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종교인 과세 논쟁, 봉합됐으나 다시 유예하자는 김진표 위원장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 <뉴시스>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2018년부터 시행 예정이던 ‘종교인 과세’가 좌초 위기에 놓였다. 최근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70·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수원시무)이 종교인 과세를 2년 더 유예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부터다.

당장 일부 보수 개신교를 제외한 종교·시민단체들의 반발이 거세다. 특히 김 의원이 새 정부 5년의 정책 방향을 그리는 국정기획자문회의의 ‘수장’을 맡고 있는 만큼 이러한 발언으로 인해 사회적 파장이 커지는 형국이다. 예정된 종교인 과세 방침을 유예하는 것은 개혁 민심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정체성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018년부터 시행 예정…김 위원장 ‘준비 부족’ 유예 시사
종교·시민단체 즉각 반발…일부 보수 개신교 ‘시기상조’ 환영

 
종교인 과세 논란은 지난달 26일 김 위원장이 2018년 1월 1일부터 시행 예정이던 종교인 과세 시기를 2020년으로 늦추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촉발됐다. 개정안은 종교인 소득을 세법상 ‘기타소득’ 항목에 추가토록 해 구간별로 6∼38%의 세율로 세금을 부과하자는 현행법을 시행 시점만 ‘2020년 1월 1일’로 바꾸자는 것이다.
 
그는 종교인 과세에 대해 찬성 입장을 밝히면서도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하는 문재인 정부가 남은 7개월 사이에는 도저히 못 할 것”이라며 ‘준비 부족’을 이유로 들었다. 김 위원장은 “종교인의 과세 대상 소득을 파악하기 쉽지 않고, 과세 필요성에 대한 홍보 및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내년부터 시행될 경우 종교계에 큰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고도 밝혔다.
 
반면 이에 대해 청와대는 “(종교인 과세 유예는) 김진표 위원장의 이야기고 우리는 더 살펴보고 조율이 필요한 문제라고 본다”고 밝혀, 한층 논란이 야기됐다.
 
1968년 첫 공론화
50여 년 후 뜻 모았으나

 
종교인 과세 문제는 우리 사회의 해묵은 논쟁 중 하나로 꼽힌다.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인 1968년, 당시 이낙선 초대 국세청장이 “목사, 신부 등 성직자에게 근로소득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처음 공론화됐다. 하지만 종교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이는 시행되지 못했다.
 
그로부터 40여 년 동안 ‘성역(聖域)’이 된 이 문제는 2012년 이명박 정부 당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모든 국민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국민개세주의(國民皆稅主義)’를 언급하면서 수면 위로 올라오는 듯했다.
 
하지만 2013년 2월 임시국회에서 관련법이 통과되지 않아 다시 자초됐다. 2015년 12월에야 ‘종교인 소득’을 신설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종교인 소득에 대한 과세 근거 규정이 마련됐다. 이마저도 유예 기간이 필요하다는 종교계의 요구에 따라 2년여 뒤인 2018년 시행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각계각층 ‘반발’
‘종교인 눈치보기’ 지적도

 
50여 년간의 논쟁 끝에 시행 예정이었던 종교인 과세 문제가 김 위원장의 발언으로 다시 유예될 상황에 놓이자 각계각층에서는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다.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등 종교시민단체들은 지난달 31일 국정기획자문회의 사무실이 위치한 서울 종로구 금융감독원 연수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년 더 유예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종교인 과세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김 위원장이) 보수 개신교계의 입장을 그대로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반영하려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면서 “종교인 과세는 국민 다수가 동의하는 국정과제로 종교인에 대한 특혜는 국민의 뜻에 어긋난 적폐 중의 하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도 “수억 원씩 연봉을 받는 대형교회 목사들이 세금을 내야 하는 데다 수입·지출을 투명하게 해야 하기 때문에 기득권 세력의 반발이 있는 것”이라며 “과세 유예를 강행할 경우 더 강도 높게 반대 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현재 김 위원장은 기독교계 인사들이 주축인 국가조찬기도회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수원중앙침례교회 장로 출신이다. 또 20대 국회에서 민주당 내 교회 모임인 기독신우회 회장을 역임할 정도로 대표적 기독교 인사로 꼽힌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종교인 눈치보기’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종교인 과세 유예는 적폐 청산 기치를 내걸며 강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 방향과 배치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천주교의 경우 이미 1994년부터 교구별로 성직자들의 성무활동비와 생활비, 수당, 휴가비 등에 근로소득세를 자발적으로 납부하고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도 원칙적으로 납세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부 개신교 단체들은 종교인 과세가 “시기상조”라며 반대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은 법으로 강제성을 띠기보다는 교회가 자발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큰 교회들은 현재도 자발적으로 세금을 납부하고 있다”면서 “납세 대상에 들어가지 않는 미자립 교회들이 한국 교회의 80% 정도인 상황에서 종교인 과세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했다.
 
국민 71.3% ‘과세 찬성’
논란 지속될 듯

 
여론은 종교인도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한 상황이다. 여론조사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2014년 11월 종교인 과세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에서 71.3%가 ‘과세해야 한다’고 답했다. ‘면제해야 한다’는 응답은 13.5%에 그쳤다.
 
시민들은 세수 규모를 떠나 납부 의무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대학생 최수인(26)씨는 “다 내는 세금을 종교인이라고 특혜를 줘선 안 된다”며 “이제는 종교인들도 세금을 내야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직장인 정모씨(34)씨는 “이미 2년의 유예기간을 줬는데 또 2년의 유예기간을 달라는 말인가”라며 “남은 기간 잘 준비해 예정대로 시행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기획재정부와 국세청 등은 이르면 다음달 종교인 과세에 대한 설명회를 여는 등 실무 작업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청와대가 조율 필요 의견을 피력한 데다 국정기획위의 뜻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꼭 2년이 아니더라도 상세한 과세 기준 설정 등을 위한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종교·시민단체들의 반발이 거세지는 가운데 김 위원장의 뜻이 관철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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