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정권 정통성’ 기반…집권 초 ‘힘’ 바탕 개혁 강공 드라이브

<뉴시스>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최순실 국정 농단’, ‘국정원 댓글’, ‘백남기 농민 사망’, ‘세월호’, 최근 ‘사드 보고누락’ 파문까지, 모두 문재인 정부 아래 ‘재조사 목록’에 있는 사건들이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각종 재조사 지시는 진상 조사에서부터 검찰 수사로까지 전방위적으로 펼쳐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검찰·국정원 등 우리 사회의 개혁에 대한 열망이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에서 이 같은 조치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마땅한 조치라는 의견이 다수를 이룬다. 다만 청와대의 과도한 개입으로 인한 ‘정치 보복’이나 ‘과거 들추기’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집권 초 무리한 개혁은 ‘용두사미’에 그칠 것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일요서울은 문재인 정부의 각종 재조사 사안에 대한 전후를 살펴봤다.
 
‘사드 보고누락·최순실 국정농단·국정원 댓글·백남기 사건’까지
각종 재조사 목록 ‘수두룩’…진상 조사부터 검찰 수사까지 전망
여소야대 국면 속 정부 재량권 극대화…정국 주도권 잡기 포석
야권 ‘정치보복·표적 수사’ 반발…무리한 개혁으로 ‘용두사미’ 우려

 
문재인 정부 첫 개혁 신호탄을 올린 사안은 ‘4대강 사업’이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4대강 사업에 대해 정책 감사를 지시했다. 이는 그간 보여준 이명박·박근혜 정권에 대한 ‘흔적 지우기’를 넘어 지난 9년간의 적폐 청산에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의도로 해석됐다.
 
특히 4대강 재조사 의지는 ‘장관 인사’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 평가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국토부 장관에 김현미 의원을 지목했다. 김 의원은 대표적 ‘4대강 저격수’로 꼽힌다. 2015년 당시 기획재정위에서 4대강 부정당업자(부적합 계약자)에 대한 정부의 특혜성 사면조치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추후 김 의원이 국토부장관에 최종 낙점된다면 4대강 재조사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관측된다.
 
사드…방산 비리로 이어질까
정유라 귀국…국정 농단 새 국면

 
최근 ‘사드 보고 누락 파문’은 사드 배치 전 과정에 대한 재조사뿐 아니라 방산 비리 수사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청와대는 지난달 31일 ‘사드 보고 누락 파문’과 관련해 안보라인의 핵심인 김관진 전 안보실장과 한민구 국방부장관을 조사했다. 안보 컨트롤타워의 두 축이 동시에 청와대 조사를 받는 것은 전례가 드문 일이다.
 
지난 정부 외교안보 라인 전체뿐 아니라 황교안 전 권한대행에까지 조사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우선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국가안보실에서 ‘투트랙’으로 진행하는 진상조사가 대규모 합동조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회에서는 별도의 ‘사드 청문회’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일각에서는 청문회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사드 특검’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검찰의 최근 ‘돈봉투 만찬 사건’이 검찰 개혁의 신호탄으로 작용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사드 보고 누락 파문’ 사건이 고강도 군 개혁으로 이어질 거란 전망이 우세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비선 실세’ 최순실 씨(61·구속기소) 딸 정유라(21)씨가 지난달 31일 강제송환되면서 국정 농단 사태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정 씨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함께 국정농단의 ‘마지막 퍼즐’로 간주돼 왔다. 정 씨는 ‘최순실 게이트’ 시발점이 된 이대 학사 비리 사건의 당사자이며, 삼성 승마 특혜 의혹의 직접 수혜자다. 정 씨는 최 씨의 해외 은닉재산과 관련된 ‘키맨’이기도 하다.
 
현재 정 씨는 관련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지만 검찰 조사 과정에서 새로운 진술이 나올 경우 국정 농단 수사가 탄력을 받을 수도 있다. 과거 최 씨의 최측근이었던 노승일 전 K스포츠부장은 정 씨에 대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이라며 “귀국해 입 열면 다 터진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낙연 신임 국무총리는 인사청문회 당시 이른바 ‘적폐청산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 본격 부패 척결을 시사했다. ‘최순실 해외 은닉재산’ 조사와 불법 재산 환수는 적폐청산특위의 주요한 임무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지난달 22일 첫 출근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업무 파악이 끝나는 대로 본격 수사를 지휘할 것으로 보여 ‘1호 수사’가 무엇이 될지도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다.
 
