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빛으로 넘실대던 에게해의 파도가 긴 해안선을 따라 밀려와 숨을 고르고 잔잔한 물결이 돼 이즈미르에 닿는다. 먼 과거로부터 오랫동안 그 바다를 포근히 안아 온 이즈미르에 그 푸른 물결이 차분하게 물들고 과거의 영광이 찬란하게 스며든다.

오랜 세월 바다에서 불어온 바람을 타고 온 에게해의 푸른빛은 이즈미르 구석구석으로 스며들었고 걱정과 두려움은 먼 바다로 날려 보내며 이즈미르와 이즈미르 사람들을 보듬어 왔다.

에게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들 가운데 하나인 이즈미르를 여행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이 땅에 남아 있는 수천 년의 흔적과 만나게 된다.

그와 동시에 이즈미르는 터키에서 가장 세련되고 도회적인 곳이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의 적절한 믹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묘한 공존 그리고 특유의 여유롭고 활기찬 분위기는 터키의 다른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이즈미르만의 특별한 매력으로 남았다.
터키의 아버지, 아타튀르크 해변 거리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 한편에 산을 깎아 사람의 얼굴을 형상화 한 거대한 바위가 나타나 눈길이 멈췄다. 바위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위엄과 어딘지 존경심이 느껴지는 모습, 아타튀르크와의 첫 만남이었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이즈미르의 도착은 어딘지 평온했다. 짐을 풀고 이즈미르 특유의 바닷바람을 마시러 나가본 해변에서 재회한 아타튀르크. 그의 이름을 딴 아타튀르크 거리로 해안선을 따라 길게 이어진, 그에게 헌정된 길이다.

선선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해변 거리를 따라 걷다 보니 길의 왼편에 아타튀르크 박물관이 나타난다. 그의 얼굴이 새겨진 깃발들을 지나서 나타난 너른 광장엔 말에 올라탄 아타튀르크의 동상이 바다를 응시하며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다.
아타튀르크라는 인물의 원래 이름은 무스타파였다. 그는 군사 대학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며 그를 가르쳤던 교수로부터 완벽함을 뜻하는 ‘케말’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이를 이름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장교로 임관한 무스타파 케말은 이후 눈부신 전과를 거두며 장군이라는 뜻의 ‘파샤’라는 호칭을 이름에 추가해 무스타파 케말 파샤가 됐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붕괴하자 그는 터키 민족독립전쟁을 일으켜 공화제를 선포하고 터키의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된다.

무스타파 케말 파샤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대명제 아래 터키의 근대화와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고 훗날 그 공로를 인정받아 터키 국회로부터 ‘조국의 아버지’라는 뜻의 ‘아타튀르크’라는 고귀한 이름을 헌정받기에 이른다.
그의 이름은 오늘날에도 터키 곳곳에 남아 국민들의 애정과 존경의 대상으로 기억되고 있다. 어느새 오렌지색으로 물든 이즈미르 하늘 아래, 붉고 푸른 에게해가 찰랑인다. 오늘날의 터키를 이룬 무스타파 케말 파샤와 아타튀르크. 완전히 다른 이름이지만 결국은 같은 사람.

마치 이즈미르와 스미르나 이즈미르의 옛 이름과 다른 이름이지만 결국은 같은 장소인 것처럼. 둘은 항상 같이 있었던 셈이다.
<info> 아타튀르크 박물관
1862년에 지어진 건물로 터키 독립전쟁 후 터키 군이 이즈미르를 탈환했을 때 당시 총사령관이었던 무스타파 케말 파샤가 잠시 머물렀던 공간이다.

1927년 아타튀르크에게 기증됐으며 1941년부터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은 원래 그리스 국왕의 별장으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예전에 그리스 국왕이 이즈미르를 방문했을 때 계단에 터키 국기를 놓고 그 위를 밟고 간 적이 있었다.
훗날 터키 군이 이즈미르를 탈환한 후 그리스 국기를 계단에 놓고 아타튀르크에게 밟고 가도록 했으나 아타튀르크는 한 나라의 국기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짓밟혀서는 안 된다며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아타튀르크의 대인다운 면모를 이야기할 때 종종 인용되며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고 한다.

<tip> 홍합 돌마
해변 거리는 물론이고, 거리를 걷다 보면 쉽게 만날 수 있는 음식. 돌마란 ‘속을 채운다’라는 뜻의 터키어로 홍합 돌마는 홍합 속에 양념된 밥을 넣어 쪄낸 터키인들의 국민간식이다. 레몬즙을 살짝 곁들여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해변의 사원, 얄리 자미

