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시진핑·아베보다 노회한 대통령 필요”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대통령의 부재 상황에 우리나라가 외교 위기에 처해 있다. 북한의 미사일과 핵 그리고 사드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동네 북’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일본과는 위안부 합의 문제로 사실상 외교 단절 상태다. 정치권에서는 서로 ‘네 탓’ 공방만 펼칠 뿐 누구하나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다. 대선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에 당선이 돼야 그들의 공약을 실현할 수 있는 만큼 아직까지는 서로를 향한 말싸움뿐이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 국제사회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각자의 국익을 챙기기 위해 소리없는 전쟁을 펼치고 있다. 일요서울은 우리나라가 당면한 외교 문제를 짚어보고 위기 극복의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한국외교협회 정태익 명예회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미동맹 강화차원에서 한일관계 접근할 필요 있다”
“한반도 통일은 북한 주민의 협조없이 절대 안 된다”


한국외교협회 정태익 명예회장은 한국 외교사의 산증인이다. 외무고시 2회 출신인 정 명예회장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50년 지기로 죽마고우다.
그는 이집트·이탈리아·러시아 대사를 지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외교안보수석을 지내는 등 청와대와 외교부를 3차례 오가며 수석비서관, 외교비서관, 외교 담당 행정관을 지냈다.
비록 외교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그간 쌓아놓은 인맥은 아직도 그대로다. 정 명예회장은 자신이 가진 외교적 역량을 나라와 후배들에게 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일요서울과의 인터뷰도 국제 정세를 차기 정부에 올바르게 알려주고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취지였다. 정 명예회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3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현재 우리나라가 처해있는 국제 정세는 어떤 상황인가.
▲ 한반도는 강대국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지정학적 요소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항상 불확실성이 존재해 왔다. 최근에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등장과 우리나라의 정치 공백으로 인해 상황이 더 악화됐고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것을 비즈니스적으로 해결한다. 모든 대통령이 국익을 우선시 하는 것은 같지만 트럼프의 경우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론에 차이가 있다. 국제 문제에 대해 관여하지 않겠다고 해 놓고 실제로는 적극적으로 관여를 한다. 그 결과 불확실성이 더 커졌다.
중국도 시진핑 주석의 지도력 강화와 함께 급부상하고 있다. 중국이 영향력을 확대해 가다 보니 주변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은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싸울 수 있는 국가’ ‘보통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그 선봉에 아베 총리가 있다. 아베 정권 뒤에는 위기의식을 느낀 일본 국민들의 적극적인 지지가 있다.
우리나라는 안보, 국제관계, 경제, 민생, 일자리 등 총체적인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차기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 등장, 중국의 사드 배치 보복, 북한의 위협 증대 등으로 전쟁 가능성이 심각하게 거론될 만큼 과거 어느 때보다 위중하다. 우리 경제와 안보를 지탱해 온 자유주의 국제 질서마저 크게 흔들리고 있다.
 
- 차기 정부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대개혁이 필요하다. 광장이 복원시킨 공공성을 중심에 두고 개혁과 타협, 적폐 극복, 국가 통합 등을 함께 달성해야 한다. 통합정부를 구성해 모든 부분의 공적 지혜와 인재를 포괄하는 완전히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내우외환의 상황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국회는 여소야대의 상황이 될 것이다.
새 정부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연정과 협치를 통해 국민통합을 이루어야 한다. 제도적으로 뒷받침되도록 차기 정부는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촛불혁명의 시대정신은 개헌과 선거법 개정으로 완성돼야 한다. 또 긴장이 고조되는 한반도의 안보 위기가 우선적으로 해결돼야 대개혁과 대타협이라는 새로운 국정운영이 가능해진다.
 
- 결국은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새로 뽑히는 대통령이 갖춰야 할 조건이 있다면.
▲ 위기를 대화와 평화로 전환하는 지혜를 가진 지도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차기 대통령은 위기 극복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 주권 국가의 원수로서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한반도 문제는 한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해결한다”는 자주적인 태도와 자강 노선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힘과 지혜를 배경으로 북한과 직접 대화하여 남북관계를 풀어 나가고, 한미동맹의 기반 위에서 중국과 협력의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민족은 항구적인 평화와 번영이 보장되고 통일도 이룰 수 있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국가보위다. 차기 대통령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주석, 아베 일본 총리보다 더욱 노회한 능력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강력한 자기 의지와 행동 그리고 희생을 발휘해 5000만 국민의 염원을 현실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주권자인 국민적 소명에 부응하는 일이다.

