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새 정부의 재벌 개혁 의지가 강경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장하성 교수를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임명하더니 을지로위원회 성장의 주역인 우원식 의원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로 선출했다.

정경유착과 재벌 특혜, 각종 부정부패와 비리 등 ‘적폐 청산’을 내세운 것도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도 “단호하게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재벌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

재벌 가운데서도 4대 재벌의 개혁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재계에서는 벌써부터 새 정부의 강도 높은 재벌 개혁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지난 수십 년간 대선 때마다 많은 후보들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그러나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재벌 개혁, 과연 이번에는 가능할까.

일요서울은 재벌·적폐 청산을 시리즈로 기획했다. 이번 호는 오너일가 회사의 일감몰아주기 논란을 들여다봤다.

벌벌 떠는 대형사…주주 이익 침해 논란
치솟은 내부거래…공정위 단속 준비 중

신호탄이 울렸다. 이언주 국민의당(경기도 광명시을, 기획재정위원회) 의원은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부를 이전하고, 증여세 부담을 회피하는 일부 재벌의 행태에 대응하기 위한 법안이 필요하다고 5월 25일 주장했다.

그는 보도 자료를 통해 “법인의 매출액 중 지배주주와 특수 관계에 있는 법인에 대한 매출액이 차지하는 비율이 일정 수준을 초과하는 경우에 해당 법인을 수혜법인으로 규정하고 수혜법인의 지배주주와 그 친족이 법인 영업이익의 일부를 증여받은 것으로 의제하도록 하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 한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일감 몰아주기 관련 개정이 “재벌 계열 기업 간 불공정거래를 낮추고 공정한 시장경제를 확립하는 데 일조할 것”이라며 “재벌 총수일가의 꼼수를 뿌리 뽑는데 커다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경제민주화와 조세 정의 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그릇된 계열사 사랑이 회사 망친다

국세청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2016년 국세통계 2차 조기 공개’에 따르면 ‘특수관계법인과의 거래를 통한 일감몰아주기 증여세’ 과세가액은 3063억 원으로 전년 대비 7.8% 증가했다.

이는 지난해 6월 실시한 ‘일감몰아주기 증여세 신고’에 따른 것으로 총 신고인원은 2354명이었다.

증여세 과세가액 기준으로 50억 원 초과인원은 8명, 과세액은 882억 원으로 나타났다. 10억 원 초과~50억 원 이하에 속한 47명은 940억 원의 증여세를 냈다. 이어 ▲5억 초과~10억 이하 49명, 326억 원 ▲1억 초과~5억 이하 272명, 581억 원 ▲1억 이하 334명, 1978억 원 등으로 조사됐다.

국세청은 A법인의 지배주주와 특수 관계에 있는 B법인에게 일감을 몰아줘 발생하는 매출에 대해 증여세를 과세하고 있다. 과세대상은 일감 몰아주기로 주식 가치로 오른 특수 관계 법인의 지배주주와 친족 주주다. 친족은 국세기본법 상 배우자, 6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등이 포함된다. 일감 몰아주기로 인한 ▲후세 승계용 지분 상승 ▲부의 이전 등에 적절한 세금을 매기겠다는 취지다.

사실 일부 재벌기업들의 일감 몰아주기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많은 재벌들이 죄의식 없이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거액의 자산을 세금 한 푼 안내고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일이 예사가 되면서 국민감정이 악화된 상황이다.

일례로 GS에너지(옥산유통, GS아이티엠), 롯데그룹(유기개발), CJ그룹(재산커뮤니케이션즈, SG생활안전), 명인제약(메디커뮤니케이션), 호반건설(호반건설주택)등은 일감몰아주기 비판이 끊이질 않고 있다. 또 LG생활건강은 LG그룹후계자로 떠오른 구광모 상무의 장인회사인 보락과의 거래가 주목 받고 있다.

‘일감몰아주기 회사’를 둘러싼 소송전도 벌어졌다. 이혜경 전 동양 부회장은 최근 부친 故이양구 회장으로부터 상속받은 포장지 업체 ‘아이팩’ 주식을 가로챘다며 제부인 담철곤 오리온 회장을 전격 고소했다. 아이팩은 위장계열사와 일감몰아주기 의혹이 끊이질 않았던 회사로, 지난 2015년 6월 오리온에 흡수 합병됐다.

경영권승계와 맞물린 경우도

현재 일감몰아주기 감시 및 제재 대상은 총수 일가의 지분이 30% 이상인 상장사(비상장사는 20% 이상)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와 여당은 상장사 지분율 요건이 높아 규제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일부 기업이 총수 일가 지분율을 30% 밑으로 일부러 낮춰 규제를 피해간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지분율 요건을 20%로 낮추는 방안이 유력하다.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엔 이 같은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돼 있다.

아울러 공정위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을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자산 5조원 이상인 대기업의 총수 일가가 지분율 30%(비상장사는 20%) 이상 기준을 지분율 20% 이상으로 낮춰 규제대상을 확대한다는 내용이다.

신영선 공정위 부위원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상장사와 비상장사를 불문하고 총수일가의 계열사 지분율 기준을 30%에서 20%로 낮추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도가 본격화하면 재벌의 경영권 승계에서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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