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개혁이 먼저냐 엘리트 경찰 양성이 먼저냐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새 정부 출범 이후 각 분야 적폐 청산의 시동이 걸리면서 ‘경찰대 폐지론’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사법시험 폐지, 로스쿨 일원화와 함께 거론되는 검·경 개혁의 신호탄인 셈이다. 1981년 개교 이래 특혜 시비와 존폐 논란이 끊임없이 이어진 경찰대는 엘리트 경찰 양성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유지돼 왔지만, 시대 흐름에 따른 경찰 개혁의 물꼬가 돼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면서 ‘폐지’ 압박을 받아왔다. 하지만 수사권 조정 등 경찰개혁 국면에서 우수 경찰의 필요성이 요구되면서 경찰 엘리트 교육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 대립하며 경찰대 존폐 문제를 두고 팽팽한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탄핵 정국의 와중에 조기대선의 열기가 한창 무르익었던 지난 2월 6일, 당시 유력한 대권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노량진의 한 경찰공무원 입시학원을 방문해 공공일자리 정책을 설명하며 꺼낸 경찰개혁 화두가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동안 수면 아래에 있던 ‘경찰대 존폐’ 문제에 대한 뇌관을 다시 건드렸기 때문. 문 대통령은 원생들과의 대화 자리에서 “경찰대를 졸업해 곧바로 간부가 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며 “근본적인 검토를 해야 한다”고 언급해 ‘경찰대 폐지’에 대한 의중을 드러냈다.

가장 유력한 대권후보의 직접적인 발언이었기에 당시 큰 논란을 야기했고 경찰 내부에서는 이 문제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인 바 있다.

문 후보의 발언 이전까지만 해도 경찰대 출신이 아닌 이철성 경찰청장의 중용적인 리더십을 통해 이 문제는 적절한 범위 내에서 컨트롤되고 있었다는 게 경찰 내부의 관측이었다.

非경찰대 출신 경찰들은, 그동안 경찰대 출신 위주로 돌아가던 조직문화를 이 청장이 지혜롭게 바꿔줄 것으로 기대했다.

반면, 경찰대 출신들의 입장에서는 노골적으로 경찰대 존치를 내세울 수 없는 상황이어서 ‘경찰대 존폐’ 논의는 일단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었다.

하지만 유력한 대권후보의 경찰대 존폐 문제 언급과 함께 실제로 그 당사자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경찰 내부는 또다시 이 문제로 내홍을 겪고 있는 형국이다.

아직은 새 정부 차원의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고 있지는 않지만, 경찰 조직은 물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경찰대 폐지에 대한 찬반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며 또 다른 논란을 예고하고 있는 중이다.

일각에서는 새 정부의 경찰대 폐지 움직임이, 자치경찰제 도입과 경찰 내 직장협의회 신설 등 사안들과 더불어 경찰의 독자적 수사권 확보 전 검·경 개혁의 첫 단추가 되는 게 아니냐는 조심스런 전망을 내놓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폐지가 오히려 ‘역차별’?
 
그간 검찰의 권력 독점 문제에서도 드러났듯, 구성원 14만 명의 거대 조직인 경찰이 또 다른 괴물이 되지 않도록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고 권한을 분산하려면 경찰대 폐지가 충분조건이 돼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경찰대 존폐문제에 대해 경찰 내부에서는 입장에 따라 의견이 팽팽하게 갈린다. 존치를 주장하는 경찰대 출신들은 검·경 수사권 조정 등에 대비해 오히려 엘리트 경찰을 더 많이 양성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수사권을 행사하려면 법률 등에 관한 이해가 필수적이고, 그러자면 경찰대를 통한 인재 육성의 필요성이 더욱 커진다는 게 존치론자들의 논리.

지난해 경찰대에 치안대학원 설립을 골자로 하는 ‘경찰대학설치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도, 치안 전문가를 육성하고 실효성 있는 정책을 개발하기 위한 경찰대 확대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이와 관련, 경찰대 폐지에 대해 “군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육·해·공군 사관학교를 없애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경찰대 폐지는 경찰 자체를 없애는 것과 동일하다”는 주장을 펴는 존치론자도 있을 정도다.

경찰 내부에서 일고 있는 ‘차별론’에 대해서는 순경과 간부후보생, 경찰대 출신 등 각각의 트랙으로 정원수가 배정돼 진급되기 때문에 차별이 있을 수 없다고 강변한다. 오히려 이 청장 취임 이후 경찰대 출신이 홀대받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경찰대 폐지론은 경찰대 출신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입을 모은다.

