 지분 매각을 간절히 원한다며 한전을 가장 그럴듯한 인수자로 꼽았다. 누젠 프로젝트를 구조하는 것은 영국의 에너지 정책뿐만 아니라 서부 컴브리아의 원자력 발전의 미래를 보장하는 데에도 핵심이다.

1956년 칼더홀에서 세계 최초의 상업용 원자로가 가동을 개시한 이래 서부 컴브리아에서 원자력 산업은 대형 고용주가 돼 왔다. 영국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고, 낡은 화력·원자력 발전소들이 폐쇄되는 가운데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새 원전을 필요로 한다. 최근 영국 정부는 영국의 미래 에너지 안보에 원자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거듭 강조했다. 영국 정부 추계에 따르면 2015년 24%였던 영국 내 전력의 원자력 의존도는 2035년 38%로 높아진다.

조환익 한전 사장은 지난 3월 21일 정부세종청사 인근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도시바가 갖고 있는 누젠 지분 인수와 관련해 아직 지분 인수 구조가 결정된 건 없지만 가만히 있지 않겠다”면서 “부채· 자본 등 매각 구조가 밝혀지면 가장 빨리 뛰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한전이 누젠 지분을 인수하게 되면 UAE 원전사업에 이어 두 번째 원전 수출에 성공하게 된다. 다만 한전의 누젠 프로젝트 참여에는 해결해야 할 조건이 있다. 공사에 필요한 자금 100억~150억 파운드에 대해 영국 정부가 기여할 의사가 있는지, 아니면 최소한 한전을 위해 신용보증을 제공할지가 그것이다. 한전이 무어사이드 원전을 위해 계획한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원자로를 고수하느냐, 아니면 한전 자체의 APR1400 기술을 대신 사용하느냐도 앞으로 검토해야 할 조건이다.

도시바의 자회사인 웨스팅하우스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와 조지아 주의 원자력 발전소 건설 사업들에서 발생한 대규모 비용 과다 지출 이후 얼마 전 미국에서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그런데 AP1000은 10년 간 검토 끝에 지난 3월 하순 영국 원자력규제당국에 의해 사용이 승인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전이 자체 기술 APR1400을 사용하겠다고 나서면 프로젝트 자체가 여러 해 지연된다. 지금까지의 모든 허가와 면허가 AP1000의 사용을 전제로 해 왔기 때문에 한전의 독자기술 사용 시도는 누젠을 원점에서 새로 시작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앞서 영국 원전 사업에 관심을 보인 나라는 일본, 중국, 그리고 프랑스다. 영국 컨설팅 회사 콘월 에너지에 따르면, 여러 나라가 영국 원전 사업에 군침을 흘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세계에서 원전을 짓고 있는 나라는 영국이 유일하며, 향후 10년간 중국을 빼면 영국이 가장 큰 원전 건설 사업을 영위할 것이기 때문이다. 민간 부문의 원전 건설 발주는 아예 세계적으로 전무하다. 파리에서 활동하는 원자력 컨설턴트 마이클 슈나이더는 세계의 대규모 원전 건설사들에 영국은 ‘마지막 희망’이라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말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원자력 전문가 앤토니 프로가트는 특정 회사의 원자로 설계가 영국의 엄격한 규정과 허가 절차를 통과하면 그것은 곧바로 다른 지역에서 원전을 수주하는 데 중요한 자격이 된다고 지적했다. 가디언은 한전에는 좋은 해외 원자로 건설 실적이 있다면서 UAE의 최초 원자로는 올해 전력망에 연결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슈나이더는 UAE 원자로가 한전의 ‘탁월한 업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전 수출의 효과는 엄청나다. 2009년 UAE 원전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수주액만 186억 달러에 60년간 위탁운영 수입만도 494억 달러에 달한다. 그런데 무어사이드 원전은 이보다 규모가 더 크다. 이런 사실을 감안할 때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과 무소속 국회의원 28명이 한전의 누젠프로젝트 참여를 반대하고 나선 것은 유감스럽다. ‘탈핵·에너지전환 국회의원 모임’은 지난 11일 그린피스 서울사무소와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한전의 원전사업 확대는 제2의 자원외교 사태를 불러올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세계적으로 원전에 대한 공포가 커졌고 독일· 벨기에·스위스 등은 탈(脫)원전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원전제로(0)’를 선언했던 일본은 원전 재가동에 나서고 있다. 원전은 여전히 전 세계 발전량의 10.8%를 담당하는 주요 에너지 공급원이다.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현재 세계 31개국에서 447기의 상용원자로가 운영 중이며, 61기를 건설 중이다. 장기적으로 태양광·풍력·조력(潮力)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를 확대해야겠지만 지금으로선 원전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어느덧 세계 원전 건설 분야의 강자로 성장한 한국전력이 누젠 프로젝트를 부분적으로든 100%로든 인수할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곽상순 언론인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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