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당의 전면 쇄신이 불가피한 자유한국당에서 이념적 지향점도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선 후보였던 홍준표 전 경남지사는 한국당의 새 방향을 ‘신보수주의’로 설정하고 당 주류인 친박계를 ‘실패한 정권 세력’이자 쇄신 대상으로 꼽았다. 당권을 거머쥐고 차기 대선으로 직행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친박계는 이를 순순히 ‘승인’ 해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바짝 엎드려’ 대선 기간을 통과한 친박계다. 당권마저 내놓는 것은 사실상 정치 생명을 내놓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재기(再起)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바른정당 복당파와 당 내 초선의원들의 위시(爲始)를 받고 있는 홍 전 지사와, 당 주류 친박계의 ‘벼랑 끝 혈투’ 그 속으로 들어가 봤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새 인물 부재 속앓이… ‘계파 색 옅은 인물’ 혹은 ‘외부 수혈’?
- 親朴 ‘순수 집단 지도체제’ vs 洪 ‘단일성 집단 지도체제’
- “‘태극기’만으로는 힘들다… ‘환골탈태’ 시급”


대선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자유한국당에 스산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홍준표 전 경남지사와 친박계가 막말 공방을 벌이며 이전투구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홍 전 지사는 친박계를 ‘바퀴벌레’에 비유하며 ‘신보수 정당’으로의 쇄신을 외치고 있다. 친박계는 대선 패배 책임을 홍 전 지사에게 돌리며 당권 장악의 명분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미국에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 홍 전 지사는 지난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귀국하면 신보수주의 이념을 중심으로 당을 새롭게 하겠다”며 사실상 당권 도전을 선언했다.

洪, ‘신보수주의’로 親朴과의 ‘선 긋기’

홍 후보가 말하는 ‘신보수주의’는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개인과 기업의 창의성을 존중해 경제성장을 이루는 이념을 말한다. 그는 같은 글에서 ‘신보수주의’를 ▲자유주의 바탕 ▲반체제 집단 제압 ▲강력한 국방정책 ▲서민복지정책으로 정의하며 “모든 정책의 지표가 돼야 한다. 귀국하면 신보수주의 이념을 중심으로 당을 새롭게 하고 새로운 국민운동으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배전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사실상 당권 도전을 선언한 홍 전 지사가 전당대회를 앞두고 자신만의 색깔을 구체화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그 시작으로 대선 기간 자신에게 비우호적이었던 언론에 맞서 재미를 봤던 ‘SNS 정치’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친박계는 강력 반발했다. 유기준 의원은 “자기성찰을 해야 할 홍 전 지사가 외국에서 일방적인 발언을 쏟아내는 것은 좋지 않은 소통방식”이라고 비판했다. 친박계 당권 주자로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는 홍문종 의원 역시 “홍 전 지사는 제정신이냐, 낮술을 드셨냐”며 발끈했다.

양 측은 당 지도 체제에 대한 입장에서부터 대립각을 형성하고 있다. 친박계는 대표와 최고위원을 동시에 선출하는 순수 집단지도체제로 당헌을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당대회에서 1위 득표자가 대표를, 나머지 순위자가 최고위원을 맡는 순수 집단지도체제는 중진 의원이 상대적으로 많은 친박계가 유리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친박계는 현재 핵심 그룹 10명을 비롯해 최대 50명가량으로 파악된다. 한때 90명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세력 크기가 급격히 줄어든 게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당 주류가 친박계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여기에 ‘보수의 심장’ TK의 민심 역시 아직은 친박계에 우호적인 점도 친박계의 당권 탈환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이유다. 지난 4·12 재보궐 선거 때 박근혜 정부 정무수석을 지낸 김재원 당시 후보가 경북 상주·의성·군위·청송 지역구에서 승리했다.

19대 대선에서 홍준표 전 지사가 유일하게 문재인 당시 후보를 꺾은 지역도 TK가 유일하다. 이런 우호적인 환경을 기반으로 친박계로 분류되는 홍문종 의원이 당권 도전 의사를 밝힌 상황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세력이 약한 홍 전 지사 측은 대표와 최고위원을 분리 선출해 상대적으로 당 대표 권한이 강해지는 구조인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를 고수하고 있다. 당권을 장악한 후 대선까지 직행하려는 홍 전 지사 입장에선 당 대표의 입김이 막강해지는 체제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세 자체로는 친박계에 아직까지 밀리는 상황에서 자칫 당 대표와 최고위원직까지 모두 내줄 수 있다는 우려도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홍 전 지사 측 의원들은 핵심 그룹과 초선 의원들을 포함해 최대 30명 정도로 분석되고 있다. 홍 전 지사가 ‘홍준표계’ 구축을 위해 대선 전부터 소위 ‘배신자’로 불리는 이들의 복당을 추진했음에도 여전히 수적으로 친박계에 몰리는 상황이다.

