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 경찰력 연인원 200여만 명 등 단일사건 최다 수사기록 보유
17대 국회 당시 살인마에 공소시효 적용 논란되기도

 
80∼90년대 전국을 공포에 떨게 했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이 지난 2006년 4월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제목처럼 ‘살인의 추억’으로 남았다. 마지막 10차 사건이 4월 2일로 15년의 공소시효가 만료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영화 ‘살인의 추억’ 원작인 연극 ‘날보러 와요’의 ‘나(범인)’를 잡더라도 현행법상 형사처벌은 불가능했다. 동원 경찰력 연인원 200여만명 등 단일사건 최다 수사기록을 보유한 전대미문 사건의 살인마에게도 공소시효를 적용해야 하는지 논란도 일었다.
 
■ 사건 개요
 
15년 전인 1991년 4월 3일 오후 9시께 경기도 화성시 동탄면 반송리 야산에서 주민 권모(69.여)씨가 스타킹에 목이 감겨 숨진 채 발견됐다. 권씨의 음부에는 권 씨의 양말이 삽입돼 있는 등 성폭행과 음부난행이 확인됐고 사인은 교살(끈 등 도구로 목졸라 죽임)이었다.
 
지난 1986년 9월부터 91년 4월 사이 화성시 태안과 정남, 팔탄, 동탄 등 태안읍사무소 반경 3㎞내 4개 읍·면에서 13∼71세 여성 10명이 잇달아 살해된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마지막 희생자였다. 10건의 사건 가운데 일부는 동일범이 잇따라 저지른 것으로 보여 충격을 더했다.
 
연쇄살인사건 9차 사건은 90년 11월 15일 오후 6시 30분께 태안읍 병점5리 소나무숲에서 학교 수업 후 집으로 가던 김모(당시 13세·중1)양이 성폭행 당한 뒤 목 졸려 살해당한 사건으로, 최연소 희생자였던 데다 연쇄살인사건 중 가장 잔인한 범행수법을 보여 영화 ‘살인의 추억’에 인용되기도 했다.
 
태안읍 진안리 자신의 집에서 박모(13)양이 살해된 8차 사건은 인근의 농기계수리센터 종업원이 범인으로 밝혀지고 범행수법이 달라 엄밀한 의미의 연쇄살인사건 범주에서는 제외됐다. 연쇄살인사건의 살해수법은 대부분 스타킹이나 양말 등 피해자 옷가지가 이용됐으며 교살이 7건, 액살(손 등 신체부위로 목을 눌러 죽임)이 2건이고 이중 음부난행도 4건이나 됐다.
 
범인은 버스정류장에서 귀가하는 피해자 집 사이로 연결된 논밭길이나 오솔길 등에 숨어 있다 범행했으며 흉기를 살해도구로 쓰지 않았다. 범행 현장에서는 공통적으로 피해자가 소지한 현금이 없어졌다.
 
■ 범인은?
 
4차 사건 발생 보름 전인 1986년 11월 30일 밤 9시께 교회에 가기 위해 논길을 지나던 김모(당시 45·여)씨가 흉기를 든 남자에게 성폭행당한 뒤 이 남자가 가방을 뒤지는 사이 가까스로 도주해 목숨을 건졌다.
 
범행수법은 양말을 벗겨 양손을 묶었으며 팬티와 거들로 재갈을 물리고 얼굴을 덮는 등 연쇄살인사건과 유사, 경찰은 이 사건이 연쇄살인사건 범인의 범행 실패 케이스로 범인이 가장 확실하게 자신을 드러낸 사례로 봤다. 김씨의 진술로 미뤄 용의자는 단독범이고 나이는 20대 중반으로 키 165∼170㎝에 호리호리한 몸매였다. 이는 팔탄면 7차 사건 당시 범인으로 추정되는 남자를 버스에 태웠던 운전사의 진술과 거의 일치했다.
 
4,5,9,10차 사건 범인의 정액과 혈흔, 모발 등을 통해 확인한 범인의 혈액형은 B형이었다. 9차와 10차 사건의 범인 DNA가 확인됐는데 두 DNA가 달라 10차 사건은 모방범죄가 아닌가 경찰은 추정했다.
 
■ 경찰수사는?
 
화성연쇄살인사건에 동원된 경찰은 연인원 205만여 명으로 단일사건 최다 동원이었다. 화성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수사를 받은 대상자가 2만 1천280명, 지문대조 수사 4만 116명, 모발 감정수사 180명 등이었으며 화성사건 수사과정에서 부수 범죄자 검거 실적도 1천 495명에 이르렀다. 경찰은 8차 사건에서 모발 중성자 분석법을 수사사상 처음 적용, 음모에 특정 성분이 많이 함유됐음을 확인하고 용의자의 직업군을 압축해 범인을 검거했다.
 
또 9차와 10차 사건은 일본에 범인 정액의 DNA 감식을 의뢰하는 등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를 계기로 우리나라 과학수사 기법도 함께 발전했다. 사건을 담당했던 화성경찰서는 2006년 3월까지도 안녕치안센터에 수사본부를 유지하고 형사과 강력3팀을 전담반으로 운영했다.
 
전담반의 업무는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를 통해 검거되는 성폭력 용의자의 DNA지문과 화성사건 범인이 남긴 정액의 DNA지문을 대조하는 작업을 벌이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전담반은 4월 2일이 지나자 해체돼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이미 경찰의 손을 완전히 떠났다.
 
■ 수사경찰 소회
 
사건 당시 화성경찰서 형사계장이었던 A씨는 2006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화성사건을 거쳐간 경찰중에 잘된 사람이 없다(실제 8차 사건 해결 형사는 교통사고로 숨지는 등 경찰의 수난이 이어짐)”며 “담당 형사들에게는 기억하기조차 싫은 사건”이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A씨는 “9차와 10차 사건이 모두 야산에서 발생했는데 피해자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한 달에 두 번씩 야산에서 제사를 지냈다”며 “지금도 9, 10차 사건이 발생한 태안, 동탄지역에 가면 뒤통수가 땡기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당시 경기지방경찰청 형사계장으로 재직한 B씨는 “사건 수사 당시 지원부서에 있었는데 경기경찰청장이 수사본부에 상주할 정도로 사회적 관심과 경찰의 부담이 컸었다”고 말했다.
 
■ 공소시효 논란 왜?
 
17대 국회 당시 열린우리당 문병호(文炳浩) 의원(현 국민의당 최고위원)은 2005년 8월 17일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20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문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소시효제도의 본래 취지는 시간의 경과로 인한 증거의 멸실로 공정한 재판이 보장되지 못하는 상황을 막기 위한 것”이라며 “이제는 DNA 감정기술 등 과학기술의 발달로 오랜 기간이 지나도 증거수집이 가능하기 때문에 공소시효를 연장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독일의 살인죄 공소시효는 30년, 미국은 주(洲)마다 다르지만 연방법에서는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두지 않고 있어 당시 공소시효 적용 논란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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