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1993년 파칭코 사건의 재판” 주장
조폭 개입·업소 난립·시상률 조작 등은 슬롯머신과 ‘복사판’

 
2006년 8월 27일 한나라당은 사행성 오락게임인 ‘바다이야기’를 정치인과 공무원, 조직폭력배가 연루된 ‘정(政)·관(官)·폭(暴) 게이트’로 규정, 검찰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국세청 출신 권모 전 청와대 행정관의 모친이 경품용 상품권 업체의 지분을 소유한 사실이 드러난 것을 계기로 배후세력에 대한 의혹을 더욱 부각시키며 공세의 수위를 높였다.
 
나경원(羅卿瑗) 대변인은 이날 염창동 당사에서 현안 브리핑을 갖고 “‘오염된 바다’가 단순한 정책 오류를 넘어 ‘정·관·폭’ 세 축이 돈과 이권을 주고 받아온 권력형 도박게이트란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나 대변인은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민정수석실 행정관의 경품용 상품권업체 지분 보유와 발행업체 선정 개입 정황, 상품권업체 대표의 남편이 막강 권력기관인 국세청 직원이란 점, 여권 실세들을 등에 업은 조직폭력배의 상품권 유통망 장악 등 검은 커넥션이 그런 상황을 예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1993년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로서 파칭코(슬롯머신)업계 비호세력 사건을 수사, 업계 대부인 정덕진(75) 씨와 ‘6공 황태자’ 박철언(朴哲彦) 전 의원을 구속시켰던 홍준표(洪準杓) 의원은 이날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바다이야기 사건은 13년 전인 1993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파칭코 사건의 재판”이라고 주장했다.
 
홍 의원은 “바다이야기 사건은 유사 ‘파칭코 사건’으로 정·관계 배후세력의 비호, 탈세, 조직폭력이 어우러진 권력형 부패 커넥션”이라며 “그간 검찰은 비겁하기조차 했다. 이제는 당당해져야 한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검찰은 영원하다는 검찰 선배들의 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의원이 강조한 ‘바다이야기’와 슬롯머신의 닮은점과 차이점은 무엇이었을까?
 
■ 닮은 점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 터진 슬롯머신 업계 비리 수사는 급속도로 확산돼 사회 문제로 인식돼 온 사행성 도박에 철퇴를 내렸다는 점에서 바다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당시의 사행성 게임 비리 수사와 맥(脈)이 닿아 있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 일부 호텔에서만 영업한 슬롯머신 업소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거친 뒤 1990년대 들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1993년 당시 서울에만 79개 업소가 문을 열었으며 전국적으로 330개가 넘는 업소가 들어서 사회 문제가 됐다. 바다이야기 등 사행성 성인오락 게임장 수도 빠른 속도로 늘어 당시 급속히 늘어났으며 수많은 서민들이 큰 돈을 탕진하고 인생을 망치는 사례가 속출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당시 슬롯머신 업소 운영 전반에 조직폭력배가 깊숙히 개입했다는 사실이 수사를 통해 확인됐는데 이 점은 당시 사행성 오락 게임 업계에서도 공공연한 사실로 여겨졌다. 당시 검찰은 경품용 상품권 유통망 및 오락실 운영에 조폭이 상당히 깊숙히 개입했다고 보고 수사망을 폭력 조직 쪽으로도 좁혀갔다.
 
한 지역신문 기자는 “업주들이 승률을 조작하거나 최고 시상률을 턱없이 높게 잡은 것은 1994년 취재한 슬롯머신 업소와 다를 바 없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슬롯머신 수사에서 일부 업소는 100원을 넣어 1게임으로 챙길 수 있는 최고 시상액을 법정한도(10만원) 보다 22배나 초과하는 220만원까지 설정했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바다이야기의 경우 ‘메모리 연타’와 ‘예시’ 기능을 넣어 이용객들이 자리를 뜰 수 없도록 만들었고, 최고 200배가 넘는 상금을 줬다는 점에서 예나 지금이나 ‘한탕’을 노리는 업자들의 상술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사건의 주역이었던 정덕진 씨와 바다이야기 제조사 대표 차용관 씨가 각각 슬롯머신과 바다이야기로 떼돈을 벌었고, 이 돈 중 일부로 사회공헌 사업을 한 것도 매우 흥미롭다.
 
