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의 북쪽 바다에 나란히 이어진 제방길과 내륙의 시골길에는 당진의 명소들이 마치 개나리의 꽃망울처럼 매달려 있다. 시원한 해안가로부터 한적한 시골로 이어지는 길 위에서 만난 색색깔 봄꽃 같은 당진의 풍경들을 당신과 나누고 싶다.
1970년대 처음으로 건설된 삽교호방조제를 비롯하여 섬과 육지를 잇는 대호방조제, 당진에서 가장 긴 석문방조제까지 당진에 있는 3개의 방조제를 잇는 드라이브코스는 당진을 대표하는 아홉 가지 풍경 중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 길에는 왜목마을, 도비도 해양휴양지, 심훈기념관, 삽교호국민관광지 등 당진의 해양 명소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직선으로 쭉 뻗은 방조제 길이 단조롭다면 구불구불 이어지는 내륙 도로로 빠져보는 것도 좋다. 아미미술관, 아그로랜드 등 당진의 새로운 얼굴로 떠오르고 있는 여행지들이 알록달록 피어나는 꽃처럼 당진의 길을 운치 있게 물들일 것이다.

왜목마을, 서해의 서정적 일출 풍경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가 문득 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서울에서 동해는 조금 멀게 느껴지고, 서해라면 1시간거리만 달려도 일몰과 일출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어두워진 밤하늘 아래 차를 몰아 충남 당진에 있는 왜목마을로 향한다.
이튿날 짧은 밤을 보내고 해가 밝아올 무렵, 조용히 왜목마을을 지키고 선 나지막한 석문산으로 향했다. 봄의 문턱을 넘었지만 두 뺨에 닿는 아침 공기가 아직은 차다. 산 위 전망대로 걸음을 옮기는 동안에 하늘은 푸른색에서 붉은빛으로 변하고, 전망대에 도착할 무렵엔 주홍빛으로 변해 있다. 어느새 환히 모습을 드러낸 왜목마을과 서해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망망대해 위로 장엄하게 솟아오르는 동해의 일출과는 달리, 석문산의 일출은 다소곳이 얼굴을 내민다. 점점이 떠 있는 통통배들과 해의 온기를 그윽하게 담은 잔잔한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은 서정적이고 신비롭다. 산에서 내려와 도착한 왜목 해변에는 일출을 담기 위해 새벽부터 이곳을 찾은 이들이 촬영을 마치고 하나둘 해변을 떠나는 모습이다.
국화도와 장고항 쪽에 솟아있는 노적봉이 왜목마을의 앞바다를 고즈넉하게 꾸민다. 모래사장 입구에 세워진 견우와 직녀 설화에 등장하는 오작교는 한산해진 해변의 허전함을 채워주는 모습. 해안선을 따라 조성된 데크 길을 따라 걸으며 서해에서 맞이한 해돋이의 여운을 간직해본다.

