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안철수 후보의 난관을 돌파한 홍준표 후보의 상승세
- ‘반문 연대’의 실현이 더욱 어려운 상황이 됐다


2주 전 이 지면에서 대구·경북의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에 대한 전략적 투표는 상당히 굳건하다고 진단한 바 있다. 당시 각종 여론조사와 바닥민심을 분석해보면 그랬다. 하지만 불과 2주 만에 전혀 다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구·경북 등 보수층에서 안철수 후보의 지지세가 하강하고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에 대한 지지도가 상승하고 있다. 이로써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격차는 양강 구도라고 하기엔 다소 민망할 정도로 벌어졌으며, 홍준표 후보가 안철수 후보를 앞지르는 ‘실버크로스’가 나타날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특히 홍준표 후보가 들른 대구 서문시장에 몰려나온 시민들의 숫자는 대구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보기에 충분했다. 홍 후보는 “고향인데, 박근혜 대통령 지지했던 것만큼 밀어 달라. 80% 주시면 홍준표가 청와대 간다”고 말했다. 홍 후보는 경남 창녕 출신이지만 대구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홍준표 후보의 상승세는 안철수 후보의 하강세와 함께 왔다. 안철수 후보의 약점은 TV토론에서 드러났다. 각 후보가 경선에서 결정된 후 갑자기 반문 성향의 보수층의 지지가 몰려 양강 구도를 형성한 안철수 후보는 본인이 처한 난국을 세련되게 돌파하지 못했다. 대구·경북의 전략적 투표를 유지하면서 호남의 야권 지지층도 분할해야 하는 상황을 타개하지 못했다.

문재인 후보와의 양자토론이었다면 어느 정도 방어가 됐겠으나, 홍준표·유승민·심상정 후보가 차례로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던지니 이겨내기 어려웠다. 큰 틀의 철학이나 구체적인 정책을 말해야 할 부분에서 “미래로 나아가자”거나 “국민의 뜻에 따라 하겠다”와 같은 형식의 두루뭉술한 답변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安 호남과 대구·경북 동시지지 안통해

특히 대북비밀송금 논란은 하나의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김대중 정부의 남북정상회담 과정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유권자들의 반응이 극명하게 갈린다. 이를테면 대구·경북의 유권자들은 김대중 정부의 대북비밀송금이 잘못이라고 본다.

하지만 호남의 유권자들은 그렇게 보지 않고, 오히려 참여정부가 대북비밀송금 특검을 수용한 것이 잘못이라 본다. 호남 유권자들은 대북비밀송금 특검을 참여정부의 개혁성 후퇴나 호남 홀대론의 근거로까지 보는 경향이 있다.

국민의당이 2016년 총선 당시 호남 지역에서 선전한 이유 중 하나가 호남 지역 일각의 ‘참여정부 호남 홀대론’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것이었다. 당시 문재인 후보가 광주를 방문해 지역 민심 수습을 위해 노력하고 ‘호남의 선택을 받지 못할 경우 정계은퇴’ 발언을 한 계기가 됐다, 이러한 지역민심으로 국민의당이 총선에서 성과를 거둔 상황이니, 안철수 후보와 국민의당 입장으로는 정말이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 됐다.

홍준표 후보가 처음부터 안철수 후보의 고난을 잘 활용했던 것은 아니다. TV토론 초기에 그도 악재를 맞이했고 다른 후보들의 후보 사퇴 압력에 시달렸다. 심상정 후보는 TV토론에서 그와 말을 섞지 않고 있고, 안철수 후보는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말을 한다고 했다가 다시 쳐다보게 되는 촌극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점점 상황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4월 25일 JTBC 토론회가 하나의 기점이 됐다. 그는 이 토론회에서 보수적 유권자들이 좋아할 만한 이슈를 환호할 만한 어법으로 연이어 던졌다. 

누군가의 정리를 빌리자면, 토론 내내 1) 기업인 기 살리기 2) 기업의 투자활성화를 통한 경제성장과 일자리 만들기 3) 강성-귀족노조가 경제 문제의 근원이라 말하기 4)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은 박정희 대통령 5) 남북정상회담 시기 있었던 대북 송금 비난 6) 북핵 책임을 민주정부로 돌리기 7) 헌법재판소 탄핵 판결 비판 8) 노무현 전 대통령 및 가족을 둘러싼 금품수수 논란 9) 한미동맹 10) 사드배치 11) 전술핵 배치, 12) 김정은 제압 발언 13) 군 가산점 14) 문재인 후보가 추천한 리영희 저술에 나온 미국의 베트남전 패배 서술 논란 15) 동성애 반대 16) 사형제도 찬성을 쉴 새 없이 늘어놓았다.

洪, 트럼프와 두테르테 카피 전략 통해

한국의 보수층 유권자들에게는 홍준표 후보가 모방하고 있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등의 거침없는 발언이 잘 먹혀들지 않을 거란 시선도 있었다. 처음에는 그래 보였다. 홍준표 후보 발언에 대해 ‘품위가 너무 없다’며 고개를 젓는 보수층 유권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트럼프나 두테르테의 말의 형식뿐 아니라 그 내용도 제대로 활용했다. 사안별로 정확한 진단과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한 진영의 정서를 결집할 수 있는 적절한 공격 대상을 골라냈다. “품위가 없다”고 반응했던 보수층 유권자들이 “하는 거 보니 내공이 있네”라고 말하게 됐다.

보수층 유권자가 이탈하게 되면 안철수 후보의 당선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지고, 예의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 상황이 된다. 대구·경북 사람들은 이제 “어대문이라면 차라리 홍준표로 소신투표”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객관적인 판세와는 상관없이, 지역 유세에서 결집력을 보여주면 사람들은 당선 가능성에 대해서도 심리적 착각을 일으킬 수 있다.

‘반문 연대’를 통한 승리를 구상하던 정치 전략가들에게 안철수와 홍준표가 ‘2중’이 된 이 상황은 최악이다. 그들은 막판까지 홍준표 후보 사퇴를 통한 실질적 후보 단일화를 모색할 수 있다.

하지만 지지율 상승으로 인해 대선 이후 입지가 어느 정도 눈에 보이게 된 홍준표 후보가 그러한 협상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받아들인다 해도 안철수 후보의 당선을 확신할 수 없기에 여러 모로 협상이 어렵다. 협상을 안 한 것처럼 후보 사퇴를 해야 안철수 후보의 지지층이 남아있을 거란 것도 문제다. 여러 모로 ‘어대문’을 막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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