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양정철 백의종군 선언’ 긍정평가 높아
- 정권 중반 정돈 위해 다시 역할을 맡을 가능성


문재인 대통령은 소문난 재수생이다. 대학도 재수, 사법고시도 재수로 붙었으니 대통령도 재수를 하면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렇게 됐다. 그렇다면 2012년엔 왜 패배했을까? 물론 산업화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박근혜라는 아이콘이 너무나 강력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민주당이 이길 수도 있었던 선거라는 분석이 있었다. 노골적인 세대 대결이었던 그 선거에서 결국 박근혜의 손을 들어준 50대가 민주당을 지지하지 말지 고민하는 층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문재인이 ‘친노’라는 프레임을 벗어던질 수 있는지를 지켜봤다는 것이다. 캠프 내에서 ‘일부 친노 인사 2선 후퇴’를 선언하면 지지율을 좀 더 올릴 수 있다는 보고서가 돌았으나 타당성이 없다고 묵살됐다는 증언도 흘러나왔다.

2017년의 민주당은 훨씬 더 절박했다. 정치에 막 입문한 후보와 뭔가 엇박자였던 지난 선거와 달리 당 전체가 결사적으로 뛰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일부 친노 인사 2선 후퇴 선언’이 나오지는 않았다. 박빙인 선거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럴 필요도 없었다.

흥미롭게도 비슷한 조치는 문재인 정부가 집권에 성공하고 나서야 나왔다. 지난 16일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이라 알려진 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이 주변 지인들에게 새 정부에서 어떠한 역할도 맞지 않을 거란 취지의 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알려졌다. 양 전 비서관은 “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잊혀질 권리를 허락해 주십시오”라는 말로 ‘아름다운 퇴장’을 선언했다.

참여정부 인사들에겐 ‘양비’(양정철 비서관의 약자)란 애칭으로 유명한 그의 선언은 여의도 정가에서도 화제가 됐다. 양정철 전 비서관은 선거운동 당시에도 언론에서 “난 집사 같은 존재고 집권할 경우 ‘삼철’은 백의종군할 것이다”라는 식으로 말했지만 믿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그의 선언으로 임기 초 ‘친노 패권’ 혹은 ‘친문 패권’ 논란이 설 자리를 잃게 됐다. 양 전 비서관과 함께 ‘삼철’이라 거론됐던 이호철 전 청와대 수석은 문재인 대통령 당선 직후인 10일에 이미 미국으로 떠났고, 전해철 민주당 의원도 1기 내각엔 불참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최측근으로 분류됐던 또 다른 사람인 최재성 전 국회의원도 일종의 ‘백의종군’을 선언한 상태다.
 
양정철 후퇴 패권 논란 불식켰지만…
 
반응은 엇갈린다. 양정철 전 비서관은 참여정부 인사들로부터 높게 평가받던 사람이다. “아까운 인물이 실체도 없는 패권 논란 때문에 물러나야만 했다”는 동정적 평가가 있다. “청와대가 ‘양비’ 없이 교통정리가 되겠느냐”는 우려도 있다.

이에 대해선 문재인 대통령의 자신감을 보여준다는 시선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두루 요직을 거치며 몇 년을 보냈다.

청와대 근무 경력이 있는 대통령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신 시절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지만 업무가 있는 공직이 아니고 의전에 치우친 역할이었다.

보통 대통령의 최측근을 앉히는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기획재정부 출신 공무원을 승진시켜 앉힌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업무를 잘 파악하고 있어서 최측근 없이도 시스템적으로 굴릴 자신이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참고로 총무비서관은 여의도 정가 사람들이 양 전 비서관의 자리라 점쳐왔던 자리다.

하지만 긍정적인 시선이 더 많다. 정치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하는 것이지만, 정치적 판단은 반드시 정의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친문 패권’이 없거나, 양정철이 그와 관련이 없다 하더라도, 일부 유권자들에게 그런 의구심이 있다면 에둘러 가는 쪽이 현명할 수 있다.

대선 전 문재인 캠프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솔직히 ‘양비’가 퇴장 선언을 했는데 캠프 사람 누가 논공행상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정권 초기의 논공행상 요구가 아주 깔끔하게 정리되는 부분이 있다”라고 평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극초반의 인사는 논공행상과 큰 관련이 없어 보인다. 캠프 출신은 임종석 비서실장과 윤영찬 홍보수석 정도다.
 
역대 2인자들의 사례로 본 ‘양비’의 미래
 
그렇다면 양정철 전 비서관은 정말로 문재인 정부 내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될까? 양정철 전 비서관의 선택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선과는 별개로, 이런 전망에는 조심스럽게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전례를 봐도 그렇다. 김대중 정부의 경우 대선 직전 권노갑 한화갑 등 가신 7명이 “저희 김대중 총재 비서 출신 의원들은 김 총재가 집권한다 해도 청와대와 정부의 정무직을 포함한 어떠한 주요 임명직 자리에도 결코 나서지 않을 것이다.”라고 선언한 바 있다. 문재인 캠프에선 하지 못했던,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2선 후퇴 선언이었다.

권노갑은 김대중 정부 출범식에도 참석하지 않았고 외유를 떠났다. 하지만 1998년 귀국한 후에는 여전히 실세로 활약했고 2003년에는 비자금 관련 혐의로 구속되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안희정과 이명박 정부 시절의 정두언처럼 일등 공신이 정부 내내 아무런 역할을 못한 사례도 있지만 상황이 조금 다르다.

안희정은 대선자금에 대해 총대를 메고 구속되었기 때문에 역할을 하려야 할 수가 없었다. 정두언의 경우는 스스로 물러났다기보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심기를 거슬러 초기에 축출된 경우였다. 이명박 정부의 진정한 2인자였던 이재오의 경우 나중에 국민권익위원장이 되었다.

양정철 전 비서관의 경우 권노갑이나 안희정처럼 자금과 관련이 있는 사람은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차후에는 역할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정권 초기 높은 지지율을 확보하며 거침없이 개혁에 나서던 문재인 정부도 정권 중반 정도엔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

그런 경우 청와대의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해 ‘잊혀질 권리’를 요구했던 그의 재등판이 요구될 수 있다. 그리 되면 청와대 내부 분위기는 일신되겠지만, 패권 논란엔 다시 불이 지펴질 수 있다. 정치라는 것이 그렇게 오묘하면서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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