장고항, 배경으로 물러난 비경

장고항에는 왜목마을에서 바라보는 소박하면서도 서정적인 일출의 배경이 되는 노적봉과 촛대바위가 자리해 있다. 장고라는 이름은 포구가 자리한 바닷가의 지형이 우리네 국악에서 쓰는 장고의 모양을 닮은 것에서 유래했다. 선착장 앞에 차를 세우고 노적봉으로 걸음을 옮긴다.
갓 떠오른 온화한 햇살이 노적봉에 따뜻한 색감으로 스며 있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에 솟은 촛대 바위와 바위 위로 비스듬히 자라난 소나무들이 한 폭의 동양화 같은 비경을 빚어낸다. 마침 물때가 맞아 노적봉과 촛대바위 앞까지 걸어 나가본다. 정확히 반대편으로 석문산과 왜목마을이 보인다. 장고항 역시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으로 기꺼이 왜목에서 바라보는 일출의 배경으로 물러나 있지만 멀리서 그 신비로움을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찾아온 이들에게는 보란듯이 저의 매력을 담담히 보여준다.
노적봉과 촛대바위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어주지 않겠느냐 부탁하는 할아버지 한 분과 그 옆에서 소녀처럼 쑥스럽게 미소 짓는 할머니의 찰나가 포근하게 두 눈에 담긴다. 방파제 위로 난 길을 따라 방파제 끝의 작고 빨간 등대까지 걸어가 본다. 그곳에서 돌아본 장고항의 인상은 투박한데 묘하게도 동시에 인정스럽다. 장고항을 떠나기 전, 포구의 입구에 있는 수산물센터에 들렀다. 싱싱한 해산물들과 서글서글한 어촌시장 특유의 활기가 고즈넉한 노적봉의 풍경과 대비되며 장고항의 매력을 한층 더해준다.
늘 푸른 나무처럼 필경사
장고항을 떠나 석문방조제 쪽으로 핸들을 돌려 쭉 뻗은 제방 길을 따라 바다와 호수 사이를 가르며 달린다. 둑에 가려진 바다풍경 대신 잔잔한 호수의 정경이 시야와 마음 한가운데에 머 문다. 검은색 가죽재킷을 입은 한 무리의 라이더들이 지나간 것을 제외하고는 다니는 차가 거의 없어 호젓한 분위기이다.
방조제를 지나 서해대교에 조금 못 미치는 곳에서 샛길로 빠진다. 굽이굽이 이어진 시골길을 지나 ‘그날이 오면’, ‘상록수’로 대표되는 소설가 심훈의 고택 필경사에 닿았다. 이곳에서 탄생한 소설 ‘상록수’의 두 주인공 박동혁과 채영신의 조형물 이 입구에서 방문객을 맞이한다. 필경사 주위로 선 나무들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이 밝고 산뜻하다. 대나무 숲을 배경으로 단정하게 자리하고 있는 초가집이 바로 필경사.
심훈은 자신이 직접 지은 이 집에 ‘붓으로 밭을 갈다’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곳에서 그의 대표 소설인 ‘상록수’를 집필했다. 필경사 주변은 실제로 ‘상록수’의 배경이 된 곳이다. 소설의 무대인 ‘한곡리’는 주인공 박동혁이 농촌계몽운동을 펼친 곳으로 필경사 인근의 한진리와 부곡리의 이름을 합쳐서 만들어낸 마을이며 주인공 박동혁은 당진 부곡리에서 청년들과 함께 농촌 계몽운동에 앞장섰던 심훈의 장조카 심재영을 모델로 한 인물이다.
필경사 바로 앞에는 심훈기념관이 자리하고 있어 심훈의 짧고 파란만장했던 생을 돌아보게 한다. 그가 추구한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의식, 계급에 대한 저항의식 그리고 휴머니즘이 늘 푸른 나무처럼 우리 곁에 머무르길 소망한다.
기지시줄다리기 박물관,
평안을 기원하는 어울림

바다를 따라 이어진 제방 길을 벗어나 당진의 내륙에 위치한 명소들을 돌아보기로 한다. 먼저 들른 곳은 기지시줄다리기 박물관. 이곳은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있는 국가 지정 중요 무형문화재 제75호 기지시 줄다리기를 주제로 한 테마 박물관으로 2011년에 500여 년 동안 이어져 온 무형유산의 전통을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해 설립됐다.
야외전시관에 줄다리기에 이용되는 길이 약 200m, 직경 1m 최고 1.8m, 무게는 약 40톤에 이르는 거대한 줄이 전시돼 있다. 가운데 몸줄이 너무 굵고 무거워 몸줄 좌우로 사람들이 잡을 수 있도록 작은 줄들이 달려 있는 모습에 설화 속에서나 나올 거대한 지네가 연상된다. 이 거대한 줄을 만드는 데 1800여 명이 투입되며 제작 기간은 40여 일에 이른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줄다리기 축제 당일에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참가해 장관을 연출한다고.
기지시줄다리기는 온 마을 사람들이 수상과 수하로 나뉘어 줄을 당기는데 수상이 이기면 만사가 태평하고, 수하가 이기면 풍년이 든다고 하니, 승패보다는 즐겁게 어울리며 한 해 농사의 풍작과 평안을 기원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박물관에서는 관련 유물 300여 점과 함께 기지시줄다리기의 유래와 옛 당진의 농촌과 어촌의 풍경, 기지시줄다리기에 쓰이는 줄 제작방식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세계 곳곳의 줄다리기가 1900년부터 1920년까지 올림픽 종목이기도 했었다는 사실과 줄다리기 전통이 있는 나라들에 관한 내용이 흥미를 더한다.
아미미술관, 미술관이 된
시골학교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아미미술관에 도착하니 이곳만 차로 복작복작하다. 프랑스어로 친구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아미미술관은 1993년 폐교돼 방치되던 조그만 시골학교를 서양화가 박기호와 설치 미술가 구현숙 부부가 구입해 10여 년 동안 조금씩 가꾸어 2011년 미술관으로 문을 연 곳이다.
주변의 자연과 동화된 오래된 건물의 소박한 아름다움이 특징으로 하얀색 외벽을 타고 자란 초록색 담쟁이덩굴이 파릇한 운치를 더하는 모습. 친구, 연인, 가족 등 다양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미술관을 찾았다.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지만 미술관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따라 사람들의 발걸음도 차분하다. 잔디로 덮인 운동장에는 돗자리가 펼쳐져 있고 아이들은 아빠가 불어준 비눗방울을 음표처럼 쫓아다닌다. 야외에 전시돼 있는 조각과 설치 미술작품들도 그냥 지나치기엔 아쉬운 볼거리들.
미술관 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옛날 초등학교처럼 나무가 깔린 복도가 반갑다. 창밖으로 햇살을 받은 담쟁이덩굴의 초록빛이 번지고, 알록달록한 모빌과 인형들로 꾸며진 천정이 함께 동화 같은 풍경을 빚어낸다. 아이들이 공부하던 교실은 작가들의 전시실로 예쁘게 꾸며졌다. 풍금, 칠판, 나무의자와 책상 등 교실마다 옛날 학교에 있었던 물건들이 놓여 있어 어른들에게는 향수를, 아이들에게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오늘도 아이 손을 잡고 미술관으로 변한 학교를 찾은 누군가는 ‘그땐 말이야’로 시작 하는 옛날이야기를 꺼내며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과거를 꺼내보게 될 것이다.
아그로랜드,
트랙터 열차 목장 사파리

