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 의지가 확실해졌다. 촛불정국 초기 후보 시절에는 대선 전 개헌 논의에 대해 부정적인 문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올해 초 당에서 만들어 논란이 된 개헌전략보고서를 바탕으로 전향적으로 바뀌었다. 대통령 당선 이후 취임 8일 만에 개헌에 대한 필요성을 적극 주장하고 있다. 구체적인 권력구조와 시기 및 방식도 제안했다. 다만 지난 대선과정에서 경쟁 후보들이 약속했던 ‘3년 임기단축 개헌’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새 정부 집권 초부터 개헌 드라이브를 거는 문재인 대통령의 속내를 들여다봤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내가 못다한 일 다음 민주정부가 이어가도록..."
- 올해 1월 개헌전략보고서 장기 집권 플랜 '재 주목'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개헌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시작은 지난 5월18일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장에서였다. 문 대통령은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아 개헌을 완료할 수 있도록 국회의 협력과 국민 여러분의 동의를 정중히 요청드린다”고 밝혔다. 불과 취임 8일 만에 개헌을 언급하며 역대 대통령과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다음날인 19일에는 여야 5당 원내대표와의 청와대 오찬 회동에서 ‘2018년 6월 개헌’ 의지를 재차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회동에서 “국회가 논의를 통해 개헌 문제를 풀어가 달라”며 “국회 합의가 완전하지 않더라도 합의된 부분만이라도 내년 6월 진행해 개헌을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권력구조 등 일부 합의만 이뤄져도 이를 국민투표에 부쳐 헌법을 바꾸겠다”고 구체적으로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형태와 권력구조를 포함해서 국회가 개헌안을 내준다면 존중하겠다”며 국회에 개헌 주도권을 넘겨주는 모습을 보였다.

취임 직후 개헌 드라이브 거는 文 왜

문 대통령의 임기 초부터 개헌에 대한 강력한 천명에 여야는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개헌을 통과시키기 위해선 국회의 동의(국회의원 과반이상 동의 발의, 재적인원 2/3이상 찬성 통과)가 필요한 만큼 문 대통령의 ‘여의도 저자세’는 불가피한 정치적 현실이다.

문 대통령의 개헌 구상은 후보 시절인 4월 국회개헌특위 ‘대선 후보의 개헌 관련 의견청취 전체회의’장에서였다. 문 대통령은 이날 자신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권력구조는 4년 중임 순수대통령제라고 밝혔다. 5년 단임제인 현행 제도와는 달리 대통령의 연임이 가능한 만큼 장기적인 구상으로 책임있는 국정운영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구체적으로 문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에서는 결선투표제를 도입하고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비례성이 제대로 반영되도록 선거제도를 개편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지방 분권과 균형 발전을 헌법에 반영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자치입법권, 자치행정권, 자치재정권, 자치복지권의 4대 지방 자치권 보장하고 수도권과 중앙정부로 집중된 권한을 지방정부로 이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외 헌법 전문을 개정해 부마항쟁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촛불항쟁의 정신을 반영하고 감사원의 회계검사 기능을 국회로 이관하는 방안,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선발에 민주적 절차를 강화하는 방안 등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책임총리제, 책임 장관제를 시행하고 책임총리가 국무위원 제청권과 해임건의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4년 중임 대통령제를 도입해 2022년에 차기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를 동시에 치르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이어 국회의원과 대통령 선거주기에 관련해서는 두 선거를 분리시켜, 총선이 대선에 종속되지 않도록 하고 총선이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의 선거가 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국론이 모아지면 제가 공약한 개헌 내용을 고집하지 않고 국민의 의견에 따를 것”이라며 “국회가 2018년 내년 초까지 개헌안을 통과시키고 6월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에 부치면 개헌이 완성된다”고 재차 강조했다.

‘잃어버린 10년 복원’ 장기 집권 플랜 의혹

한편 문 대통령의 개헌에 대한 강력한 의지는 ‘잃어버린 민주정권 10년’에 대한 복원이자 장기 집권 플랜이라는 의심도 받고 있다. 실제로 올해 초 민주정책연구원에서 작성해 논란이 됐던 ‘개헌전략보고서’(제목: 개헌 논의 배경과 전략적 스텐스&더불어민주당의 선택)에 개헌을 통한 친문 장기 집권 속내가 드러나 당내 경선 후보들로부터 원성을 사기도 했다. 당시 친문 강경파인 진성준 연구원 부원장이 전략보고서 작성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개헌 보고서 내용 중 비문 진영에서 눈여겨 본 대목은 ‘대선 전 개헌 논의에 부정적인 태도를 전략적으로 수정해 4년 중임제 개헌’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울 것을 주문한 대목이다. 실질적으로 문 대통령은 보고서대로 기존의 부정적인 입장에서 전향적인 자세로 바뀌었다.

이어 이 보고서에는 “4년 중임 순수 대통령제를 권력구조의 대안으로 논의한다면 그 전제로 임기 단축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 좋은 전략의 하나가 될 것”이라며 “전제조건으로 다음 대통령의 임기를 2020년까지 단축하는 대신 이를 공약하고 실천한 대통령에게 연임선거에 출마할 기회를 허용하는 것 또한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사실상 2020년까지 3년 대통령을 하고 4년 중임제로 전환해 길게 11년(3+4+4)을 민주당이 장기 집권을 하자는 속내를 내비친 셈이다. 당시 비문 진영에서는 연구원 원장에 김용익, 진성준 부원장 등 친문 인사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문재인 장기 집권 플랜’이라고 공격했다.

