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총무성통계국(總務省統計局)에 따르면, 2016년 부모와 함께 사는 35~54세 일본인은 약 450만 명이었다. 이 가운데 45~54세만 따지면 158만 명인데, 이는 1980년의 18만 명에서 무려 9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이처럼 부모에게 의존해 생활하는 성인 자녀를 ‘패러사이트 싱글(parasite single·부모에게 기생하는 독신)’이라고 부른다. 1997년 주오대(中央(大) 야마다 마사히로 교수가 ‘패러사이트(기생충) 싱글의 시대’라는 책을 펴내면서 이 용어가 생겼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부류를 ‘캥거루족’이라고 부른다. 최근 로이터통신은 패러사이트 싱글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중년에 이르게 된 ‘늙은 패러사이트 싱글’의 노후 불안을 다뤘다. 생활 능력이 없어 부모 집에 오래 얹혀살아온 이들 집단이 막상 부모상(喪)을 당한 뒤에는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스럽다는 것이다. 연금도 저축도 없는 이들 패러사이트 싱글은 인구 고령화와 노동력 감소로 휘청거리는 일본의 사회복지 시스템에 추가적인 부담이다.

고령의 어머니와 동거하는 54세 일본인 미혼 여성 다나카 히로미는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한 덕분에 한때 팝 그룹의 백코러스를 하는 등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했지만 그것으로 생계를 꾸릴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부모 집으로 들어갔다. 부모 연금에 의존해서 생활하던 다나카는 지난해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연금이 절반으로 줄어 급격히 위기감을 느꼈다.

다나카는 “불안정한 상황 속에 사는 것이 익숙해졌고 그럭저럭 헤쳐나가리라 생각했다”며 “그런데 형편이 계속 지금과 같다면 어머니와 나는 동반 추락할 것”이라고 로이터에 털어놓았다. 다나카는 일본에서 갈수록 늘어나는 ‘평생 독신’ 중 한 사람이다. 지난달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평생 독신의 수는 2015년 최고치에 도달했다. 50세 인구 가운데 남자는 4명 중 1명, 여자는 7명 중 1명이 미혼이었다.

야마다 교수는 “1990년대 중반까지의 거품 경제 기간에 20대는 나름대로 생활을 즐기면서 그들이 30대가 되면 결혼해 있으리라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그 가운데 3분의 1은 결코 결혼하지 않았고 그들이 이제 50세에 이르렀다”고 분석했다.

이런 비혼(非婚) 추세는 일본의 낮은 출산율과 줄어드는 인구가 그 요인이지만, 그것은 소비에 추가적으로 마이너스 영향을 미친다. 왜냐하면 가정을 꾸리는 것이 민간 소비의 핵심적인 동력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년 패러사이트 싱글 가운데 약 20%가 부모의 지원에 의존하기 때문에 그들은 사회안전망에 압박을 가할 수 있다.

야마다 교수는 “물려받은 재산과 저축을 다 써버리고 나면, 그들은 실업 수당 수령자 명단에 오른다”고 말한다. 일본에서 결혼을 기피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자유로운 생활 방식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이기도 하지만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가 증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간제, 임시직, 계약직 근로자들은 이제 일본 전체 노동력의 근 40%를 차지한다.

1980년대에만 해도 그 비율은 약 20%였다. 미즈호정보종합연구소의 후지모리 카츠히코 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일본 노동시장이 다소 활기를 띤 덕분에 부모에 의존해 사는 독신자의 수가 약간 줄기는 했지만, 전반적인 추세에는 변함이 없다. 후지모리는 “비정규직 근로자가 증가하는 데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결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지기 때문”이라고 그 원인을 설명했다. 중년 패러사이트 싱글 중에는 과거 안정된 직장에 다녔지만 병에 걸리거나 회사에서 구조조정을 당해 난감한 처지로 몰린 사람들도 있다.

올해 53세의 대졸자 가루베 아키히로는 30대 시절 고액 봉급 생활자였다. 그는 짧은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부모 집으로 들어갔지만 43살까지는 부모에게 꼬박꼬박 자기 몫의 생활비를 냈다. 그러다 43살에 덜컥 파킨슨씨병 진단을 받고 직장을 그만두었다. 이후 노인 요양보호사 일자리를 찾아 나섰지만 실패하고 현재는 아버지의 연금과 그 자신의 장애연금에 전적으로 의존해 살고 있다. 도쿄 교외의 공공주택에서 84세 홀아버지와 함께 사는 가루베는 “무엇보다 고정 수입이 있으면 좋겠다”고 털어놓았다.

일본 사회의 진화(進化) 양상은 일본보다 더 급속한 고령화가 예고된 우리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일본에서 남자와 여자는 갈수록 더 늦게 결혼하거나 아예 결혼하지 않는다. 1970년대 이래 초혼 연령은 남자 4.2년 여자 5.2년이 각각 높아져 31.1세와 29.4세에 도달했다(한국은 더 높아서 32.79세와 30.11세). 50세로서 결혼한 적이 없는 사람의 비율은 1970년 5%에서 2010년 16%(한국은 4%)로 증가했다.

이런 현상은 다른 부자 나라들에서도 비슷하지만 일본이 유독 심하다. 다른 선진국에서는 결혼이 주는 대신 동거 커플이 늘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동거 거플의 비율이 1.6%에 불과하다. 일본의 혼외자녀 출생 비율은 2%이며 영국과 미국에서 그 비율은 40%가 넘는다. 일본 남녀의 동거 기피 경향은 신생아 출생 감소로 이어진다. 일본에서 결혼을 기피하는 이유 가운데 일부는 다른 선진국들에서와 비슷하다.

여성은 이전보다 더 많이 교육받고, 직장 경력을 추구하며, 경제적으로 자립 능력이 있고, 전통적인 결혼관에서 자유롭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일본 특유의 이유도 있다. 일본에서는 결혼하면 곧바로 자녀를 출산하는 것이 미덕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출산을 늦추고 싶어 하는 여성은 아예 결혼을 늦춘다. 그렇다고 일본인이 결혼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2010년 나온 총무성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남자의 86%, 여자의 89%가 언젠가는 결혼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커다란 문제는 주머니 사정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불안정한 고용형태가 결혼으로 가는 길에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최동술 일본 소비자사회 경제연구소 대표에 따르면, 1993년 버블 붕괴 후, 일본 경제는 20여 년간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동안 평균임금이 하락한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일본이 유일하다. 많은 대기업이 경쟁에서 밀려나 경영위기에 빠지거나 인수·합병(M&A)으로 다른 회사로 팔려갔다. 이런 가운데 일본의 평생고용 전통은 붕괴됐고, 한국보다 더 높은 비율의 비정규직 집단이 생겨났다. 그렇지 않아도 급속도로 늙어가는 일본에서 부모가 죽고 나면 홀로 남겨질 중년 패러사이트 싱글은 조용히 째깍 거리는 시한폭탄이 아닐 수 없다.

곽상순 언론인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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