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지지율, 洪의 ‘기회의 숫자’냐 親朴의 ‘제압의 숫자’냐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24%.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였던 홍준표 전 경남지사의 대선 성적표다. 정치권은 바로 이 24라는 숫자에 주목한다. 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치러진 선거라는 점을 감안할 때 ‘충분히 높은’ 득표율이 될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역대 최대 격차 패배라는 오명을 안겨준 ‘충분히 낮은’ 득표율이기도 하다. 한국당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대선을 치렀다. 조만간 전당대회를 열어 당 대표 선출을 우선적으로 할 것으로 예상된다. 홍 전 지사를 필두로 한 비박계와 친박계 간 당권을 둔 ‘대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24%라는 득표율이 홍 전 지사가 당을 장악할 수 있는 ‘기회의 숫자’가 될지, 숨죽이고 있던 친박계가 전면에 재등판할 수 있는 명분이 되어 눈엣가시인 홍 전 지사를 ‘팽’할 수 있는 ‘제압의 숫자’가 될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된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고질적인 ‘계파 갈등’, 도화선은 洪의 ‘입’
- “지난 8·9 전당대회 그대로 재현될 듯”
 

자유한국당이 대선 패배의 후폭풍에 휩싸이는 양상이다. 당권을 두고 친박계와 비박계 간 전면전이 일어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미 대선 레이스 막판 권성동, 김성태, 장제원 의원 등 바른정당 일부 의원들의 복당 시도에 대한 친박계의 반발로 당내 계파 충돌의 불씨가 살아 있음이 드러났다. 친박계는 서청원, 최경환, 윤상현 의원이 실력 행사에 나서는 등 강력히 반발했다.
 
홍준표 vs 정우택, 계파 전쟁 ‘서막’ 오르다
 
홍준표 전 지사가 대선 후보의 특권인 당헌 104조 ‘당무 우선권’을 통해 바른정당 탈당 의원들의 복당을 지시하자 이번에는 범(凡)친박계인 정우택 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정치적 선언’이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면서 친박계와 비박계 간 당권투쟁의 서막을 예고했다.
 
정치권은 홍 전 지사가 ‘탈당파 포용’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데 대해 그가 겉으로는 ‘보수 대통합’을 주장하고 있지만 속내엔 당권 장악에 나설 때를 대비한 전략이라고 평가한다. 차기 전당대회에서 친박계와의 당권 경쟁을 염두에 두고 홍 후보가 이들의 입당을 관철시키려 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만약 홍 전 지사가 자유한국당 차기 전당대회에 출마한다면 당내 기반이 전무한 그에게 최대 우군은 바른정당을 떠나 자유한국당으로 돌아온 의원들뿐이다. 그는 대선 출마 직전까지 경남지사로 재직하면서 여의도 정가에서 떨어져 지내왔기에 당내 이렇다 할 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친박계가 홍 전 지사의 친위부대의 탄생을 미연에 방지하고 나서면서 계파 갈등이 촉발된 것이다.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의원은 “‘벼룩에도 낯짝이 있다’는 속담이 있다”면서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라면 정치철학은 고사하더라도 최소한의 정치 도의는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비판했다.
 
그는 홍 전 지사를 겨냥해선 “위기일수록 원칙과 명분을 지키고, 오로지 국민과의 신뢰를 중히 여겨야 한다”며 “(바른정당 의원들이 복귀해 홍 후보를 지지하기로 한 데 대해) 과정이 생략됐다. 명분도 설득력도 없다. 국민도 당원들도 납득하기 힘들다”고 몰아붙였다.
 
비록 정 원내대표가 지난 12일 의석수 확보를 위해 이들에 대한 복당을 최종 승인했지만 여전히 친박계에 맞서기에는 비박계의 영향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또한 정치권에선 복당에 대해 반대의사를 내비쳤던 정 원내대표가 갑자기 태도를 바꾼 데 대해 복당 의원들과 정 원내대표·친박계 사이 물밑 거래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내놓고 있다.
 