폐지론자의 목소리도 강경하긴 마찬가지다. 경찰대 폐지를 외치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폐해는 바로 경찰대 출신들이 고위직을 ‘독식’함으로써 경찰 내부의 위화감을 만들고 단결을 저해한다는 점.

현재 경찰의 계급은 순경, 경장, 경사, 경위, 경감, 경정, 총경, 경무관, 치안감, 치안정감, 치안총감 등 11단계로 이뤄져 있는데 경찰대 출신은 졸업과 동시에 바로 4단위 계급인 경위로 임용된다.
 
폐지론자, 로스쿨 입학 등
‘자원 유출’ 폐해 지적도

 
하지만 순경 공채 출신의 경우 경위에 오르기까지 평균 8년 11개월에서 길게는 10년 이상이 걸린다. 그러다보니 경찰 고위직은 경찰대 출신들이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게 현실. 이른바 ‘경찰의 별’로 일컬어지는 경무관 승진 인사를 보면 최근 3년간 경찰대 출신이 평균 50% 이상을 독식해왔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지난 2001년 폐교된 세무대가 있다. 1980년 경찰대와 함께 설립된 세무대 역시 졸업생들이 세무 관련 요직을 깡그리 장악하는 등 부작용이 일면서 문을 닫게 된 것.

경위로 임용되는 간부후보생 출신, 각종 고시를 패스하고 경정으로 채용되는 특채 출신과 경찰대 출신들 간 경찰 주도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파벌싸움도 경찰대 폐지의 주요 이유 가운데 하나로 거론된다.

또한 경찰 학력을 높이고자 했던 설립취지도, 이미 경찰인력의 90% 이상 대졸자인 상황에서 무색해졌고 경찰대 설립 당시 동국대 등 한 곳만 경찰 관련 학과가 설치됐던 환경에서 최근에는 35개 대학으로 확산돼 일반대학을 통해서도 우수한 경찰인력을 양성할 수 있다는 사실도 경찰대 폐지론에 힘을 싣고 있는 이유다.

여기에 경찰대 출신들의 높은 조기 퇴직률은 경계를 넘어 심각한 우려를 빚게 한다는 게 폐지론자들의 주장. 경찰대 졸업생 상당수가 경찰로의 진로를 포기하고 로스쿨에 진학하는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경찰대가 이른바 법조인 양성소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

최근 5년 동안 로스쿨로 진로를 바꾼 경찰대 출신은 1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대생 한 명을 키우기 위해 지원되는 약 1억여 원의 국가세금이 고스란히 누수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찰대, 9월께 개선안 내놓기로
 
지난 5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인권위의 위상 강화 업무지시와 함께 인권 문제 개선을 검·경 수사권 조정의 필수 조건으로 규정했다. 이는 경찰 차원의 강도 높은 개혁 조치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가 검찰에 이어 경찰 개혁을 추진하면서 이른바 적폐 청산 차원에서 권력기관 개혁드라이브가 전방위적으로 확산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는 새 정부의 경찰대 폐지에 대한 의지도 담겨져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판단.

이와 같이 폐지론이 힘을 받는 상황이 전개되자 경찰대가 본격적으로 대응에 나섰다. 경찰대는 치안정책연구소의 한 관계자의 입을 빌려 경찰대 개선방안을 제시하겠다고 선언했다. 경찰조직 내부는 물론 경찰대생과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인식조사를 벌여 그 결과를 토대로 방안을 내놓겠다는 것. 폐지의 기로에서 위기의식을 느낀 경찰대 측이 생존을 위한 자구책을 모색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경찰대 폐지 목소리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992년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의해 경찰대 개혁 연구보고서가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경찰대 개혁논란이 불붙었다. 이 보고서는 경찰대 졸업생 규모를 줄이고 경찰대를 장기적으로 경찰 간부 중심의 재교육기관으로 전환하는 내용이 담겼었다.

이후 2003년에는 국회 행정자치위원회가 정책연구개발 용역과제로 선정해 제출받은 보고서에 ‘경찰대 폐지방안’이 포함된 바 있고 또 2007년 17대 국회에서는 ‘경찰대폐지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어쨌든 그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던 경찰대 존폐론이 다시 부상하며 새 정부 초기 경찰개혁과 관련해 뜨겁게 쟁점화할 모양새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시대의 흐름과 변화에 맞는 경찰 조직 내 제도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도 경찰대 졸업과 동시에 무조건 임용되지 않고 시험을 통해 선발한다”고 귀띔하는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대를 유지하더라도 경사급의 경위 교육 기능을 맡게 하는 등 국제적인 흐름과 추세에 따르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새 정부의 경찰개혁과 더불어 경찰대 존폐문제가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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