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당선→한·미 동맹 균열→안보 위기’… 우려가 현실로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우려했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방한 중인 딕 더빈 미 상원의원이 지난 1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사드 철수’를 언급했다. 최근 문 정부의 행보로 봤을 때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오히려 ‘즉각 철수’ 하지 않은 데 감사해야 한다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사드는 주한미군 기지를 북한의 미사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미국이 배치하는 것이다. 사드를 배치하면 주한미군기지뿐만 아니라 우리 국토의 절반가량이 방어 범위에 들어가게 된다. 결국 사드 배치는 곧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것이 되기도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사드를 걸고넘어지고 있다. 미국 입장에선 싫다는 남의 나라 지켜주기 위해 9억 2300만 달러를 쓸 이유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사드 철수는 곧 한·미동맹의 근간이 흔들리게 됨을 의미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사드 문제의 특성상 이는 곧바로 주한미군 문제로 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다면 한·미동맹에 균열이 일어날 것이라는 정치권의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 ‘盧 정부’ 출범 직후에도 한·미 동맹 위기 맞아…
- 대북 제재 국면 속, 나홀로 ‘대화’ 외치는 文


문재인 대통령의 사드 보고 누락 진상조사 지시의 외교적 후폭풍이 일파만파다. 딕 더빈 미국 상원의원은 지난 1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한국이 사드를 원하지 않으면 미국은 그 예산을 다른 곳에 쓸 수 있다고 문 대통령에게 말했다”고 밝혔다.

미국도 예산 긴축으로 많은 프로그램이 삭감되는 판인데 한국이 원하지도 않는 사드 배치와 운영에 자국민 혈세 1조 원 이상을 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더빈 의원은 또 “내가 한국에 산다면 북한이 퍼부을 수백 발의 미사일로부터 국민을 지키기 위해 되도록 많은 사드를 원할 것 같다”며 “왜 그런 정서가 논의를 지배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도 말했다.

이번 발언은 지난 2003년 2월 노무현 정부 출범을 앞둔 시점에 당시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한국이 원한다면 주한미군 철수나 감군 등 무슨 조치든 할 수 있다”고 했던 발언을 연상케 한다.

“사드 배치 번복은 미군 철수하라는 얘기”

이에 전문가들은 더빈 의원이 한국에서 일고 있는 사드 논란에 대해 경고성 메시지를 던진 성격이 강하다는 입장을 내놓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미국의 대 한국 정책에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김창준 전 연방하원의원 역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사드 배치 번복은 미군 철수하라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문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한·미 관계가 중대한 갈림길에 서게 될 것이라는 경계다.

만약 미국이 사드를 철수한다면 상상 이상의 대가(代價)를 치를 수밖에 없다. 미국은 미군과 그 가족을 위험에 노출시킬 수 없을 것이고 결국 주한미군의 대대적 감축이나 철수론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한·미 동맹이 심각하게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반면 이는 주한미군 철수와 동맹 해체를 요구해 온 북한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소식이다. 북한은 미 항모가 배치되고 전략폭격기가 출격하는 한반도 비상 상황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달 동안 매주 미사일을 쏴대고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부터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본격화된 것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마치 북한이 문 정부 출범에 축포를 쏴대고 있는 것 같다”고 조소하기도 했다.

나아가 문 정부가 북핵 도발에 이렇다 할 대응책도 없이 최소한의 방어무기에 대해 이토록 민감하게 대응하자 일각에선 우려했던 일이 현실화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선 기간 동안 문재인 대통령은 ‘안보관’ 공세에 시달렸다.

보수 정당 후보들은 하나같이 문 대통령의 안보관을 물고 늘어졌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다면 한·미 동맹 나아가 국가 안보가 심각한 위기에 내몰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같은 주장이 실제로도 들어맞고 있는 것이다. 이번 딕 더빈 의원의 발언뿐만 아니라 미국 정부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 국제사회 모두가 하나 같이 대북 제재를 강화하는데, 한국 정부는 대북 민간 교류에 시동을 걸고 있는 점도 이를 방증하는 대목이다.

이에 김창준 전 연방하원의원은 “중국도 미국의 정밀공격은 묵과하겠다고 했다. 트럼프 성격을 봐서는 곧 정밀 타격할 것 같다”며 “김정일 정권 때만 해도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도 희망이 보였다. 햇볕정책도 희망이 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안 된다. 가능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시진핑 文에 ‘구애’… 한·미 동맹 약화 의도

한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문 대통령에게 꾸준히 구애의 태도를 취하는 모습도 한·미 관계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제인 퍼레스 뉴욕타임스 베이징 지국장은 지난 1일 자 지면에 실은 칼럼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구애를 하고 있다. 시 주석은 한미 동맹을 서서히 약화시키고,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의 위치를 확고히 하기를 바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드를 둘러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박근혜 정부 시절보다 문재인 정부를 한·미 관계를 틀어지게 할 더 좋은 기회라고 여기는 듯하다”며 “사드는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는 전략적 무기체계로, 중국의 군사력을 억제하려는 시도라는 것이 중국의 관점”이라고 말했다.

사드 배치에 중국이 반대하면서 한·중 간의 갈등이 있긴 하지만 이 역시 한·미 관계를 멀어지게 하려는 계산에서 나왔다는 게 페레즈 지국장의 설명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여당인 민주당은 한 술 더 떠 사드 보고 누락을 ‘은폐 보고’로 규정하고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심지어 ‘군 형법 위반’, ‘전 안보실장과 미 방위산업체 유착 의혹’ 등의 근거 없는 주장까지 나왔다. 대한민국이 안보 자해(自害)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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