복당 의원들 처지로는 자칫 ‘낙동강 오리 알’ 신세가 될지도 모르는 막다른 상황에서 누구의 손이든 잡아야 할 판이었기에 이 같은 추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고, 당 대선 후보도 버리고 떠났던 이들이 입당 후 홍 전 지사가 아닌 친박계의 편에 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洪 ‘얼굴 마담’이었나?... ‘팽’ 작업 착수한 친박계
 
그러자 일각에서는 상승 기세를 탄 친박계가 ‘얼굴 마담’이었던 홍 전 지사 ‘팽’ 작업에 착수했다는 말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이미 친박계가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 축출 작업에 들어갔다”면서 “친박계는 30%대 득표율이라면 몰라도 20%대로 홍 전 지사가 당권을 잡으려는 것은 막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사실 정치권에 케케묵은 계파 갈등에 도화선이 된 것은 대선 레이스 초반 홍 전 지사의 ‘입’이었다. 자칭 타칭 ‘독고다이’형인 홍 후보는 친박계를 양박(양아치 친박)이라고 부르고 박 전 대통령을 ‘향단이’로 지칭했다.
 
그는 한 술 더 떠 지난달 6일에는 광주를 찾아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공식 기념곡으로 지정하는 데 찬성한다”고까지 했으며 박 전 정부가 추진한 위안부 협상을 파기하겠다고도 했다.
 
전문가들은 홍 전 지사의 이 같은 발언이 친박계와의 불편한 관계를 촉발시켰을 뿐만 아니라 5·9 대선에서 ‘보수의 심장’ TK에서조차 지지율 50%를 넘기지 못하는 믿기지 않는 사태를 야기했다고 지적한다.
 
물론 일각에서는 홍 전 지사가 좌파에 대한 맹렬한 공격을 통해 유의미한 지지율을 기록하면서 보수 궤멸을 가까스로 막았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홍 전 지사가 아닌 ‘10년 집권 여당’ 저력에 힘입은 바가 컸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결과적으로도 홍 전 지사는 품성론과 자질론이 끊임없이 거론될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약점을 낳게 되는 꼴이 됐고 이는 향후 당권 경쟁에서도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고 관측된다.
 
洪, ‘당권 도전설’에 ‘재보궐 출마설’까지
 
이에 전문가들은 사면초가에 몰린 홍 전 지사가 일단 한발 뒤로 물러서서 당 대표에는 ‘대타’를 내세울 것이고 자신은 백의종군을 선언한 뒤 국회의원 보궐선거 등으로 원내에 재입성해 당내 입지 구축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는 추세다.
 
그 주인공으로는 비박계 심재철 나경원 의원 등이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친박계 후보로는 정 원내대표를 필두로 원유철 이주영 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고, 특히 황교안 국무총리 등 외부 인사 수혈도 검토 중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의 관계자들은 홍 전 지사를 비롯한 비박계가 당권을 거머쥐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자유한국당을 친박계가 장악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지난 8·9 전당대회 당시 예상을 깨고 친박계 핵심이자 박 전 대통령의 복심인 이정현 의원이 당 대표에 선출됐다. 이 의원은 44,421표를 득표해 압도적인 표 차이로 보수정당에서 첫 호남지역 출신 국회의원이 당대표로 당선되는 쾌거를 달성했었다.
 
당시 친박계는 당 대표 선거뿐만 아니라 최고위원단 선거에서도 비박계에 압승을 거뒀다. 새 최고위원에 친박계인 조원진·이장우·최연혜 의원이 선출됐고, 별도로 선출한 청년 최고위원에도 친박계 성향의 유창수 후보가 당선됐다. 비박계 후보 중에선 강석호 의원이 유일하게 최고위원에 올랐으며, 정문헌·이은재 의원 등은 모두 고배를 마셨다.
 
현재 상황도 과거 8·9 전당대회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대선 이후 친박은 곧바로 생환한 반면 탈당파 의원들에 대한 복당은 반발에 부딪쳤던 사례는 여전히 당의 주류가 누구인지, 의사 결정의 최종 권한을 어느 쪽이 쥐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으로 평가된다.
 
한편 일각에서는 지금의 친박계가 ‘권토중래’한 친노계의 코스를 밟을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참여정부의 실패와 지난 17대 대선의 참패로 친노계는 한동안 정치권에서 힘을 잃었었다. 당내 영향력도 자연히 저하됐었다. 그러나 권토중래한 친노계는 당을 다시 장악해 나갔고 결국 그들의 주군을 왕좌에 앉히는 데 성공했다.
 
현재까지 친박계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19대 대선 참패로 인해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친박계의 당내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6월~7월에 치러질 것으로 예상되는 전당대회에서 친박계가 당권을 장악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만약 친박계가 당을 완전히 장악한다면,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5년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또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민심이 연민으로 바뀌었듯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민심도 시간이 지나 바뀐다면, 5년 뒤 20대 대선 판도는 19대 대선과 180도 다른 양상으로 치러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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