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한 학생에게 토론 과외를 해준 적이 있다. ‘해리 포터’ 원서를 별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을 정도였으니 영어만큼은 꽤 하는 학생이었다. 상황 분석력도 뛰어나 똑똑한 녀석이라 여겼다.

어느 날 그 학생이 필자에게 느닷없이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냐고 물었다. 아무 생각 없이 '원더걸스'라고 하자 학생은 “어떻게 그런 XXX같은 가수를 좋아할 수 있느냐”며 거칠게 항의했다. 그는 이어 “소녀시대만 좋아해야 한다”고 강요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장 팬클럽에 연락해 필자를 무차별 공격하겠다고 협박했다.

요즘 ‘팬덤현상’이 우리 사회에 큰 이슈로 등장했다. ‘아이돌’ 가수에서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팬덤현상’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는 특히 ‘정치팬덤’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단순한 팬클럽 수준에서 벗어나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세력’으로 군림했다.

문제는 이렇게 과열된 ‘팬덤현상’이 사회 통합을 저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팬덤현상’이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말이다. 진보, 보수 진영의 극성 지지자들이 자신과 뜻을 같이 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적으로 만드는 이분법적 편가르기를 조장하고 있다.

얼마 전 박형철 청와대 반부패비서관 임명에 반대 성명을 낸 민주노총을 문재인 팬클럽이 ‘귀족노조’와 ‘적폐’로 규정하며 욕설과 비난을 쏟아냈다. 안수찬 한겨레신문 기자는 최근 주간지 표지에 실린 문 대통령 사진 문제로 문 지지자들로부터 악성 댓글과 협박에 시달렸다. 대선 과정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지지했던 가수 전인권 씨는 문 지지자들로부터 ‘적폐 가수’로 비난받았고, 임경선 작가 역시 안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저서에 식칼이 꼽힌 사진을 받았다. 한 고위 공직자 인사 청문 위원은 공직 후보에게 부정적인 질문을 했다하여 ‘문자 폭탄’을 받았다. 표창원 의원 역시 탄핵정국에서 ‘문자폭탄’ 세례를 피하지 못했다.

‘팬덤현상’이 역기능으로 작동하면 할수록, 다시 말해 나와 우리만이 ‘정의’를 독점하면 할수록 거기에 비례해 불만세력 역시 더 많이 생겨난다.

폭정을 일삼던 연산군을 쫓아내고 중종반정을 일으킨 신진 변혁주체들은 기성세력을 축출하고 새로운 정치질서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자신과 뜻을 같이 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적으로 만들었다가 이에 불만을 품은 세력들에 의해 탄핵되고 말았다.

나의 뜻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을 적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그것이 왕조시대에서든 민주사회에서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는 마치 자신의 이성을 반납하는 것과 같다. 자주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박탈하는 행위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도 틀릴 수 있다는 생각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정용섭 목사는 한국교계 최초로 대형교회 거물급 목사들의 설교를 비평해 주목받았다. 인문학적 성경해석으로 꽤 호평을 받고 있는 목사다. 그런데 그가 운영하는 사이트에서도 일종의 ‘팬덤현상’이 일어난다. 정 목사 ‘팬덤’이 정 목사를 비판하는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는 다른 곳과 사뭇 다르다. 욕설이 없다. 치열한 신학적 토론이 있을 뿐이다. 다소 눈에 거슬리는 표현을 쓰는 사람이 간혹 있지만,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타 ‘팬덤’ 현장과 비교해보면 정말 양반이다. 종교집단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해도 그렇다.

정 목사 ‘팬덤’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는 회원들은 대개 탈퇴하고 만다. 홀로 이들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과 신학적 논쟁을 계속 이어가려면 상당한 내공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팬덤’ 순기능의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공자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을 남겼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뜻이 아닌가. 그래서 그는 중용(中庸)을 매우 소중한 가치로 여겼다. 지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적절한 상태를 유지하라는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역기능적 ‘팬덤현상’은 분명 과하다. 자제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장성훈 국장  seantlc@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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