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유엔 최고위직에 오른 최초의 한국 여성’, ‘비(非) 외무고시 출신 외교부 첫 여성 국장’, ‘외교부 역사상 최초의 여성 장관 후보자.’ 문재인 정부 첫 외교부 수장에 내정된 강경화(62) 후보자를 나타내는 수식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1일 초대 ‘외교 사령탑’에 강 후보자를 지명했다.

강 후보자는 지난 10년간 유엔에서 활동하면서 여성과 인권 문제에 외교적 역량을 쏟아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가 국내에서 국제로 활동 무대를 넓힌 것도 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그는 ‘반기문 전 총장과 UN 동기’, ‘DJ 통역사’ 등 이색 경력으로도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강 후보자는 본인 가족 문제에 대한 청와대의 ‘자진 신고’로 이목이 쏠리기도 했다. 일요서울은 문재인 정부 1기 내각의 외교 수장으로 지명된 강경화 후보자를 조명해봤다.

최초 유엔 최고위직 한국 여성…인권 관심 계기 ‘위안부 문제’
DJ 통역사·은발 화제…비외무고시 여성 출신 고충 토로하기도


문재인 정부 출범 이래 이뤄진 주요 인선을 두고 ‘파격’이란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강 후보자도 이러한 파격 인사의 한 조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외교 수장의 필수 요건으로 여겨졌던 외무고시 출신도 아닌 데다 여성이 조직 내에서 일정 서열 이상 오르지 못하는 ‘유리천장’을 깬 상징적인 인사라는 점에서다.

1999년 특채로 외교부에 첫 발을 내디딘 강 후보자는 2006년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부고등판무관을 시작으로 이듬해 부대표, 2013년엔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사무차장보를 거치며 2017년 1월부터 안토니우 구테흐스 신임 유엔 사무총장 정책특보로 활동했다.

외교가에서는 강 후보자가 새 정부를 둘러싼 민감한 외교안보 현안을 일선에서 풀어나가는 데 적임자라는 평가가 나온다. 또 유창한 영어 실력뿐만 아니라 능력과 성품 등에서도 호평을 받는 분위기다. 청와대 발표 이후 그에게 이목이 집중되면서 ‘은발의 헤어스타일’도 화제가 됐다.

그는 과거 본인이 은발을 유지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그는 2012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2008년인가, 새해 결의 중 하나로 정한 게 염색 안 하기였다”며 “본모습을 뭔가로 가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일하고 있는 제네바는 워낙 다양한 인종에 머리 색깔이 천차만별이라 내 은발에 아무도 개의치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영어 가르치는 한국인
“아버지 덕에 운 좋았다”


강 후보자는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한 바 있다. 그는 ‘미국인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한국인’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탁월한 어학 능력을 가졌다. 이러한 바탕에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작용했다.

그의 아버지 고 강찬선(1998년 별세)씨는 KBS 아나운서 출신의 원로 방송인이었다. 강 씨는 해방 이후 KBS 전신인 서울중앙방송국 아나운서로 입사한 뒤 미국 정부가 운영하는 국제방송인 ‘미국의소리(VOA)’에 공식 파견돼 근무한 것으로 알려진다.

강 후보자도 KBS 영어방송 PD 겸 아나운서 출신이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 이국 생활을 한 것이 자신의 영어 실력을 키우는 데 큰 자산이 됐다고 말한다. 강 후보자는 2017년 1월 주간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내 연배엔 나처럼 초등학생 시절 해외에서 생활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며 “나는 아버지 덕에 운이 좋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출세하려고 영어에 매달린 건 아니고 프랑스어, 독일어 등 그냥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게 좋았다”면서 “아무래도 아버지 유전자가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유학 시절을 보내고 돌아온 그는 이화여고를 졸업한 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5년간 ‘보따리 장사’
정상회담 통역 후 유명세