아타튀르크 거리를 따라서 남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바다를 향해 탁 트인 모습이 시원스러운 코낙 광장이 나타난다. 1955년 당시 수상이었던 아드난 멘데레스에 의해 기존에 자리하고 있던 해군막사가 철거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광장이 만들어졌고 광장을 중심으로 빠르게 발전이 이루어져 이즈미르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벤치에 앉아 느긋한 시간을 보내는 이들과 분주하게 비둘기를 쫓아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 평화롭기만 하다. 광장 한가운데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시계탑 뒤로 다소곳이 자리한 작고 어여쁜 모스크에서 시선이 멈춘다.
고전적인 오스만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해변의 모스크라는 뜻의 얄리 자미는 크기는 작지만 이즈미르에서 가장 우아한 모스크로 알려져 있다. 도자기로 유명한 퀴타히아 주의 파란색 터키석 타일 장식이 자칫 무난해 보일 수도 있었던 작은 모스크에 우아하고 신비로운 매력을 불어넣는다.
자홍색 벽돌과 파란색 타일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빨간색 터키 깃발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코낙 광장의 풍경에 풍성한 색감을 더한다.
이즈미르 거리 탐방, 키브리스 세히틀레르
키브리스 세히틀레르는 이즈미르의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이즈미르 최고의 번화가로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는 물론이고 터키쉬 딜라이트를 파는 가게까지 활기가 넘치는 거리다.
하나로 이어진 길이지만 걸어가는 동안 거리의 분위기는 몇 번이나 달라질 정도로 다양한 매력을 품고 있다. 중심거리를 벗어나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기차역으로 가는 골목에는 오래된 헌책방 거리가 나타나고, 해변으로 이어지는 골목의 클럽에서는 시끄러운 음악이 언제나 벽과 창문을 넘어 거리로 퍼진다. 잔잔한 라이브 음악이 흐르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모여 있는 골목도 있고 어떤 골목에는 쓰러질 것 같은 오래된 그리스풍 가옥들이 운치 있게 남아있다.
거리마다 등장하는 새로움이 걸음을 쉴 수 없게 만든다. 골목골목을 한참 쏘다니다 한산하지도 분주하지도 않은 어느 골목에 자리한 한 찻집의 야외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때 묻은 하얀 앞치마를 두른 사내가 덤덤한 미소를 지으며 차이가 담긴 작고 투명한 유리컵을 테이블 위에 가만히 놓고 간다.

키 작은 의자에 앉아 쌉쌀한 차이를 홀짝이며 이즈미르의 공기를 음미한다. 골목에 퍼지는 차이 향, 약간의 매연 그리고 미세하게 코에 닿는 바다 냄새. 절반쯤 남은 차이에 설탕을 넣어 마지막 한 모금을 넘기고, 아직 가보지 못했던 골목들로 다시 걸음을 옮긴다.
<info> 터키쉬 딜라이트
터키어로는 로쿰이라고 불린다. 19세기 그 맛에 매료된 한 영국인이 이를 영국으로 수입하면서 ‘터키에서 온 기쁨’이라는 뜻의 ‘터키쉬 딜라이트’라고 이름 붙인 것으로 전해진다. 터키쉬 딜라이트의 주재료는 옥수수 전분과 설탕이며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이 특징이다. 레몬, 민트, 장미, 피스타치오, 호두, 아몬드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유대인 시장, 하브라 거리
하브라 거리는 시장 특유의 생기가 넘치는 곳이다. 싱싱한 생선들이 불빛 아래 반짝이고 알이 굵고 먹음직스러운 과일과 채소들이 가득하다.
15세기에 스페인에서 넘어온 유대인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 장사를 시작하면서 지금과 같은 시장 거리가 형성된 것이다. 유대인들이 모여들자 자연스럽게 그 주변으로 유대교회당이 하나둘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이 거리에 유대교회당을 뜻하는 터키어, 하브라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즈미르 사람들은 특유의 관대함으로 유대인들을 받아들였고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오랜 세월 서로 공존하며 하나의 이즈미르로 녹아들었다. 많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이주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하브라 거리 주변으로 네 곳의 유대교회당이 문을 열고 있다.
하얀 수염의 할아버지가 파는 뜨거운 살렙 한 잔에 계피가루를 듬뿍 얹어 마시니 추위에 움츠러들었던 몸이 녹아내리고, 저렴한 시장표 석류 주스 한 잔에 발걸음이 한결 가뿐해진다.
<info> 케스타네파자르 모스크
케스타네파자르 모스크는 하브라 거리 근처에 있는 모스크로 1663년에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성당 정면 입구와 본당 사이에 꾸며 놓은 좁고 긴 현관에서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네모난 기도 공간이 나타나는 것이 특별하다.

오래된 실크로드의 여관, 크즐라라아스 한
하브라 거리를 벗어나 18세기에 실크로드의 대상들이 물건을 맡기고 잠을 청했던 크즐라라아스 한으로 향한다. 사실 하브라 거리와 크즐라라아스 한 모두 케메랄트라고 불리우는 큰 시장의 일부이다.
케메랄트는 약 25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 중 하나로 오랜 시간 이즈미르 경제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오늘날 케메랄트에는 1만5000여 개의 가게가 운영되고 있으며 이곳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의 종류는 무려 80만여 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갖가지 먹을거리와 볼거리가 넘쳐나는 케메랄트에서 걸음의 속도는 자연히 느려진다. 사람들로 가득한 미로 같은 시장 골목을 발길 닿는 대로 걸으며 구경하다 보니 어느 순간 크즐라라아스 한이 눈앞에 나타났다. 오스만제국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은 오랜 기간 숙소로 사용돼 오다가 1993년 보수를 거쳐, 지금은 200여 개의 기념품 가게, 쥬얼리 숍 등이 문을 연 시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깔끔하게 진열된 물건들은 300년이 넘는 세월을 견뎌온 건물 안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크즐라라아스 한의 옛 뜰은 야외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자그맣고 낮은 테이블에는 커피나 차이가 올라가 있고, 작은 의자 때문에 서로를 향해 몸을 기울 인 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풍경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사진=여행매거진 Go-On 제공>

프리랜서 박건우 기자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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