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신출귀몰 끝없는 사기 행각… 2010년부터 수감생활 반복
수감 중 법조계 지인에 “독방 이동” 청탁 편지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함바(건설현장 식당) 브로커’ 활동을 하다 사기(詐欺)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희대의 사기꾼’ 유상봉씨(71)가 수감생활 중 법조계 인사에게 독방으로 옮겨달라는 청탁 편지를 보낸 사실이 최근 확인됐다.
 
유 씨는 앞서도 자신과 이해관계가 얽힌 고위공직자 등 지인들에게 수십 차례 편지를 보내 청탁하거나 구명을 요청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유 씨의 청탁을 거절한 사람들은 이후 검찰 수사선상에 오르는 일이 많아 유 씨의 편지는 ‘공포의 편지’로 불린다.
 
법조계에 따르면 유 씨는 최근 법무부에 힘을 쓸 수 있는 법조계 인사에게 편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유 씨는 이 편지에서 최근 부산구치소에서 서울구치소로 이감된 직후 독방에 머물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유 씨는 편지에서 독방에 가야 할 이유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진 않았다.
 
그는 또 서울구치소 이감 직후 구치소 측이 유 씨가 갖고 있던 자료 가방 10여 개를 영치할 수 있다며 정리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영치는 ‘영장에 의하지 않은 압수’로 구치소 측이 수감자가 소지하고 있던 개인 물건을 압수해 보관해 놓는 것이다.
 
유 씨는 구치소에 자신의 재판 관련 자료뿐 아니라 이해관계에 있는 지인들에 대한 자료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 씨는 2010년부터 수감생활을 반복하면서 고위공무원 등 지인에게 수십 통의 청탁 편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저를 좀 살려주십시오. 수도권 (함바) 현장 5곳만 (수주하도록) 도와주십시오”라거나 “검찰과 경찰에 고소한 사건 합의를 위해 현장(함바)을 3~4개만 도와주시길 바랍니다”라는 등의 내용이었다.
 
만약 편지를 받은 인사들이 편지를 돌려보내는 등 청탁을 거부하면 “더 이상 희망이 없으니 결단을 내리겠다” “저의 서운함 때문에 여러 사람이 저와 같은 입장에 처할 것”이라는 등 협박 편지를 다시 보냈다. 그래서 관가와 법조계 등에서는 유 씨의 편지를 ‘공포의 편지’로 부른다. 유 씨의 편지를 받거나 유 씨가 이름을 진술한 상당수가 사정당국의 수사선상에 올라 형사처벌됐기 때문이다.
 
강희락 전 경찰청장(65)은 유 씨에게서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2011년 구속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았다. 안준태(64) 전 부산시 부시장과 청와대 관계자, 경찰 고위간부 등도 유 씨에게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지난 2월에는 부산 해운대 엘시티 비리 의혹으로 조사받던 허남식 전 부산시장(68)이 유 씨가 부산의 한 아파트 함바를 맡도록 도운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어떻게 법망 피했나
 
1990년대 말부터 함바집 운영권 장사를 하며 숱한 피해자를 양산한 것으로 알려진 ‘희대의사기꾼’ 유 씨는 어떻게 지금까지 법망을 피할 수 있었을까.
 
실제 확인되는 유 씨에 대한 고소ㆍ고발사건만 해도 서울 송파와 경기 성남, 안산 등지에서 4~5건을 비롯해 최소 40건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두 이중계약 등 운영권 판매와 관련한 계약 위반 때문이다. 서울 동부지검 수사에 유 씨가 걸려든 것도 그와 함바집 운영권 계약을 했던 피해자 6명이 사기 혐의로 고발하면서였다.
 
하지만 유 씨는 2006년 재개발 아파트 함바집 비리 건으로 집행유예를 받은 것 외에는 그간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고 대부분 합의 등으로 결국 유야무야됐다. 지난 2010년 성남 중원경찰서에도 고발됐지만 합의로 마무리됐다. 더욱이 유 씨는 함바집 운영권을 따내기 위해 경찰은 물론 지방자치단체, 국회의원, 고위관료 등에게 수시로 금품을 뿌린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또한 수면 아래 있었다.
 
유 씨와 여러 차례 거래를 했다는 함바집 업자 P씨는 “유 씨와 4차례 계약서를 썼지만 어디에도 그의 이름은 없었다”고 말했다. 함바집 업자들에 따르면 유 씨는 운영권 양도 계약서 작성에는 처남을 내세우고, 주고받는 자금은 항상 딸 명의의 통장을 이용했다고 한다. 철저한 현금 로비 수법도 흔적을 지우는 한 방식이었다. 유 씨는 강남의 유명한 한정식집인 D식당에서 경찰 간부나 고위 관료들을 만나 돈을 건넸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 씨와 운영권 거래를 했던 J씨는 “유 씨가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 로비자금용으로 쇼핑백에 현금 5000만 원을 넣는 걸 봤다”고 말했다. 심지어 유 씨는 한 고위 관료의 아들 결혼식 때는 아파트를 선물했다는 소문까지 나돌 만큼 ‘통 큰’ 로비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수법을 사용하다 보니 유 씨의 비호세력은 경향 각지,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곳곳에 산재했다는 얘기다. 그는 피해자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데 이렇게 관리한 인맥을 과시하는 방법을 썼다. 유 씨를 만났던 또 다른 함바집 운영권 업자는 “유 씨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어떤 경찰이든 승진시킬 수 있다’고 말하며 힘을 과시한 적도 있다”며 그에게서 권력을 업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유 씨가 “나는 무소불위”라는 말을 주변 사람들에게 해왔다는 것이다.
 
유 씨와 동업을 했다는 한 업자는 “유씨에게 떼인 돈 문제로 한 지방검찰청에 고소·고발이 빗발쳤는데도 그는 무사했다”며 “가족 중에 변호사가 있어 법조계 인맥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뒷말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림자 CEO 행세
 
흔적을 남기지 않는 ‘희대의 사기꾼’ 유 씨의 습성은 회사 운영방식에서도 잘 드러났다. 그는 자신이 사실상 운영한 함바집 운영업체 임원 명단에 이름을 거의 올리지 않고 대신 친인척을 내세웠다. 이 역시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경우 피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법(法)의 어두운 측면에 익숙한 ‘범털’의 모습 그대로다. 그래서인지 당시 그의 사업 규모에 대한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가운데 그가 1,000억대 자산가라는 설, 500억을 로비에 썼다는 설 등 여러 추측이 나왔다.
 
하지만 유 씨의 이런 행각에 대한 여러 설이 믿을 수 없다는 증언도 있다. 함바집 사건이 불거지기 전 1년 반가량 유 씨의 일을 도왔다는 K씨는 “유 씨는 말이 느린 데다 말수가 적고 말을 할 때도 입을 가리고 할 정도로 아주 소심한 사람”이라며 “유 씨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이 부풀리는 측면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또 2009년까지 유 씨에게 사무실을 임대해준 건물주 B씨는 “엄청난 재산가라면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80만 원짜리 사무실을 썼겠느냐”며 “그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못 받았다”고 말했다.
 
유 씨는 강희락 전 경찰청장 등에게 금품을 건넨 혐의로 2010년 구속 기소돼 만기 출소했지만, 다른 사기범죄가 드러나 구속 기소됐다. 함바 운영권을 받아주겠다면서 계약금 등 명목으로 5명에게서 20억 원이 넘는 돈을 받아 가로챈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로 지난해 항소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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