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 명문대 교수의 일그러진 망동과 검찰의 ‘이상한’ 수사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사회의 고위층 인사들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무색하게 만드는 사건이 알려지면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사립 명문대인 K대 모 교수가 연구실에서 제자를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를 수사한 검찰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10개월이 넘도록 ‘기소중지’했던 것. 검사장급 출신 변호사가 포함된 변호인단을 구성한 가해교수의 대응에 K대 학생들은 ‘전관예우’를 우려하며 엄정 수사를 촉구하고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사건의 시초는 지난해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K대 대학원생이었던 L씨는 저녁 7시경 지도교수인 M교수에게 호출을 받았다. M교수가 참가한 회식자리로 나오라는 것. 조교로 일하고 있는 L씨는 퇴근한 이후였지만 지도교수의 회식을 거부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어서 당연히 술자리에 참석해야만 했다.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노블레스(Noblesse)’?

 
M교수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L씨에게 계속 술을 강요했고 결국 L씨는 만취해 정신을 잃었다. 어깨와 가슴을 파고드는 통증을 느낀 L씨가 정신을 차린 건 새벽 3시경. 눈을 떠보니 술집이 아닌 M교수의 연구실 소파 위였고 M교수가 자신을 성폭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피해를 당하는 도중 L씨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을 알렸고 연구실을 도망쳐 나와 경찰에 신고했다. M교수는 처음에는 성폭행 사실을 극구 부인하다 L씨의 속옷에서 자신의 DNA가 검출되자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다고 말을 바꿨다.

경찰은 성폭행 혐의로 M교수를 검찰에 넘겼고 K대도 사실을 인정해 M교수를 파면했다. 그런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돌연 지난해 말 사건을 ‘기소중지’ 처분했다.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해야 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수사가 중단되면서 L씨는 더 큰 고통의 늪에 빠져야 했다. 가해자인 M교수가 수시로 가족들을 찾아와 합의를 요구했고 심지어 협박성 발언까지 하는 등 괴롭혔기 때문이다.

L씨와 가족들은 2차 피해까지 당하고 있는 상황을 호소하며 수사의 재개를 요구했지만 검찰은 기소중지 후 4개월이 넘도록 손을 놓고 있다가 언론의 취재가 시작되자 비로소 수사를 시작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법조계 전문가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위한 기소중지는 이례적이라는 게 공통된 시각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기소중지 시점에 주목한다. 지난해 12월 말경 기소중지가 됐는데 이 시점이 검찰의 인사고과 평가 시점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자신들의 실적에 마이너스가 되는 걸 피하기 위한 조치였을 것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는 것.

실제로 검찰에서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은 ‘미제’로 분류되는 관계로 검사들이 수사 중인 사건을 ‘기소중지’로 처분하는 꼼수를 쓰는 사례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기소중지’ 사유로 가장 흔하게 이용되는 것이 바로 거짓말탐지기 조사라는 점이다.

또 다른 측면의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CCTV와 녹취, 피해자의 신고 등 증거가 충분하고 여러 가지 정황증거 상 빠른 수사가 필요한데 기소중지 처분 후 4개월이 지나도록 수사가 재개되지 않은 사실을 미뤄볼 때, 단순한 실적 챙기기를 넘어서서 뭔가 보이지 않는 힘이 검찰에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의혹이 바로 그 것. 공교롭게도 언론이 취재를 시작하면서 수사가 다시 시작돼 그러한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 검찰 출신의 모 변호사는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라고 의아해했다. 그러면서 “객관적 증거자료가 많은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법정 증거로 인정되지도 않는 거짓말탐지기 조사결과를 핑계로 4개월 넘게 기소중지한 것은 다른 성폭행 사건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우며 정상적인 사건처리로 보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피해자인 L씨 측에서도, 가해 교수가 합의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고 또 검사장급 출신 변호사가 포함된 ‘매머드급’ 변호인단을 구성해 대응하고 있는 점을 들어 소위 ‘뒷배경’을 이용해 사건을 무마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는 상태다.

‘전관예우’ 우려
공정한 수사 요구 빗발쳐


이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자 K대 총학생회와 일반대학원 총학생회는 지난 4일 서울북부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M교수에 대해 엄정한 수사를 재개할 것을 촉구했다. 특히 M교수가 검사장 출신 변호사를 선임, 이른바 ‘전관예우’를 통해 재판을 유리하게 끌어가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번 사건의 심각성은 대학 사회에 만연해 있는 소위 ‘군대문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귀띔이다. 단체기합 논란, 끊임없는 성추행 사건 등이 대학 내에서 자주 일어나는 주된 이유가 바로 이 ‘군대문화’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 교수는 이러한 위계질서의 가장 상층부에 위치한 권력이기도 하다.

가해자인 M교수 역시 평소에도 조교를 폭행하거나 욕설을 퍼붓는 등 일상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사례가 빈번했고 언어적인 성희롱도 많았다고 학생들을 비롯한 주위 관계자들의 증언이 잇따랐다.

이런 배경에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고 무책임한 검찰의 ‘기소중지’가 이어져 가해자의 합의종용과 협박 등 심각한 2차 피해까지 계속된 것. 피해자인 L씨는 물론 그 가족까지 정신과 치료를 받을 정도로 상상할 수 없는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과 관련, 가해 교수가 반성은커녕 피해자를 협박하는 등 뻔뻔한 태도를 보였던 만큼 명확하고 신속한 진상조사와 함께 M교수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고 K대 학생들은 물론 관계자들은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또 검찰이 실적을 위해 편의적으로 기소중지를 남발할 경우 이번 사건처럼 평생 지속될 성폭행 피해자들의 상처를 더욱 아프게 할 수 있어 기소중지 처분에 신중할 필요가 있으며 이번 사건이 보다 공정한 수사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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