국내 최초로 ‘낙농체험목장’ 인증을 받은 아그로랜드(구 태신목장)는 당진시와 예산군에 걸쳐 있는 넓은 목장으로 2004년부터 관광객들에게 목장을 개방해오고 있다. 입구는 당진에 있지만 목장의 많은 부분이 예산에 걸쳐 있기 때문에 당진의 명소이면서 동시에 예산을 대표하는 곳이기도 하다.
매표소를 지나 사람들을 따라 걸음을 옮기니 거대한 바퀴를 가진 트랙터 열차가 등장한다. 입장권에 포함된 탑승권을 이용해 열차를 타고 목장을 한 바퀴 둘러보기로 한다. 열차의 맨 끝 칸에 자리를 잡고 얼마 지나지 않아 종이 울리고 열차가 천천히 움직인다. 조금은 사파리를 즐기는 기분이 든다. 낙타, 소, 말, 돼지 등 동물들이 비좁은 우리가 아닌 넓은 목장 울타리 안에서 내리쬐는 햇볕을 맞으며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목장 중간의 나무놀이터 정거장에 내려 목장의 끝까지 걸어가 본다. 푸른 보리밭이 완만한 경사의 언덕을 가득 메우고 있는 모습에서 제주도의 오름이 연상된다. 아직 어려 잔디처럼 낮게 깔린 보리풀과 언덕 위에 덩그러니 선 나무 한 그루가 만들어내는 오묘한 풍경을 배경으로 많은 연인들이 추억에 남길 사진 한 장을 남기고자 노력을 다하는 모습이다. 청보리밭뿐만 아니라 벚나무길, 은행나무길, 메타세콰이어길 그리고 곳곳에서 등장하는 예쁜 조형물들이 목장의 풍경을 다채롭게 만든다.
산양, 공작새, 오리 등 다양한 목장 동물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녀석은 라마다. 생김새는 귀엽지만 고약한 냄새가 나는 침을 뱉는 반전 매력(?)을 지닌 라마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다들 멀찍이 서서 쉬이 다가가지 못하는 모습이 재밌다. 동물들과 교감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어 아이와 함께 방문하기에 더없이 좋은 여행지다.
솔뫼성지, 믿음으로 산을 이루다
솔뫼성지로 가는 길에 충청도를 비롯한 중부지역에 있는 거의 모든 성당의 본당 역할을 하고 있는 합덕성당에 들러본다. 붉은색 벽돌로 쌓아올린 고딕양식의 아름다운 성당 건물은 신자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방문할 가치가 있다.
내포 지역은 충청도 서남부 지역을 이르는 말로 예로부터 한국 천주교회의 발상지적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중에서도 합덕성당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사제와 수도자를 배출한 곳이자 수많은 순교가 있었던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 평화롭기만 한 성당 앞뜰에서 믿음을 지키고자 분투했던 이들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김대건 신부의 생가를 중심으로 조성된 솔뫼성지는 합덕성당에서 4km 남짓한 거리에 있으니 여유가 있다면 버그내 순례길을 따라서 호젓한 시골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 김대건 신부는 15살 때 마카오로 건너가 사제 수업을 받았으며 상하이에서 한국인 최초로 사제 서품을 받고 돌아와 신부가 됐다.

< 사진=여행매거진 GO-ON 제공>

프리랜서 박건우 기자  ilyo@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