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벌이 ‘알바’라지만 애환도 많아요!”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정대웅 기자>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한 명의 유권자라도 더 만나 자신을 홍보하고 싶은 것이 대선 후보들의 한결같은 마음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여건 상 유세현장에서 후보들이 직접 대면할 수 있는 유권자들은 한계가 있다. 선거운동의 최일선에서 이러한 후보들의 얼굴 역할을 하는 이들이 바로 선거운동원들. 학생들이나 취준생들에게 유용한 알바로 인식돼 인기지만 온종일 노래하고 춤추는 등 실상 ‘극한 알바’에 가까운 선거운동원의 고된 하루를 따라가 봤다.
 

 
오전 7시 30분 출근길 차량들이 몰리는 시각, 종로구의 한 대로변. 눈에 잘 띄는 공터에서 8~10명의 선거운동원들이 음악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율동을 펼친다. 개조된 차량의 연단에서는 확성기를 쥔 남성이 연신 “기호△번 ○○○”를 외쳐댄다.

선거운동원들 가운데 종로구 혜화동에 거주하는 취업준비생 박성희(가명ㆍ26ㆍ여)씨가 눈에 띄었다. 지지난해 대학을 졸업하고 2년째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박 씨는 요즘 매일 오전 6시 집에서 나선다. 지난달 17일부터 공식적으로 시작된 제19대 대통령선거 운동원으로 등록한 것.

빵과 우유로 아침을 때운 터라 벌써부터 허기가 진다. 비슷한 시각 인근의 지하철역 출입구에도 비슷한 규모의 운동원들이 유권자들에게 인사를 하며 후보 알리기에 한창이다.

박 씨는 이번 대선 선거운동원으로 일한 지 일주일 만에 병원에 들러 링거를 맞기도 했다. 그만큼 고된 일정이다.

“처음에는 그냥 피켓 들고 춤추며 노래하는 일이 그리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제가 알바를 많이 해봤는데 선거운동원 활동이 다른 알바에 비해 힘듭니다. 우습게 봤다간 큰코다쳐요.”

박 씨는 처음에는 돈도 벌고 특별한 경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선뜻 선거운동원 알바로 나섰다. 하지만 지금은 여느 알바와 다름없이 타성적으로 임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정대웅 기자>
   출근하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아침 유세가 9시 전후로 끝나면 잠깐의 휴식과 평가를 마친 뒤 오후부터 지역의 시장이나 마트 등 사람이 모이는 곳을 중심으로 유세를 벌인다.

중간 중간 휴식시간도 있고 같은 운동원끼리 담소를 나누는 기회도 있지만 유세 장소를 대부분 걸어서 이동하고 하루 종일 춤을 추는 등 체력 소모가 크기에 오후 2~3시만 되면 몸이 천근만근이다.
 
지지 후보 경쟁자 운동원도 적지 않아, ‘웃픈 현실’
 
몸만 피곤한 게 아니다. 육체적 고통보다 더 힘든 건 유권자들의 무관심과 냉대다. 특히 상대 후보 지지자들이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우리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분들이 인상을 쓰거나 화를 내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나이 드신 어르신들 중에는 욕설을 하거나 물리력을 쓸 때도 있어요. 하지만 저희는 무조건 웃어야 해요. 그럴 때마다 ‘내가 이 일을 왜 하나’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그래요.”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선거운동원이라면 그나마 낫다. 지지 의사와는 상관없이 돈 때문에 선거운동을 하는 운동원들의 고통은 가중된다. 박 씨의 경우가 그렇다. 박 씨가 지지하는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자신이 선거운동을 하는 후보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다.

“제가 지지하는 후보 선거운동원 자리가 경쟁이 심해서 한발 늦었지요. 어쩔 수 없이 이쪽 후보를 택했는데 선거운동을 하다보면 가끔씩 내가 누굴 지지하는지 헷갈릴 때가 있어요. 웃픈 현실이죠.”

후보들을 대신해 유권자들을 만나는 선거운동원들의 하루는 그야말로 전쟁이다. 그렇게 고된 하루를 보내고 선거운동원이 받는 일급은 7만원. 다른 아르바이트와 비교해 선거운동원 일이 임금이 높거나 일이 편한, 이른바 ‘꿀알바’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게 운동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우선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을 뛰어야 하는 선거운동원들의 급여는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한다. 아침 7시 출근시간 전부터 유세를 시작해 보통 퇴근 유세 시간인 오후 9시를 넘기는 경우가 많아 12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을 견뎌야 하지만 노동시간에 비해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인 것이다.
 
낮은 일급, 감정노동 등 개선점 커
 
더불어 선거운동은 지역 단위로 이뤄지기 때문에 이동은 대부분 도보로 행해져 육체적으로 고되다. 유세 중에도 쉴 공간이 마땅치 않아 피로감은 배가될 수밖에 없다.

또 대선 후보들의 기호와 이름이 적힌 옷을 입고 어깨띠를 두르고 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잘못된 말과 행동이 곧 후보자의 이미지에 타격을 주고 표와 곧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선거사무실에서 선거기간 동안 반드시 지켜야 할 행동지침을 교육받습니다. 후보자에게 누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무의식적으로도 자기검열을 해야 해요. 그만큼 감정노동의 강도도 센 겁니다.”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종로 인근 지하철역에서 피켓을 들고 퇴근 유세를 마친 박 씨는 밤 10시쯤 선거사무소로 돌아와 뒷정리를 하고 다음날 유세 일정을 챙기고 나서야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속옷은 이미 땀으로 절어 있었고 온몸은 파김치처럼 녹초가 됐다. 하루 종일 노래 부르고 후보자 이름을 외쳐대 목도 아프지만 박 씨는 그래도 하루를 잘 마무리했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는다.

“많이 힘든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우리 같은 선거운동원을 통해서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선거에 무관심했던 유권자들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계기를 갖게 된다면 그게 보람인 거죠. 그것이 우리 정치 발전에 작으나마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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