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개정보다 집행 강화 ‘초점’…재계 ‘먹구름’

<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을 확정지었다. 재계는 축하의 뜻을 전하면서도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걸었던 기업 규제강화 공약 때문에 긴장감이 역력하다.

특히 문 대통령은 10대 주요 대기업, 그 중에서도 삼성·현대·LG·SK 등 4대 재벌 개혁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만큼 이들 기업과의 향후 설전에도 이목이 쏠린다. 일각에서는  새 정부 출범이 빠르게 진행된 만큼 집권 초기에는 강도 높은 정책 추진이나 경제정책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삼성·현대·LG·SK 등 4대 재벌 개혁에 집중
점진적 변화 기대…노동정책 및 규제는 걱정

지난 9일 오전 8시, 중앙선관위가 당선자 확인을 선언함에 따라 임기가 시작된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전 12시에 국회 로텐더홀에서 가진 취임식에서 정경유착 근절과 재벌 개혁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도 공약을 통해 경제민주화와 경제성장의 전제조건으로 ▲지배구조 개혁 ▲재벌의 경제력 집중 축소 ▲공정한 시장경제 구축을 주장해 왔다.
이에 일부 대기업은 곧바로 공약 관련 영향 분석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다.
자사와 직결된 사안들을 중요도에 따라 분류하고 현황을 분석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또 정권 주요 인물들을 파악하고 누가 관련 부처 및 기관을 맡게 될지, 어떤 식으로 정책을 펼쳐나갈지의 분석이다. 정권교체는 핵심 인사 및 조직 개편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한 그룹 관계자는 “집권 초반 강도 높은 개혁이 예고되는 만큼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며 “자칫 총수 부재로 이어질 경우 경영상의 어려움이 많은 만큼 대응 방안 마련에 고심 중”이라고 했다. 특히 법인세 인상은 기업 재무구조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는 만큼 빈 틈 없는 대안을 강구 중 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재벌의 불법경영승계 및 부당특혜 근절, 문어발식 확장 방지, 전면적인 지배구조 혁신, 주주권(투명성) 강화 등을 약속했다.

이에 따라 우선 대주주 일가가 순환출자 등을 통해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그동안 기업들은 2,3세로의 경영승계를 위해 계열공익법인, 자사주, 우회출자 등을 통해 지배력을 높여왔다. 앞으로는 이런 유의 편법증여에 대한 감시가 강화될 예정이다.

문 대통령은 또 재벌의 금융자본 소유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은행·보험·증권·제2금융을 대주주의 지배로부터 독립시키겠다는 취지의 은산분리(금산분리) 강화 원칙을 천명한 상태다.

얼마나 세게 할까? 재계 촉각

은산분리는 비금융회사(산업자본)가 금융사 지분을 10% 이상 보유(의결권은 4%이내)할 수 없다는 이른바 ‘10% 룰’을 이른다. 재벌그룹이 금융계열사를 동원해 자신들이 지배하는 기업을 지원하는 소위 ‘은행의 사금고화’ 현상을 막기 위한 취지다.

우리나라에서는 동양그룹이 계열사인 동양증권을 통해 수조 원대에 이르는 부실 회사채(CP)를 발행해 5만여 명의 피해자를 낳은 2013년 ‘동양 사태’를 계기로 재벌의 금융사 소유를 제한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돼 왔다.  

문 대통령은 국회의 은산분리 완화 움직임에 대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으며, 한발 더나가 계열사 간 자본 출자가 적정범위를 넘지 않는지를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통합금융감독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다.

문 대통령은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돼 온 핸드폰 기본요금 폐지에도 적극적이다. 시민·소비자단체는 SKT·KT·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사들이 부과하고 있는 약 1만1000원의 기본료가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때부터 ‘기본료 폐지’를 약속해왔다.

문 대통령은 ‘재벌 자본주의 사회를 혁파하고 문어발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방지하겠다’는 내용을 10대 공약 중 세 번째로 내걸었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 검찰, 경찰, 국세청, 공정위, 감사원, 중소기업청 등 범정부 차원의 ‘을지로위원회’를 구성해 재벌의 이른바 갑질 횡포에 대한 조사와 수사를 강화하고 엄벌하겠다고 밝혔다.

대주주 일가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불공정거래 근절을 위해 대기업 저승사자로 불린 공정위 조사국을 12년 만에 부활시키겠다는 계획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공정위의 집중 조사 대상은 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이나 CJ, 신세계까지 포함한 범4대 그룹이 될 전망이다. 30대 재벌의 자산총액에서 4대 재벌의 비중은 2015년 기준 51.6%에 달하고 CJ와 신세계까지 포함하면 65.2%다.

문 대통령 캠프에서 새로운 대한민국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던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과거 공정위 조사국 조직처럼 (대기업) 조사 기능을 강화하고 기업 갑질과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해결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나아가 문 대통령은 재벌의 범죄에 대해서는 ‘무관용의 원칙’을 세우고, 대통령의 사면권도 제한할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문 대통령은 최근 대선토론회에서 “반시장범죄를 저지른 재벌은 엄벌해야 한다. 사면권은 국민의 뜻에 어긋나지 않게 행사하겠다”고 공언했다. 현재 비리 혐의로 재판 중인 기업총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이다.

규제 대상 아닌 경제 파트너 기대

집중·전자·서면투표제와 다중대표소송제 등을 포함하고 있는 ‘상법개정안’은 대기업이 가장 부담스럽게 느끼는 공약 중 하나다. ‘기업 옥죄기’로 경영권을 침해하고 투자를 위축시킬 것으로 우려되는 이유에서다.

재계 “국민통합·경제위기 극복에 적극 동참”
여소야대 반쪽 정부, 재벌개혁 성공할까


재계는 기업 옥죄기가 본격화 될 경우 특정기업 경영 및 투자활동 저해, 자율성 침해, 시장 경쟁력 약화 등 위험이 따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각 경제 단체들은 문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하면서도 새 정부의 경제정책에 조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새롭게 선출된 문 대통령에게 시장을 움직이는 기업을 규제의 대상이 아닌 파트너로 인정해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회장 박용만)는 논평을 통해 “경제계는 대통령께서 공정, 혁신, 통합의 가치로 경제사회 분위기를 일신해서 창의와 의욕이 넘치는 ‘역동적인 경제의 장’을 열어주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새 정부와 정치권, 기업과 근로자가 소통과 협력으로 선진경제를 향한 활기찬 경제활동을 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전국경제인연합회(회장 허창수)는 새 정부가 통합과 개혁을 기치로 우리 경제의 활로를 뚫어주길 기대했다. 전경련은 이번 대선은 ‘통합과 개혁’이라는 국민적 열망의 결과라고 평가하며 “국민의 열망에 부응해 촛불과 태극기로 갈라진 사회를 봉합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이 새 정부의 선결과제”라면서 “또한 4차 산업혁명 대비에 범정부 차원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중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회장 박병원)는 새 정부가 저성장의 장기화에 대한 우려를 떨쳐버리고 온 국민이 열망하는 일자리 창출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규제혁파와 신성장동력산업 육성을 통해 기업의 투자 환경을 만들어 주기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의 강도 높은 재벌개혁안이 속도를 내기는 어렵다는 말도 나온다. 이미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계류 중이다. 정치권의 여소야대 구도 속에서 법 통과가 쉽지 않아 우선 현행법 집행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 대통령의 공약 정책 대부분이 법률개정이 필요한 만큼 법제화 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고, 더불어민주당의 의석이 120석으로 ‘여소야대’ 형국이기 때문에 야당의 협조 없이는 법률 개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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