-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놓고 미국, 중국, 일본 사이에서 우리나라는 어떤 외교를 펼쳐야 할까.
▲ 현재 우리나라는 북한의 심각한 핵 위협에 직면하고 있으며 북한의 핵 공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차기 대통령은 북한의 핵 위협으로부터 우리 모두를 보호해야 하는 중차대한 임무를 부여받고 있다. 한국의 비핵상태는 확장 억제를 약속하고 있는 미국과의 동맹을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만들고 있다.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데 있어서는 한일관계의 정상화도 필요하다. 한국은 한미동맹 강화 차원에서 한일관계를 접근할 필요가 있다. 과거 역사 문제가 한일 간의 안보 분야 협력에 지나치게 영향을 주지 않도록 자제할 필요도 있다. 정부는 북한의 핵무기를 폐기 또는 포기시키기 위해 현재 진행되는 국제적인 노력을 지속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국제 정세를 살펴보면 중국과 일본은 미국을 상대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잘 얻어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니다. 어떤 전략을 구사해야 할까.
▲ 우리가 생존하고 번영을 하기 위해서는 한미동맹을 분명히 한 후 외교를 펼쳐야 한다. 중국이 부상하고 있지만 군사력 면에서는 미국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잘 분석하고 대처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제일 약삭빠르게 대처한 것이 일본의 아베 총리다.
일본은 트럼프와 관계를 잘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접근했다. 일본 사람들은 강자에게 약하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좋아하는 것을 선물해 줬다. 일본 기업들을 총 동원해 미국에 100만개 직업을 만들어 줬다. 그걸로 거래를 했다. 대신 일본은 중국에 대처하기 위해 ‘싸울 수 있는 국가’ 즉 군대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헌법 개정에 나섰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패전 후부터 군대를 만들 수 없었다. 당시 맥아더 장군이 싸우지 못하는 국가로 만들었다. ‘싸울 수 있는 국가’ ‘보통 국가’가 되기 위해 헌법 개정을 해야 하는데 일본은 미국과의 거래를 통해 그 길을 열었다. 또 중국과의 센카쿠 영토 분쟁에 대해 미국으로부터 확실히 보호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미국에게 경제적인 이익을 주고 안보를 챙긴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굉장히 단순한데 그런 특성을 잘 이해하고 접근해 거래에 성공했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접근법이 달랐다. (아베 총리에 비해) 상당히 진중한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기간 중 중국을 환율조작국이고 미국의 이익을 해친 나라하고 비판했다. 하지만 두 정상이 만난 후 서로의 이득을 취했다. 중국은 미국으로부터 경제 제재를 받지 않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북한의 핵문제, 즉 북한에 압박을 가하는 문제를 동의해 주고 경제 제재에 대한 미국의 양보를 받아냈다. 외교적으로 접근을 잘 했다.
 
- 통일 문제도 빼 놓을 수 없는 과제다. 통일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 독일이 통일될 수 있었던 것은 소련 체제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통일을 위해 독일(당시 서독)은 엄청난 노력을 했다.
그리고 그게 가능했던 건 독일의 경제력이 월등했기 때문이다. 분단 상태였던 동독과 서독은 4개국이 공동 점령을 하고 있었다. 한국보다 불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독일의 막강한 경제력이 뒷받침됐고 통일에 대한 의지가 확고했다. (동독) 시민들이 주체가 돼서 바꾼 거다. 마찬가지로 한반도 통일은 북한 주민의 협조 없이 절대 안 된다. 장기적으로는 통일이 돼야 하지만 지금 중국이 부상한 상황에서 통일 문제는 하나의 관리 차원의 문제다.
실질적인 통일은 당장 어렵다. 그래서 남북 시민 간 접촉이 늘어나야 한다. 북한 시민이 북한의 정권을 바꾸도록 해야 한다. 그러한 정책을 가져야 한다.
그중 비핵화라는 것은 외교적인 목표다. 지금 상황에서는 북한이 붕괴되는 게 유일한 방법인데 그러면 우리가 감당하기가 힘들다. 북한 붕괴 후 통일이 된다고 가정하면 우리가 망하는 일이다. 대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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