당시 홍 전 지사는 TK지역과 바른정당 탈당파 자리에 임명된 지역의 당협위원장들의 반발을 묵살하면서까지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던 권성동 의원을 비롯한 바른정당 탈당파의 복당을 추진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TK 지역에서조차 득표율 50%를 넘기지 못하는 결정적인 ‘자충수’가 됐다.

수적 열세 극복 위해 ‘SNS 정치’ 몰두…

이처럼 친박계의 ‘승인’ 없이는 당권을 잡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보니 홍 전 지사는 대선 때와 마찬가지로 ‘여론전’에 전력투구를 하는 모양새다. 대선 당시 ‘정권 교체’ 프레임을 ‘이념 대결’ 프레임으로 몰고 가 생각보다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던 것처럼 ‘비박 대 친박’ 구도로 당권 경쟁을 이끌어가면서 친박에 비우호적인 여론의 힘을 빌리겠다는 계산에서다.

홍 전 지사 측에서는 지속적으로 ‘패권 세력’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친박계에 맞서 당 대표 선거에 ‘올인’ 한다면 승산이 있다는 기대감도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대선에서 TK 지지층만으로는 당 존립이 어렵다는 것이 확인된 만큼 당 내부에서 호남은 물론 중도 보수층과 젊은 층을 겨냥한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는 기류가 흘러나오고 있는 점도 홍 전 지사 측에서 기대감이 생겨나는 데 한 몫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나경원 의원은 이번 대선에 대해 “‘샤이 보수’가 있었던 게 아니라 보수가 우리를 셰임(shame)했다. 셰임 보수만 남은 것”이라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이번 선거가 그나마 선방했다는 듯이 이렇게 시작해서는 미래가 없다”고 당의 각성을 촉구했다.

범친박계로 분류되는 정진석 전 원내대표 역시 홍 전 지사에게 힘을 실어주기 시작한 모습이다. 정 전 대표는 지난 19일 한 라디오 프로그렘에 출연해 “이제 보수도 새로운 설계를 해야 한다. 젊고 잠재력 있는, 역량 있는 인물을 발굴하고 영입하고 키워야 한다. 우리는 그런 걸 참 등한시했다”면서 “정상적인 당이면 초·재선 의원들이 '정풍(整風) 운동'을 들고 나와야 할 때”라고 말했다.

홍 전 지사에 대한 당 대표 추대론에 대해서도 “낮은 지지율을 단기간 내 극복해 새로운 보수의 구심점이 됐던 것 아니냐. 새로운 교두보가 됐던 게 사실”이라며 “이런저런 표현 때문에 깎아내리는 것도 사실 볼썽사나운 모습”이라고 홍 전 지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또 홍 전 지사와 마찬가지로 정 전 대표도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를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박계의 계속되는 견제와 대선 패배 책임론, 그리고 ‘원외대표가 제1야당을 이끌어가기엔 부적절하다’ 등의 당내 여론도 존재하는 만큼 홍 전 지사가 중도·보수층을 아우르는 ‘신보수주의’로 가는 길이 녹록지 않아 보인다.

승부수 띄울 만한 인재 보이지 않아…

한편 한국당 내부에서는 이번 전당대회가 친박-비박 대결 구도로 흐르는 것 자체를 경계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구태의연한 정치와 편 가르기 정치로는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 같은 당위론에 근거해 당내에서는 계파 색이 옅은 내부 인사 출마 혹은 추대론이 가능성 수준에서 검토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런 시각이 나오는 데는 대선 후 당을 재정비할 마땅한 후보군이 없는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홍 전 지사와 정우택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외에는, 하마평에 오르는 인물들 몇몇만 있을 뿐 전당대회 출마를 검토하거나 당 정비에 나서겠다는 인물이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당 진로를 놓고 당내 논의를 이끌어갈 주체도 보이지 않고 당 위기 때마다 쇄신 분위기를 만들어갔던 소장 그룹의 활동도 눈에 띄지 않는 현실이다.

그러자 ‘계파 청산 없이 당 쇄신은 없다’며 전권을 쥔 외부 인사를 바라는 정서가 당내에서 힘을 받는 듯했지만 인명진 비대위 체제가 계파 청산에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외부 수혈론’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관측된다.

이처럼 한국당은 내년 지방선거에서부터 차기 총선과 대선까지 염두에 둔 당의 체질 개선이 시급하지만 당 내 불협화음이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문재인 정권이 출범과 동시에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적폐 청산’에 속도를 내고 있는 만큼 집권여당을 견제할 수 있는 야당으로의 체질 개선도 시급하지만 사방을 둘러봐도 ‘인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기존의 방식을 고수한다면 악순환의 고리를 절대 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고정현 기자  jh0704@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