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8조 원 넘는다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의 ‘돈 봉투 만찬’ 사건으로 검찰이 술렁이고 있다. 특히 이들이 주고받은 돈이 특수활동비로 알려짐에 따라 정부기관들의 불투명한 특수활동비 사용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특수활동비는 청와대, 국회, 국가정보원, 법무부 등 거의 모든 정부기관에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사용처 증빙서류조차 갖출 필요가 없어 주머니 속 쌈짓돈 마냥 마구잡이로 사용되고 있다. 한국납세자연맹(이하 납세자연맹)에 따르면 2007년부터 10년간 사용된 특수활동비 규모는 8조5631억 원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지만 보안을 이유로 용처와 용도는 대부분 비밀이다.

영수증·확인서 없어도, 사용처 안 밝혀도 문제 없어
업무추진비·특정업무경비·기타운영비 등으로 전환 가능 

 
납세자연맹에 따르면 특수활동비를 가장 많이 사용한 기관은 국가정보원이었다. 국가정보원이 사용한 특수활동비는 4조7642억 원이다. 10년간 사용된 전체 특수활동비 8조5631억의 절반이 넘는다. 국방부 1조6512억 원, 경찰청 1조2551억 원, 법무부 2662억 원, 청와대 2514억 원을 사용했다.
 
법무부 특수활동비
대부분 검찰이 사용

 
‘돈봉투 만찬’ 논란을 일으킨 법무부의 지난해 특수활동비는 287억여 원이다. 검찰수사나 정보수집 과정에 드는 비용을 사용하도록 돼 있으나 격려금으로도 일부가 사용됐다. 법무부 특수활동비 대부분은 검찰이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납세자연맹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법무부의 경우 특수활동비를 연구활동비, 법률지원비, 범죄수사활동비, 수사활동비, 자료수집활동비, 직무활동비, 업무지원활동비, 체류외국인동향조사, 국민생활침해단속비 등의 용도로 사용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와 검찰의 특수활동비는 우선 법무부 검찰국이 배정받아 검찰총장에게 전달하면 이를 다시 각급 일선청으로 배분한다. 이후 일선청 기관장은 각 수사 환경에 맞게 수사나 정보 수집활동을 지원하는 등의 용도로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검찰이 대부분 사용하는 특수활동비는 수사 보안 유지나 정보 제공자 보호 등을 이유로 확인서 작성 등 구체적인 사용처를 밝히지 않는다. 특수활동비를 사용하면서 목적 달성에 지장을 받을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한해 집행내용 확인서를 생략할 수 있다고 규정한 기재부 지침이 ‘용처 불명’의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주유비·카드깡 해도
주의·경고 처벌뿐

 
특수활동비를 부적절하게 사용해도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 점도 문제다. 2015년 국정감사 당시 경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2013~2014년까지 사용된 경찰의 특수활동비 중 사건수사비 부정사용으로 적발된 건수가 총 253건이라고 알려졌으나 단 10명만 징계를 받았다. 이마저도 감봉 3개월이 가장 높은 수위의 징계였다. 대부분 주의·경고·시정조치로 끝났다. 경찰의 특수활동비는 국정원의 통제를 받는 정보비와 일반 예산인 사건수사비 등으로 구분된다.

현행 경찰공무원 징계양정규칙에 따르면 예산·회계 관련 질서문란 행위자는 최소 견책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솜방망이 처벌을 하다 보니 제멋대로 사용하는 특수활동비가 줄지 않고 있다.

당시 밝혀진 특수활동비 부적절 사용례로는 광주에 근무하는 한 경찰관이 6개월 동안 근무가 없는 비번 때 사용한 식대 150만~200만 원을 수사비로 청구했다가 감사에서 적발됐고, 경기 지역에서 근무 중인 또 다른 경찰관은 사건수사비 30만 원을 수사와 상관없는 개인 주유비로 사용하다가 적발됐다.

충남 지역의 한 경찰관은 주유비 거래영수증을 허위로 발급받아 청구하는 수법으로 부당하게 수사비를 돌려받았다 적발됐다. 지난 2012년에는 이른바 ‘카드깡’을 통해 수사비 430만 원을 현금화해 사적으로 사용하다 적발된 사례도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
특수활동비 절감 시작

 
특수활동비가 부적절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사용처의 투명한 공개와 함께 삭감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새롭게 들어선 문재인 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25일 문재인 대통령은 공식행사를 제외한 대통령의 가족식사와 사적 비품 구입 비용에 대한 국가 예산 지원을 전면 중단하고 사비로 결제토록 할 것을 지시했다. 또 대통령비서실에 올해 특수활동비와 특정업무경비 잔액 127억 원 중 42%인 53억 원을 절감해 청년일자리 창출과 소외계층 지원 예산에 쓸 것을 지시했다.

청와대 측은 문 대통령의 지시에 대해 특수활동비와 특정업무경비를 사용 목적에 부합하는 곳에 최대한 아껴 사용하고, 절감된 재원은 정부가 청년일자리 창출과 소외계층 지원 등을 위한 예산을 편성하는 데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특수활동비란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수사나 이에 준하는 국정수행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이며 특정업무경비는 수사·감사·예산·조사 등 특정업무수행에 소요되는 비용이다.

비서실은 기획재정부 예산집행지침에서 규정된 대로 특수활동비와 특정업무경비 집행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비서실 자체지침과 집행계획을 수립해 내부통제를 강화할 방침이다. 감사원의 특수활동비에 대한 계산증명지침에 따라 증빙 서류를 작성해 사후관리도 강화할 계획이다.

특히 비서실은 내년 특수활동비와 특정업무경비 예산도 올해 162억 원 대비 31%인 50억 원을 축소할 계획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솔선수범으로 현 정권에서의 특수활동비는 전 정권들에 비해 확실히 줄어들 전망이다.

한편 납세자연맹은 “특수활동비 중 기밀을 요하지 않는 비용은 업무추진비, 특정업무경비(단순 계도·단속 및 수사·조사활동), 기타운영비(유관기관 간담회, 화환 및 조화구입, 축·조의금 등) 등 다른 일반 예산항목으로 책정이 가능하다”며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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