당초 외교관을 꿈꾸며 정치외교학과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외무고시는 응시하지 않았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헌법 등 고시 과목이 너무 골치 아팠다”면서 “책을 사 놓고 몇 주 공부하다 집어치웠다”고 고백했다. 졸업 후 KBS 아나운서로 일하다 ‘교수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다시 미국 유학길에 올라 매사추세츠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학 생활 이후 국내로 돌아왔으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어느 대학도 받아주지 않았다. 5년간 보따리 장사(시간강사 생활)를 했다고 알려진다. 양육 문제도 맞닥뜨렸다. 그는 “3남매 양육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1년 간 전업주부로도 살아봤다”고 밝혔다. 이어 “나도 아이들도 별로 행복해지지 않길래 다시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강 후보자는 자신이 ‘비고시 출신’이란 점에 대해 고충도 토로한 바 있다. 그는 “진골이 아닌 데서 오는 소외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라면서 “다만 평가라는 건 언제든 업무 수행 능력에서 온다고 믿었다. 열심히 노력했고, ‘잘한다’ 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시간강사 생활을 하다 국회에서 국회의장 국제담당 비서관으로 발탁되면서 의장의 영어 연설문 작성과 통역을 맡게 됐다. 이후 1997년 무렵 김대중 전 대통령(DJ) 당선인 시절 통역을 맡으면서 명성을 얻었다. 이를 발판 삼아 1999년 외교통상부 특별보좌관으로 특채되면서 외교부에 공식 입성했다.

이후 특보로서 대통령 통역이나 외교부 장관 연설문을 주로 담당했다. DJ와 빌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의 대화를 7차례 통역한 것으로 알려진다. 2005년 7월 국제기구정책관(현 국제기구국장)에 올라 첫 비고시·여성 출신 외교부 국장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2006년 9월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부고등판무관을 시작으로 이듬해 부대표에 임명되면서 활동 무대를 유엔으로 옮겼다.

반 전 총장과 UN 동기
인권 신장에 ‘혼신’


반 전 사무총장과는 2007년 나란히 유엔에 입성한 ‘동기’다. 반 총장은 2007년 1월 1일에 뉴욕 본부에서, 강 후보자는 1월 15일에 스위스 제네바 OHCHR에서 일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활동 무대를 유엔으로 옮긴 데 대해 ‘인권’에 대한 관심을 꼽았다.

인권 중심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있었다. 그는 “국회의장실 국제담당 비서관으로 일하던 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여성대회에 참석한 것이 계기”라며 “정부, NGO가 함께 꾸린 대표단의 대변인으로, 우리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전 세계에 알리는 등 2주 동안 정말 신나게 일했다. 그때 처음 내 문제가 나만의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 국제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 공동 의제를 세우고 새로운 규범을 만드는 일을 유엔이 한다는 걸 알게 됐다”고 밝혔다.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1997~2006)이 강 후보자의 추진력을 높이 샀다는 후문도 있다. 그는 이를 두고 “2005년 뉴욕에서 열린 세계여성대회를 당시 위원장이던 내가 주재했다. 유엔 장애인협약에 여성 장애인 관련 내용을 별도 조항으로 만들어 넣는 것을 3년에 걸쳐 추진해 성사시킨 것도 좋게 보신 것 같다”고 짐작했다.

2017년 유엔 수장은 반 전 총장에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총장으로 바뀌었지만 강 후보자의 ‘유엔 최고위직 한국 여성’ 기록 행진은 계속됐다. 그는 신임 총장의 인수팀장에 깜짝 발탁되더니 사무부총장, 총장 비서실장과 함께 ‘3대 핵심 요직’으로 꼽히는 총장 정책특보에 임명됐다.

강 후보자는 지난해 말 귀국하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당초 임기(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사무차장보)가 올해 3월까지였지만 오랜 기간 남편과 자녀들과 떨어져 있어 정해진 임기보다 일찍 귀국하려 했다. 하지만 신임 유엔 사무총장 정책특보에 임명되면서 귀국은 미뤄졌다. 그러나 새 정부가 자신을 외교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자 결과적으로 귀국길에 오르게 됐다.

넘어야 할 ‘청문회’
자녀 문제 도마 오를 듯


강 후보자가 향후 인사청문회를 통과한다면 여성이자 비외무고시 출신의 첫 외교 장관이 된다. 청문회에선 강 후보자 자녀의 이중 국적 및 위장 전입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를 전망이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위장 전입 문제가 논란이 돼 강 후보자 역시 날선 검증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강 후보자의 남편인 이일병 연세대 컴퓨터공학과 명예교수는 최근 이 문제에 대해 사과했다. 큰 딸은 엄마를 위해 미국 국적을 포기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 후보자는 지난 25일 귀국해 청문회에서 이 문제를 소상히 밝히겠다고 했다.

강 후보자의 지명 소식이 알려지자 일본, 중국 등에서 상당한 관심과 동시에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일본은 강 후보자가 그간 위안부 문제를 세계에 알리겠다는 의지를 피력해온 만큼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다.

강 후보자는 귀국 첫 일성으로 북한 문제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는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해야 한다”면서도 “추가 도발이 있으면 더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녕찬 기자  kwoness7738@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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