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폐지 수순, 문 닫은 것은 아니라지만…

90년代 일본·미국 진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 준비
고소·고발, 주주총회서 몸싸움 등 경영권 분쟁 극렬


[일요서울 | 남동희 기자] 보루네오가구는 ‘신부들의 로망’으로 불리며 1980년대 업계 선두를 달렸다. 보루네오의 ‘겉과 속이 꽉 찬 가구’ 광고 시리즈는 당대 최고 스타 고 최진실, 김희선 등이 출연했었다. 이후 미국, 홍콩 등으로 진출하며 세계적인 가구기업으로 거듭나는 듯했다. 하지만 혼수 명가의 명운은 반세기를 가지 못했다. 무리한 신사업 투자가 감행됐고 재정은 지속적으로 악화됐다. 경영권 다툼은 몸싸움으로 이어졌다. 결국 보루네오는 한국거래소의 상장폐지 기업 명단에 오르며 개선기간을 갖게 됐다.

“1980년대, 결혼을 앞둔 신부들 사이에서 보루네오가구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한 가구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보루네오가구의 전신은 1962년 위상식 창업주가 설립한 보루네오통상이다. 당시는 급속한 경제 성장으로 건설업이 호황을 맞았고 가구 업체들이 막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중 보루네오는 ‘평생 써도 될 튼튼한 가구’라는 장점을 내세우며 신혼부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매장은 우후죽순 늘어났고 인지도도 상승했다. 보루네오의 TV 광고에는 고 최진실, 이덕화, 김희선 등 당대 최고 스타들이 연이어 출연하며 인기를 구가했다.

삼형제 가구시장 점령

1970년대에 들어서며 보루네오는 국내 가구 브랜드 1위 평가를 받았다. 1986년에는 홍콩 진출에 성공하며 동남아 전역에서 브랜드 1위를 기록했다. 이어 2-3년 사이를 두고 일본, 미국에도 보루네오 해외 지점을 설립했다.

위상식 창업주가 보루네오로 성공하자 동생 위상균 씨는 ‘동서가구’를, 막내 동생 위상돈 씨는 ‘바로크가구’를 세웠다. ‘보루네오-동서-바로크’는 나란히 업계 1, 2, 3위를 차지하며 80년대 가구 시장을 점령했다.

위상식 창업주는 1988년 보루네오를 상장하며 가구업계의 도요타가 되겠다고 선포했다. 보루네오를 세계적인 가구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포부였다. 당시 그를 인터뷰했던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보루네오를 미국에 19개 전시장을 갖춘 성공한 가구 브랜드로 소개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위기가 오며 상황이 급변했다. 당시 보루네오는 상장 이후 해외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려왔던 상태였다. 하지만 일부 현지 법인들이 잇따라 적자를 내기 시작했고 경영 악화를 초래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시 보루네오는 국내, 동남아에서의 성공만 믿고 일본, 미국 등 시장에 사전 준비 없이 진출했다. 천장이 낮고 방이 좁은 일본에서 보루네오 가구는 너무 커 반품되기 일쑤였고 미국에선 동양 가구에 대한 거부감으로 찾는 이가 없었다. 결국 적자는 계속됐고 1991년 보루네오는 법정관리에 들어섰다.

그 사이 국내에는 후발 주자들이 치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근엄하고 어두운 색을 강조하는 보루네오 가구에 비해 한샘, 리바트 등이 현대적인 디자인의 가구를 선보이며 소비자 시선을 끌었다. 경쟁에서 밀리고, 1998년 외환 위기까지 겹치자 보루네오의 위상식 창업주는 회사를 포기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2001년 한국자산관리공사가 보루네오 최대주주에 올랐고 같은 해 11월 보루네오는 법정관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회사는 정상궤도로 돌아오지 못했다. 주력사업인 가구 부문이 흔들리는 상태에서 경영진이 ‘엉뚱한’ 신사업에 손을 댔다. 2011년에는 바이오(의약 건강기능식품 음료) 연구개발 및 생산 판매를 시작한 것이다. 2013년에는 LED조명 개발, 제조 및 판매를 사업목적에 추가했다. 이중 실제로 수익을 거둔 사업은 없다.

5년 새 최대주주 11번 교체

경영권도 안정적으로 유지되지 못했다. 2012년 6월 이후 보루네오의 최대주주는 11번 교체됐다. 회사가 정상화되지 않으니 경영권도 흔들렸던 것이다. 이는 곧장 실적에 반영됐다. 2014년 보루네오 매출액은 541억 원으로 전년 대비 42% 급감했고 영업 손실은 2013~2014년 각각 136억 원, 103억 원을 기록했다.

2015년 전용진 예림임업 회장이 지분 15%를 보유해 최대주주로 올라서며 안정을 찾는 듯했다. 하지만 얼마 안가 경영권을 놓고 고소·고발, 몸싸움까지 발생했다.

지난해 1월 열린 임시주주총회장에서 주주 간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어 주주총회에서 경영진이 교체되자 해당 경영진은 주주총회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신구 경영진 간 비리에 대한 폭로가 이어졌다. 그들은 횡령·배임 고소로 분쟁을 지속했다. 이에 한국거래소는 지난해 2월 보루네오를 상장폐지 대상에 포함시켰다.

보루네오는 1년간의 개선기간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개선기간 후 보루네오는 한국거래소의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심사 평가 항목은 기업의 계속성, 경영의 투명성, 그 밖의 공익 실현과 투자자 보호 등이다.

결국 보루네오는 지난달 27일 한국거래소로부터 상장 폐지를 통보받았다. 상장폐지가 폐업은 아니다. 상장폐지를 통보받은 기업은 15일 내(오는 23일) 이의 신청을 할 수 있다. 일요서울은 이와 관련 보루네오 측에 답변을 듣고자 연락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한편 보루네오 측은 지난달 6일만 해도 경영진 횡령 고소 등의 문제가 해결됐음을 밝히며 상장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가구업계 관계자는 “보루네오가 횡령 등 악재를 극복했다며 경영 정상화를 외친다 해도 국내 가구 시장에서 이케아 등 싼 수입가구들의 공세가 거세다”며 “보루네오가 수익성을 회복하긴 어렵다고 본다”라고 평가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