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 후보 추천하면 뭐 하나, 교육부 거부하면 ‘끝’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새로운 정부에 대한 국립대학들의 기대가 크다. 우리나라에는 전국적으로 38개의 4년제 국립대가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총장 임명을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정권마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을 총장으로 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학교 구성원들 간 갈등이 반복되고 소송까지 난무한다. ‘지성의 전당’이어야 할 대학이 권력을 위한 싸움터로 변한 지 오래다. 직선제와 간선제를 둘러싼 논쟁도 끝이 없다. 급기야 2015년에는 부산의 국립대 교수가 총장 간선제에 반대하며 투신자살을 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많은 국립대들이 새로운 총장 임명을 앞두고 있다. 과연 새로운 정부는 대학의 자율권을 보장할까, 아니면 이전 정부의 전철을 밟을까.

이주호 전 교과부 장관 직선제 폐지 발언···2012년, 간선제로 법 개정
총장 후보 선출해 추천했지만···38개 4년제 국립대 중 8개 총장 없어


지난 2011년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는 부산교육대학교, 강원대학교, 군산대학교, 충북대학교, 강릉원주대학교 등을 구조개혁 중점 국립대학 등을 이른바 부실 국립대학으로 선정하며 큰 파문을 낳았다.

또 당시 장관이던 이주호 전 교과부 장관은 국립대학의 구조개혁을 위해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겠다는 발언으로 항간에서는 총장 직선제 폐지에 대한 강압이 아니냐는 얘기가 돌기도 했다. 결국 지난 2012년 국립대 총장 선거가 직선제에서 간선제로 개정됐다.

이후 지난 1월에는 최순실 국정 농단의 발단이 된 정유라 부정 입학 논란으로 이화여자대학교(이하 이화여대)가 홍역을 치루며 총장 직선제를 놓고 다시금 논란에 휩싸였다.

이화여대 창립 131주년 사상 처음으로 실시된 총장 직선제 선거가 도입되면서 학교 내 구성원(교수·직원·학생)의 투표 반영 비율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를 놓고 갈등을 빚은 것이다.

이화여대 총학생회는 지난 1월 18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법인행정동 앞에서 ‘총장 후보자 선출 규정 및 절차에 관한 권고안’을 이사회가 승인한 것에 대해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앞서 6일 이화여대 교수평의회는 총장 선출 방식을 두고 교수·직원·학생의 투표 반영 비율을 100:10:5로 권고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교수·직원·학생의 투표 반영 비율을 1:1:1로 해야 한다”며 반박했다. 또 총학생회는 “총장이 대학 구성원의 전체를 대표하기 때문에 교수·직원·학생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는 게 학생들의 주장이다”라며 투표 비율에 대한 학교 측의 결정을 규탄했다.

결국 교수·학생·직원·동창 협의체 회의를 반복한 끝에 이사회가 이를 바탕으로 교수·직원·학생·동문의 투표를 100:15.5:11:2.6의 비율로 반영해 총장을 선출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공주대학교
38개월째 총장 공석

 
국립대 총장 선출 방식 논란은 박근혜 정부 시절 가장 시끌벅적했다. 당시 교육부는 각종 재원 지원 사업에서 가점을 주는 방식으로 국립대 총장 선출방식을 직선제에서 간선제로 바꾸도록 유도했다. 직선제로 인해 대학이 선거판이 되고 후유증을 겪는 등 문제가 크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교육부는 각 대학에서 간선제로 선출한 1‧2순위 총장 임용 후보에 대해 사유를 밝히지 않은 채 제청을 거부해 ‘총장 공석 사태’를 겪는 대학이 급증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 중 공주대학교(이하 공주대)는 지난 2014년 대학이 추천한 총장 후보를 교육부가 거부해 아직까지도 총 38개월 동안 총장이 공석이다.

한국방송통신대, 전주교대, 광주교대 등도 동일한 이유로 총장이 부재중이다. 이들 대학의 총장 후보자들은 교육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다.

공주대 등 4개 대학 이외에 춘천교대, 금오공대, 부산교대 등 3곳은 지난 3월에서 4월, 총장 후보를 선출해 교육부에 추천했으나 정부가 차기 정부로 임용을 넘겨 임용 절차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총 38개 4년제 국립대 가운데 8개 대학이 총장 없이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앞서 경북대학교(이하 경북대)는 전임 총장 임기가 끝난 뒤인 2014년 10월 1‧2순위 총장 후보자 2명을 선출해 추천했으나 교육부가 임용 제청을 거부했다. 이후 2년이 지난 후에야 교육부는 2014년 총장 선거에서 선출한 1‧2순위 후보자를 재추천 받아 이 가운데 2순위인 후보를 새 총장으로 임명했다. 이 때문에 여론에서는 교육부가 총장 공석 조장뿐만 아니라 대학의 자율성까지 훼손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文 ‘적패 청산’
자율성 보장할까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최종 대선 공약집에서 “대학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고 대학의 체질을 강화하겠다”며 ‘거점 국립대 집중 육성’, ‘지역 소규모 강소 대학 육성 지원’, ‘공영형 사립대 전환·육성’, ‘국공립대 네트워크 구축’, ‘대학재정지원사업 개편’, ‘대학 자율성 확대’ 등을 대학 공약으로 제시했다.

특히 문 대통령의 공약을 보면 대학 개혁의 주요 쟁점 사항으로 ‘지원‧자율 확대’와 ‘부정‧비리 척결’이 컸다.

지난 19일 경기도 안성의 국립대인 한경대학교(이하 한경대)가 총 2명의 신임총장 최종 후보 중 이명박 정부 당시 대통령실장이던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을 포함해 논란이 일었다.

한경대 교수와 교직원, 학생 등 50명으로 구성된 총장후보자추천위원회는 이날 총장 후보자 6명을 놓고 투표를 벌여 임 전 실장과 박상돈 응용수학과 교수 등 2명을 신임총장 최종 후보로 선출했다. 이 중 임 전 실장이 후보들 가운데 최다표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경대가 총장 후보 2명을 교육부에 추천하면 교육부 장관은 2명 가운데 1명을 임명권자인 문 대통령에게 총장임용을 제청할 예정이다.

하지만 앞서 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4대강 비리 등을 재조사해 부정축재 재산이 있다면 환수하겠다”고 밝히며 4대강에 대한 강한 비판을 내놓은 바 있다. 현재 문 대통령은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도 지시한 상태다.

또 대선 공약집을 살펴보면 ‘4대강 수문 상시 개방’, ‘보 철거’ 등의 내용도 담겨 있다.

이런 가운데 임 전 실장이 총장 후보로 선출되면서 일부 환경단체와 한경대 학생회 등에서는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 사업의 주역인 임 전 실장은 국립대 총장 후보로 부적절하다”며 총상 선출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이번 한경대의 사례가 국립대 총장 선출 자율화의 시험대가 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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