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문 패권주의·친박 패권주의 ‘일란성 쌍둥이’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 드라이브에 맞춰 일요서울은 ‘대한민국 적폐청산 정치 5敵’ 시리즈 기사를 연재한다. 주제는 ▲철새 정치 ▲계파 정치 ▲세습 정치 ▲지역 정치 ▲묻지마 폭로 총 다섯 가지다. 지난 호에서 철새 정치인들의 몰락을 집중 조명한 데 이어 이번 호에서는 정치권에 팽배한 ‘계파 패권주의’를 짚어보고자 한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최강 계파’에서 ‘폐족’위기 몰린 親朴
- 계파 정치, ‘인물’ 아닌 ‘정책’ 기준으로 모여야…


지난 10여 년간 정치권의 가장 강력한 계파였던 ‘친박계’가 사실상 해체로 가는 모양새다. 한 때 ‘친박연대’라는 정당까지 탄생시킨 친박계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로 인해 사실상 ‘폐족’의 위기에 몰린 것이다. ‘열흘 붉은 꽃이 없는’ 자연의 이치를 탁본한 현실이다.

朴 한나라당 대표 시절 친박 형성…
‘원조 친박’은 김무성·유승민


‘친박계’가 전면에 등장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004년 한나라당 대표에 오르면서부터다. 박 전 대통령이 대표직을 맡으면서 기용한 김무성, 유승민, 전여옥 의원과 함께 박 전 대통령을 지원하는 당내 세력을 가리켜 ‘친박’이라고 칭했다.

이후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내 계파는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친박계와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친이계로 양분됐다.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자 이재오, 이방호 의원 등 친이계는 친박 중진들을 공천에서 배제하는 ‘공천 학살’을 감행했다.

그러자 친박계는 탈당을 감행했고 이는 서청원, 홍사덕 전 의원 등을 주축으로 한 선거용 정당인 ‘친박연대’가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친박연대와 친박 무소속 연대는 26명을 당선시키는 기염을 토했고 친박연대는 2년 후 한나라당에 흡수된다.

이때부터 친박계는 본격적으로 힘을 키우기 시작했다. 이들은 야권과 손잡고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부결을 이끌어 냈다. 현직 대통령과의 파워 게임에서 이긴 ‘미래 권력’ 박 전 대통령과 친박계는 본격적으로 당권 장악에 박차를 가했다.

이들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 파문’ 등으로 ‘홍준표 대표 체제’가 무너지자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만들어 당권 장악에 성공했다.

박근혜 비대위는 당명을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바꿨고, 당색을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바꿨다. 2012년 실시된 19대 총선에서는 대다수의 친이계를 배제하고 친박계 의원들을 공천했다. 총선 결과 당초 기대치를 훨씬 웃도는 152석을 차지했다.

명실상부한 당내 주류파로 자리매김한 친박계는 2012년 8월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열었고 박근혜 의원을 대선 후보로 선출했다. 박 후보는 그해 12월 대선에서 득표율 51.6%로 대통령에 당선되며 친박계는 권력의 정점에 안착했다.

두 계파 중 한쪽이 월등히 힘을 키워나가자 자연히 계파 간 사이는 더욱 멀어져 갔고 결국 이들은 ‘공천 파동’을 계기로 ‘루비콘 강’을 건너고 말았다. 지난해 20대 총선 당시 김무성 대표는 국민이 후보를 뽑는 상향식 공천을 주장했지만 실질적으로 공천 일체를 친박의 지지를 받아 공천관리위원회 위원장이 된 이한구 의원이 전권을 행사했다.

그 과정에서 비박 다수가 공천에서 배제됐고 유승민 의원 등의 지역구엔 친박 인사들이 단수 추천됐다. 김무성 대표는 공천장에 대표 직인을 찍지 않는 방법으로 공천관리위원회의 공천 결과를 거부했고 거듭된 계파 갈등을 지켜본 국민들은 새누리당을 지지하지 않았다.

총선 직후 친박과 비박 사이 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 공방이 시작됐고 얼마 뒤 터진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이 둘은 완전히 결별하고 말았다. 비박과 일부 친박이 야당과 동조해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며 지난해 12월 9일 국회에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는 데 힘을 보탰고 설상가상으로 비박계 의원 29명은 얼마 뒤 12월 27일 탈당 선언을 하고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親文, 당 장악 후
‘탄핵’과 ‘조기 대선’ 주도


한편 이 같은 계파정치의 폐해는 비단 보수 정당의 문재만은 아니다. 진보 정당에도 ‘친노·비노’, ‘친문·비문’이라는 두 계파가 존재한다. 특히나 문재인 정부의 출범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 세력인 ‘친노계’가 위용을 떨칠 수 있는 시대가 찾아와 계파 정치의 폐해는 앞으로 여권 내에서 더 활개 칠 수밖에 없게 됐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 야권 인사들에게 문자테러를 감행한 사실은 계파 패권주의의 폐해를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친노계는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2선으로 물러났고 김한길 의원이 대표가 돼 당을 이끌었다. 그 과정에서 민주통합당은 민주당으로 개명했다가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연합과 합해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했다.

이후 ‘박영선 비대위’와 ‘문희상 비대위’를 거친 새정치민주연합은 2015년 23월 8일 제1차 정기 전국 대의원 대회를 열고 문재인 당시 의원을 새로운 대표로 선출했다. 이때부터 당내 친노계는 친문계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친문 세력의 힘이 커지자 자신의 대권 가도에 위협을 느낀 안철수 의원은 ‘제3정당 창당’을 내세우며 2015년 12월 탈당했다. ‘친문 패권주의’를 지적하며 문재인 대표 퇴진을 요구하던 비주류와 호남 세력이 그 뒤를 따랐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탈당한 안 의원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당명을 더불어민주당으로 바꿨다. 당내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로 영입했고 2016년 4월 13일 20대 총선에서 123석을 얻어 원내 1당이 됐다.

이를 바탕으로 더불어민주당은 2016년 하반기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고, 탄핵 국면에서 치러진 조기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내세워 당선시켰다.

이렇듯 보수 정당과 진보 정당 어디든 계파는 존재한다. 어떻게 보면 계파정치는 정당정치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정책적인 차이로 생겨난 계파라면 상호 견제와 분화를 통하여 정당 정책을 조율하고 가다듬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한민국의 현실적 계파정치는 인간적 친소 관계나 직책의 향방 등에서 생겨난 계파였다. 친박과 비박, 친문과 비문 모두 인물을 기준으로 나눈 계파일 뿐 뚜렷한 정책적 차이가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자기 파벌이 아니면 무조건 공천에서 탈락시켜 버리는 게 대한민국 계파 정치의 현주소다. 계파정치의 진정한 청산은 ‘인물’에 따른 계파정치가 아닌 ‘정책’적 차이를 인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정치를 도모할 때 이루어 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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