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이창환 기자] 연극 <초혼>이 5월 7일까지 ‘30 스튜디오’에서 공연된다. <초혼>은 연희단거리패가 만든 ‘굿과 연극’ 시리즈 3번째 작품으로 지난 3월과 4월에는 <씻금>과 <오구>가 공연됐다.
 
<초혼>에는 아직 조선옷을 벗지 못한 귀신들이 등장한다. 피 묻고 흙 묻은 원혼들은 기괴한 몸짓과 얼굴로 무당 뒤를, 산 사람의 주변을 돌아다닌다. 제주도 무혼굿이 부른 이들은 역사의 슬픈 아이러니에 휘말린 인민들, 제주 4·3사건의 희생자들이다. 무혼굿은 제 명에 살지 못하고 시체도 찾지 못하는 넋을 위로하는 굿이다. 연극은 공연 내내 무혼 굿판을 벌인다. 굿판을 포함한 모든 곳에서는 근대사를 거슬렀다가 돌아오는 이야기가 열린다. 극 초반부터 향냄새가 나고 낯설고 긴장된 분위기가 감돌고 제주도 방언과 꽹과리 징 소리가 귀를 홀린다.
 
<초혼>은 비극의 원형적 힘을 표출한다. 제주도 4·3사건을 가져와 비극이 비극을 얘기할 수 있게끔 한다. 사건 당시에도 그 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나아질 것 없는 세계가 존재하고 그 가망 없음은 영원할 것이라는 비극의 암시. 극 속의 산 사람들은 돌이킬 수 없는 세상을 냉소하고 증오한다. 이뤄질 수 없는 순간을 갈구하다 견디지 못한다. 비극의 매개체인 극 속 사람들은 극단적 눈빛과 말과 움직임을 보인다. 자살하고 방화하고 내가 미친 게 아니라 세상이 미친 것이라 하고, 그런 세상에 동화돼 자신을 처절하게 망가뜨린다. 비극이 힘이 표출될 때 그게 막연하고 강렬하게 다가올 때 우리는 극 속 사람들처럼 세상의 가망 없음을 받아들인다. 연극이 진행되는 시간이나마 자살하고 세상에 대드는 순결하고 정의로운 인간성을 흉내 낸다. 배움이란 뭘까 그리고 배우지 못하는 것은 어떤 마음일까를 동정하고 고민한다. <초혼>의 현실 반영과 판타지는 예리하고 서정적이어서 먼저 우리를 예민하고 가냘프게 만들고 그 상태에서 세상을 비관하게 한다.
 
<초혼>은 ‘굿’이 중심이 되는 연극이라 미지의 기대감이 있었다. 그 기대감은 막연한 무책임한 기대감이었다. 그러나 <초혼>은 미지의 기대감을 미지의 무엇인가를 들키지 않은 상태에서 충족시켰다. 역사적 사실과 토속 신앙이 안기는 환상에 동화됐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배우 김소희는 이번 굿과 연극 시리즈의 취지가 연극 원형의 재현, 예술 원형의 재현이라고 했다. 출연 배우 중에는 제주도 출신이 많았다. 제주에서 자라다 서울에 올라온 배우들이 제주 비극을 조명하는 작품에 출연한 점은 뭉클했다. 제주도 출신 작가 현기영 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가 떠오르기도 했다. 연출가 이윤택도 깜짝 등장해 한국 굿의 다양한 전통, 설화와 민요, 굿의 계승에 관해 말했다. 이 연출가는 차후에도 굿과 연극 시리즈는 이어질 것이며 더 큰 규모와 더 분명한 정체성으로 관객을 만날 것임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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