정 씨는 1980년대 후반 치안본부장(현 경찰청장)과 내무부 장관(현 행정자치부 장관)에게 5차례나 표창장과 감사장을 받을 정도로 건실한 사업가이자 지역 유지로 행세했고, 바다이야기 제조사인 에이원비즈의 대주주 차용관 씨도 게임기를 팔아 번 수백억원대 돈으로 대북사업을 벌이는 등 사회에 공헌했다.
 
북에서 태어난 정 씨가 남한에 내려와 단성사 앞에서 암표장사를 해가며 주먹 세계의 제왕으로 군림하고 슬롯머신 업계를 평정했다면 바다이야기의 차 씨는 게임 벤처에 발을 들여놓은 뒤 부침을 겪은 끝에 대박을 터뜨린 것도 유사하다. 두 사람은 모두 한때 ‘성공신화’의 주인공으로 여겨지다 결국 비리(非理) 혐의가 드러나 쇠고랑을 찼다.
 
■ 차이점
 
슬롯머신 업소가 대부분 호텔 내부에 자리잡아 서민들과 일정한 거리를 둔 반면 바다이야기 등 사행성 성인오락 게임업소는 대도시와 중소도시, 농어촌을 가리지 않고 동네 곳곳에 진출했다는 차이점이 우선 눈에 띄었다.
 
당연히 슬롯머신 업소엔 어느 정도 쌈짓돈이 있는 회사원 등이 주로 찾았으나 사행성 성인오락실은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서민들이 꼬여들었다.
 
정 씨가 슬롯머신 업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자신을 비호하는 검찰과 경찰,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상납했지만 바다 이야기는 2006년 당시 정·관계에 어떤 로비를 벌였는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상품권 발행업체들이 게임산업개발원의 지정을 받기 위해 브로커를 통해 로비를 했다는 의혹만 제기됐다.
 
슬롯머신이 업자와 조폭, 업자와 비호세력 간 관계로 비교적 단순한 비리 구조를 가진 반면, 사행성 오락게임이 ‘상품권’이라는 매개가 개입되면서 관련되는 기관이 많아졌고 사안이 훨씬 복잡해진 것도 차이점이었다.
 
슬롯머신 수사가 김영삼 정부 초반 정권 차원의 강한 의지가 반영돼 전격적으로 단행됐고, 전 정부 고위 관계자들을 잇따라 낙마시켰다면 바다이야기 사건은 참여정부의 중·후반에 터져 자칫 당시 정부에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는 점도 두 사건이 비교되는 대목이었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는 ‘슬롯머신 업계 대부’로 불린 정덕진 씨가 부동산 매매 문제로 갈등 관계에 있던 사람들을 공기총으로 협박한 혐의(형법상 특수협박)를 잡고 수사 중이라고 지난해 지난해 10월 12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정 씨는 지난해 8월 한남동의 100억원대 자택을 언론사 사장 출신인 이모씨에게 매각하기로 하고 계약금 10억 원을 받았다.
 
하지만 자녀들이 반대하자 마음을 돌려 이 씨에게 “없던 일로 하자”고 요구했으나 거절당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이 씨는 계약을 그대로 진행하자는 의사를 전하고자 자신이 운영하는 사업체 직원 2명을 정 씨에게 보냈다. 이들을 자택 근처 카페에서 만난 정 씨는 대화 도중 공기총을 꺼내 “내가 누군지 모르느냐. 왜 부탁을 들어주지 않느냐”고 말하며 위협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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