또한 추미애 당 대표에게 관련자에 대한 책임론을 제기했다. 하지만 친문세력을 등에 업고 당 대표에 오른 추 대표는 작성자인 연구원만 대기 발령시키고 원장-부원장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았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보고서와는 달리 ‘3년 임기단축’ 제안은 수용하지 않고 있다. 대신 문 대통령은 5년 임기를 채우고 20대 대통령에 당선된 차기 대통령이 4년 중임을 할 수 있도록 개헌하자는 입장이다. 5년 임기를 채우면서 민주당 후보가 정권 재창출을 할 수 있도록 초석을 마련하겠다는 복안이다.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3년 임기 단축 카드를 수용하기가 쉽지 않은 형국이다. 다음 대통령에 당선된다는 보장도 없고 당선된다고 해도 7년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것으로 임기 2년이 늘어날 뿐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개헌을 통해 4년 중임제 대통령으로 대선에 3번 연속 도전할 수 있지만 정치적 위험 부담이 너무 높다.

결국 문 대통령은 마지막 5년 단임제 대통령으로 역사속에 남는 대신 정권재창출에 방점을 두는 모습이다. 이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기념 추도사에서 그대로 내비쳤다. 

문 대통령은 5월23일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기념식장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이상은 너무 높았고, 힘은 부족했다”며 “결국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고 보수정권 10년이 들어선 것에 대한 참여정부 핵심 인사로서 반성의 빛을 보였다.

이어 문 대통령은 “이제 우리는 다시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명박 박근혜 정부뿐만 아니라 김대중, 노무현 정부까지 지난 20년 전체를 성찰하며 성공의 길로 나아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가 못다한 일은 다음 민주정부가 이어나갈 수 있도록 단단하게 개혁해 나가겠다”며 정권 연장에 대한 강한 의지도 밝혔다.

“차기 정권 재창출 위해 개혁 초석을 마련할 것”

문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지난 대선에서 이해찬 의원의 ‘장기 집권’ 발언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친노 좌장으로 불리고 있는 이 의원은 대통령 중국 특사로 임명될 정도로 문 대통령과 각별한 관계다. 

이 공동선대위원장은 4월 30일 충남 공주 유세에서 “우리나라 대통령 중 구속된 사람이 박근혜·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 3명인데 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된 사람들”이라며 “극우 보수 세력을 완전히 궤멸시켜야 한다”고 ‘보수 궤멸론’을 주창했다.

이어 그는 “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다음에는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박원순 서울시장 같은 사람들이 이어서 쭉 장기 집권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 위원장은 “오늘 여론조사를 보니 이제 선거는 끝났다”며 “그러나 방심해선 안 된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도 했다.

당시 이 위원장의 발언으로 문재인 캠프 내에서조차 “너무 앞서나간다”, “국민정서를 자극하는 발언”이라며 적절치 못한 처신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7선에 참여정부 총리까지 지낸 이 의원이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당내 몇 안되는 최고의 전략통이자 정무감각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야당에서 이 의원의 발언에 주목하는 배경이다. 실제로 민주당의 장기 집권 플랜은 서서히 가동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 징후로 내년 지방선거에서 안희정 충남지사가 3선 도전을 하지 않는 대신 ‘당권 도전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문재인-안희정으로 이어지는 후계구도가 조기에 가시화되는 셈이다.

이번 민주당 경선에서 차기 대권 주자로서 확실하게 각인을 받은 안 지사다. 현재 안 지사는 “3선 도전과 관련해 적절한 시점에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민주당 경선 후보 시절 박수현 캠프 대변인(현 청와대 대변인)은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패해도 3선 도전은 안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여권 일각에서는 박 대변인이 안 지사 대신 충남지사에 출마할 것이라는 소문도 나오고 있다.

대권 후보로서 입지를 굳힌 이상 3선에 도전하기보다는 차기 대권 행보에 더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특히 개헌이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3선에 성공할 경우 중도에 임기를 마쳐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다. 하지만 안희정 조기 후계구도 가시화의 복병은 따로 있다.

문 대통령이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국정 운영을 해야 할 집권 2년차의 당 대표라는 점이다. 지난 민주당 경선에서 유력한 경쟁자이자 차기 대권 도전이 유력한 안 지사를 사실상 정권 2인자의 자리인 집권여당 당대표가 되도록 허용할지가 넘어야 할 산이다.

문 대통령과 안 지사가 갈등 없이 당·청일체를 보여준다면 안정적인 국정운영에 더할 나위 없는 조합이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들이 임기 초 당 대표에 ‘바지대표’로 내세운 이유가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서 힘있게 개혁을 해야 하는데 조기 대권 게임에 빠져 청와대와 집권여당 대표 간 사사건건 시비가 붙을 경우 대통령이 조기레임덕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의 1기 핵심 요직 인사를 보면 차기대권에 나설 만한 인물을 찾기 힘들다. 이낙연 총리 후보자부터,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전병헌 정무수석, 김진표 국정자문기획위원장 등 대부분 권력욕이 없는 정치인들을 배치한 배경이다. 

결국 안 지사의 내년 당권 도전 여부는 문 대통령의 정권 연장 플랜과 조기 대권 후보 가시화라는 복잡한 셈법 속에 결정날 전망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