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과거의 향수와 미래 비전을 엮어내는 체질 개선 요구
- 다당제로 제도 개혁 앞장서는 보수 정당이 대안

 
대통령 탄핵 및 파면으로 치러진 초유의 19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41.1%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다자 구도를 감안해도 ‘친문 유권자’보다 ‘반문 유권자’가 더 많았음을 보여주는 결과였다.

다만 ‘반문’은 제각각 정체성이 다양한 집단이었고, 각자의 이유로 문재인을 불신하던 이들을 하나로 묶을 만한 카리스마적 정치인은 등장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민주당은 무난하게 승리할 수 있었다.

민주당은 한국 정치의 지형도에서 보통 ‘진보’로 분류된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미국이나 일본과 비슷하게, ‘정치적 좌파’가 영향력 있는 제도권 정당으로 확실하게 자리 잡지 못한 사회다.

그래서 미국이나 일본에서 상대적 진보 성향 정당을 지칭하는 ‘리버럴’이란 말을 선호하는 이들도 있다. 상당수 민주당 지지자들은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로, 민주당을 합리적 보수정당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한국 사회의 특성상 그간 보수와 진보의 변별은 주로 북한에 대한 태도 문제에서 생겼다. 또한 2000년대 이후에는 복지정책에 대한 태도 문제가 변별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합리적 보수’ 혹은 ‘따뜻한 진보’를 주장하는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와 같은 이도 복지정책은 대폭 수용한 점에서 볼 수 있듯이 이것이 보수파에서 확고하게 합의된 기준이라 보기도 힘들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고군분투

이번 선거가 보수 진영에겐 애초부터 어려운 구도였다. 민주당과 진보 진영에서 흔히 쓰던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단어를 보수 진영이 공공연하게 쓸 정도였다. 국정농단 게이트로 민심이 요동치고 보수정당이 분열하며 대통령 탄핵이 성사되는 과정에서 보수는 명분을 잃었고 분열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또 별도로 봐야겠지만, 몇 달 전까지 같은 정당이었던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후보가 단일화를 이루지 못한 상황은 그들이 대선 승리가 목표가 아닌 대선 후 보수세력의 주도권 경쟁이 목표인 선거를 했음을 의미한다.

결과는 모두 아는 대로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24.0%,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6.8%를 득표했다. 보수파 후보는 아니지만 ‘반문 유권자’의 지지를 받았다고 평할 수 있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21.4%를 득표했다.

세 사람의 표를 합하면 과반이며, 홍 후보와 유 후보만 합쳐도 30%는 넘는다. 수치만 봐서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칭했던 선거 국면에서 선전한 것으로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내막을 들여다보면 문제 해결이 된 부분은 없다. 과거의 문제도 미래의 문제도 정리되지 않았다. 국정농단 게이트와 대통령 파면에 대한 정치적 판단을 어떻게 내려야 하는지도 합의되지 않았다. 향후 한국 사회에서 보수 정당이 가야 할 길에 대한 비전도 제시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홍준표 후보는 한때 문재인·안철수 양강 구도까지 점쳐진 군소 후보의 위상에서 2위까지 치고 올라가는 기염을 통했다. 매우 효과적인 선거 캠페인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역감정 조장, 종북좌파 비토, 강성노조 비토, 동성애 반대 등의 캠페인으로 결집된 지지율은 자유한국당이 다시금 수권정당이 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보기는 어렵다.

과거 새누리당은 스스로 ‘보수’란 말도 잘 쓰지 않은 채 중도파 유권자를 겨냥하는 캠페인을 벌여 민주당을 상대했다. 보수파 유권자는 어차피 결집되어 있으니 중도를 겨냥하는 것이 승리를 위한 길이란 걸 잘 알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집토끼’도 결집되어 있지 않으니 이들이라도 결집하기 위한 선거 캠페인을 했다. 홍 후보의 캠페인은 서구 사회 곳곳을 진동하는 극우, 혹은 우파 포퓰리즘의 그것과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한국 사회에선 아직 낯선 방식이다.

결과적으로 그의 캠페인은 대구·경북 유권자들을 일종의 집단 자기 최면으로 규합했을 뿐 부산·울산에조차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경남에서 근소한 차로 1위를 했을 뿐이다. 수도권에선 안철수 후보에게도 밀려 3위였다. ‘강남’이란 단어로 표상되는 수도권 중산층에게 홍준표 후보가 매력이 없었던 것이다.

이들에게 지지의 명분을 얻지 못한 자유한국당이 미래를 장담하기는 힘들다.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친박’과 홍준표 후보 간의 당권 다툼이 예정되어 있는 것도 큰 걸림돌이다.
 
‘포스트 박근혜’ 시대의 보수의 가치 고민

유승민 후보의 경우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판단할 여지는 있으나, 바른정당 구성원조차 그렇게 생각하려 들지 의문이다. 비슷한 지지율을 얻은 정의당이 풍찬노숙에 익숙한 체질이라면, 바른정당 구성원들은 양지만 밟고 살았다.

당장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독자생존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면 이합집산할 수 있는 이들이다. 심지어 대통령 선거가 끝나기도 전에 그럴 수 있음을 탈당파들이 보여주었다. ‘김무성계 의원을 모두 내보낸 김무성 의원’의 향방도 불투명하다.

1997년과 2007년의 정권 교체 이후 여의도 정가에선 ‘십년 주기론’이란 게 힘을 얻었다. 다소 파행적인 행태로 진행됐기는 했지만 2017년에도 그것이 실현되었다. 한 번 졌을 때는 우연이라 봤지만 두 번 지자 바짝 긴장한 것이 양당의 패턴이었다.

참여정부 시기에 뉴라이트 운동의 탄생이 그랬고, 2012년 대선에 비해 진일보한 2017년 민주당의 대선 캠페인이 그랬다. 지난 이십 년을 실질적인 정권교체가 가능했던 양당 체제로 규정하기에 손색이 없다.

그러나 2016년 총선에서부터 균열이 발생했다. 박근혜라는 정치인은 한국의 성공적인 경제성장이 형성한 두터운 보수파 유권자들을 규합할 수 있는 마지막 후보였을 수도 있다. 그가 대통령이 된 후 신망을 잃자 유권자들은 다당제를 열망하기 시작했다.

보수정당이 다시 양당제의 한 축이 되려면 과거의 향수와 미래에 대한 비전을 성공적으로 결합하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체질개선에 돌입해야 한다. 만일 그게 어렵다면, 어쩌면 보수정당의 생존을 위해 다당제에 적합한 선거제도 개혁이 시도될 수도 있다. 보수정당과 정의당이 선거법 개정을 요구하는데 민주당이 난색을 표하는 진풍경을 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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