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튼튼한 안보·저녁 있는 삶·집값 해결” 등 쏟아진 ‘주문’

<뉴시스>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향후 대한민국호(號) 운명을 결정한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임박했다. 이번 선거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유례 없는 조기 대선이라는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 뜨겁다. 사전에 실시된 재외국민 선거는 역대 최고 투표율을 기록했다.
 
이렇듯 선거에 전 국민적 관심이 쏠리고 있지만 현재 한국 내외 상황은 심상치 않다. 외교·안보·사회·경제 위기는 그야말로 비상 상황이란 분석이다. 북핵 위협은 가속화되고, 각종 사회·경제 지표는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사상 최대 가계부채(1000조), 노인 빈곤율·자살률 OECD 1위, 사상 최고의 청년실업률(9.8%). 현실이 이렇다 보니 특히 젊은 층에서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라는 말도 등장했다. 

그래서 이번 선거가 중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시민들은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건 이후 탄생하는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높은 상황이다. 국민 개개인의 삶을 개선하고 새 시대를 열어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일요서울은 차기 대통령에게 바라는 점을 각계각층의 시민들에게 들어봤다.
 
남북관계 개선·일자리·부동산·부패 청산 ‘묵직한 주문’부터
아동범죄 엄벌·출산 장려·노인치매 지원 ‘세세한 주문’까지

 
청년·여성·직장인·노인 등 각 계층마다 다양한 요구가 쏟아졌다. 튼튼한 나라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와 함께 일자리, 부동산, 육아, 복지 문제까지 대통령에게 바라는 시민들의 요구는 다양했다. 이들은 며칠 뒤 도래할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도 내비쳤다.
 
직장인들은 치솟는 집값 문제나 자녀 교육 및 안전 문제 등 해결을 희망했다. 또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저녁 있는 삶’을 주문하면서 관련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도 했다.
 
맞벌이 직장인 박모(33)씨는 “집값이 너무 비싸다”며 “서울아파트 평균이 6억이라는데 월급 모아서 집 산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는) 전부 은행 대출이고 국가적으로도 리스크(위험)가 너무 크다”며 “집값 안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기업 7년차 직장인 정모(32)씨는 “행복주택 10년 이상 장기 임대나 전세 기간을 기본 5년으로 적용하는 등의 부동산 대책이 절실하다”며 “집이 없으면 결혼도 없고, 결혼이 없으면 출산도 없다”고 지적했다.
 
일주일 평균 3일 야근한다는 정 씨는 근로 시간 문제도 언급했다. 그는 “적정 노동 시간, 시간 외 수당 등을 규정한 법이 있는데 이를 안 지키는 건 문제고, 안 지켰을 때 처벌이 약한 건 그에 못지않은 문제”라며 “근로기준법 위반에 대한 처벌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씨는 또 아동 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로 안전한 대한민국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는 ‘조두순 사건’을 예로 들면서 “1명의 조두순이 얼마나 많은 부모와 아이들을 떨게 만들었겠는가. 아동 성범죄 양형 기준을 법적 최고형으로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13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의 경우 10년 이상 징역 또는 무기징역에 처한다.
 
아이 두 명을 키우고 있는 박성완(33)씨는 교육 현장에서 부(富)가 대물림되는 현실에 대한 개선을 희망했다. 박 씨는 “‘개천에서 용 난다’란 말은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우리 아이들은 부가 부를 낳는 교육환경에서 자라고 있다”며 “아이들이 꿈을 갖고 이뤄 나갈 때 최소한 사회적 박탈감은 느끼지 않는 그런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회 복지 강화에 대한 주문도 있었다. 수입자동차회사에서 영업직으로 근무하는 김모씨는 “국민들이 내는 세금은 늘어나는데 삶의 질이 좋아진다는 사람은 주위에 없다”며 “증세 없는 복지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의 많은 국가들처럼 내는 만큼 (복지) 혜택을 받는 나라를 원한다”고 했다. 김 씨는 또 “4대강과 비선 실세 등 부패와 비리 문제를 청산해줬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청년·여성·노인, 제각각 ‘희망’ 주문
 
청년들은 한목소리로 ‘취업 문제’ 해결을 주문했다. 또 단순 일자리 해결이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 소재 대학 3학년 최모(24)씨는 “우리나라는 취업준비생의 교육수준과 실제 하게 되는 업무와의 미스매칭이 심각한 수준”이라며 “박사학위 소지자가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는 현실에서 이를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열심히 노력했다면 그에 맞는 업무와 봉급을 제공하는 일자리가 더 많아져야 한다”면서 “이번 대통령은 양질의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직접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했다.
 
노량진에서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박모(26·여)는 “차기 대통령은 공무원 수를 늘리고 경찰수사권을 강화했으면 한다”며 “또 검찰개혁을 제대로 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여성을 위한 출산지원 장려정책을 확대해줄 것을 희망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다소 늦은 나이에 결혼했다는 권모씨(35·여)는 “요새 다들 늦게 결혼하는 추세인데 부인이 임신기간 중 더 받아야 하는 검사나 각종 치료 지원, 출산 후 태아에 생기는 병에 대한 검사 지원, 불임부부 시험관 횟수 늘여주기 등 다양한 출산 지원 정책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국공립이 교사당 학생 수가 적어서 애들 보내기 좋다고 하는데 국공립 어린이집 확대하고, 어린이집 교사나 수업의 질이 향상될 수 있는 그런 정책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아울러 “아동 학대 사례가 발생하면 강력한 처벌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총 유권자의 25%에 달하는 60대 이상 노년 세대들은 전통적 관심사를 반영하듯 ‘안보’에 대한 주문이 많았다. 서울역에서 만난 이철순(75)씨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지속돼 국가안보를 굳건히 지킬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명숙(68·여)씨도 “군대 다녀온 든든한 안보관을 가진 사람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힘써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노인복지에 대한 요구도 잇따랐다. 70대 한모씨는 “길 가다 폐지 줍는 사람들 보면 마음이 안 좋다”며 “이런 취약 계층에 기초연금 등 복지가 더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송주일(72)씨는 ‘노인 치매’ 문제를 언급하면서 “가정이 망가지지 않도록 치매 등 노인 질환에 대한 국가 책임을 더 부담할 수 있는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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