‘댓글 사건’ 재조사 밝혀
경찰 인권 침해 사건도 테이블에

 
‘국정원 댓글 사건’도 재조사 대상이다. 서훈 신임 국가정보원장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국회 정보위원들에게 보낸 서면질의 답변서에서 ‘댓글 사건’ 등 국정원 정치 개입 의혹 사건들을 재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댓글사건은 4년이 지난 지금까지 법적인 논란을 거듭하고 있어 전직 국정원 차장을 역임했던 사람으로서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국민 신뢰를 잃게 만든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실시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또 ‘국내정보담당관 폐지’ 등 국정원과 국내 정치를 떼어놓겠다고도 밝혔다. 서 신임 국정원장이 지난달 31일 공식 취임한 만큼 국정원 관련 의혹 사건들을 포함, 강도 높은 국정원 개혁에 착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인권위원회 위상 강화를 언급하면서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 문제도 수면 위로 부상할 조짐이다. 지난달 25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인권위원회 위상 제고 방안을 발표하며 ‘인권 친화적 경찰’을 강조했다.
 
여권에서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은 경찰의 대표적 인권 침해 사건으로 꼽는다. 백남기 씨는 2015년 11월 ‘민중 총궐기’ 시위 도중 경찰의 물대포에 맞고 쓰러져 사경을 헤매다 결국 숨졌다. 여권과 시민사회에서는 경찰의 무리한 공권력 집행으로 사고가 발생한 만큼 이에 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경찰대 교수 출신인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에 대해 “경찰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사건”이라며 “경찰 감찰 내용이 공개되고 검찰이 중립적으로 이 사건을 조사하게 된다면 왜 그런 일이 발생했고 어떤 지휘관이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규명될 수 있으리라 본다”고 밝혔다.
 
현재 미수습자 수색에 초점이 맞춰진 ‘세월호 사건’도 추후 재조사 대상에 오를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우선, 활동 중인 선체조사위원회에 인력과 재정을 추가 지원해 미수습자 수색 강화와 사고 원인을 밝혀내는 데 주력한 다음, 새로 꾸려지는 ‘2기 세월호 특조위’에서 본격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만약 국회에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만들어지지 않을 경우, 정부 직속으로 세월호 조사위를 꾸려 진상 규명에 나설 뜻을 밝힌 바 있다.
 
적폐 청산 “태생적 요구”
“개혁 이미지 좋은 것만” 비판도

 
이 같은 문 대통령의 ‘개혁 강공 드라이브’는 정권의 힘이 가장 강력한 집권 초기 밀어붙여야 성공할 수 있다는 기본 전략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촛불 민심’을 받든다는 문재인 정부의 정통성과도 연계된다는 분석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대표는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에 대한 태생적 요구를 갖고 출범했기 때문에 (각종 재조사 지시는) 이 정부의 정통성과 관련이 돼 있다”고 말했다.
 
또 여소야대라는 불리한 국면에서 정부 재량권을 최대한 활용해 정국 주도권을 잡으려는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의 높은 국정 지지율은 이 같은 재조사를 지속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란 평가다.
 
반면, 동시다발적인 무리한 개혁 일변도는 자칫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엄 대표는 “무리하게 진행하다가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며 “여소야대 국면에서 허점을 노출하면 야당으로부터 집중 역공을 받아 개혁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야권에서는 각종 재조사에 대해 ‘정치 보복’, ‘표적 수사’를 언급하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청와대가 정치적으로 불리한 사안은 외면하고, 유리한 사건만 재수사하도록 지시하는 것은 정치보복이라는 입장이다.
 
이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의 640만 달러 뇌물 수수 의혹, 문 대통령의 아들인 ‘문준용 특혜 취업’ 의혹,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대북결재사건’도 반드시 진상이 규명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야권 관계자는 “지금 ‘제로섬 게임’하자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이는 결국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도 있다. 지지율 높으니까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것은 가장 없어져야 할 적폐를 되풀이하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다른 야권 관계자는 “(각종 재조사 대상 건이) 개혁 정부, 적폐 청산 이미지에 맞는 좋은 사안들이라 추진하는 것 같다”며 “이처럼 처음부터 강하게 추진하는 것은 통합이란 측면에서 보면 반하는 행보 아닌가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여권 관계자는 “많은 과제를 한꺼번에 처리하면 개혁 대상 세력의 저항을 부를 수 있기 때문에 과제별 특성과 시급성 등을 고려해 개혁의 속도를 전략적으로 조절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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