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시스>
재벌은 영원한 재벌, 중소기업은 영원한 중소기업
상황 지속될 경우 한국 노동 시장 개혁 불가능


[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SK브로드밴드에서 최근 인터넷 설치 등을 담당하는 협력업체 직원 약 5200명 대상 자회사를 설립해 정규직으로 채용키로 했다. SK의 이런 결정은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말한 지 일주일 만에 나온 것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공공 부문에서 민간으로 확대되는 모양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만들어주기만 하면 노동 시장 개혁이 바람직스럽게 이뤄지는 것인가? 하지만 한국 노동 시장이 안고 있는 문제는 이보다 더 복잡하다. 이화여자대학교 경제학과의 블라디미르 흘라스니 교수는 최근 한미경제연구소(KEI) 홈페이지에 발표한 논문 ‘한국 노동 시장의 경직성과 사회적 불평등·법률적·경제적·사회적 관리의 역할’에서 1차 부문 대(對) 2차 부문 사이의 이원성(二元性), 그리고 정규 고용 대 비정규
고용 사이의 이원성이 한국 노동시장 구조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1차 시장은 재벌기업을 가리킨다. 자본 집약적이고 수출 지향적인 재벌은 전통적으로 최상의 공공 계약 및 금융 조달 면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누려 왔다. 재벌은 혁신, 역동성, 그리고 뛰어난 제품으로 우월한 시장 지위를 고수한다. 재벌은 안정적이며, 후한 봉급과 진급 기회를 갖춘 정규직 고용을 제공함으로써 숙련되고 헌신적인 근로자를 유치한다.

2차 시장은 중소기업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들 중소기업 대부분은 노동 집약적인 서비스 제공자로서 재벌의 하청 형태로 일한다. 중소기업은 혁신에 훨씬 덜 의존하며 제품의 독창성보다는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한다. 재벌은 중소기업에 대해 결정적인 권한을 행사하여 중소기업의 수익성을 억제하고 중소기업이 경쟁자로 성장하는 것을 방해한다.

중소기업들 사이에서는 파산과 기업 재편의 비율이 높다. 기업 규모를 기준으로 삼는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제도는 중소기업의 성장 유인(誘因)에 추가로 찬물을 끼얹는다. 현존하는 사회적 계약 구조 하에서 중소기업은 재벌 기업보다 훨씬 더 느슨한 규제를 받는다. 그리고 노동기준 준수 의무가 사실상 면제돼 있다. 중소기업은 비정규적이며 노조 결성에서 제외된 고용을 제공하는데, 이들 일자리는 안정적이지 않은 데다 보상이라고는 임금이 유일하며 훈련받을 기회, 성장 전망, 또는 사회적 보호에 있어 제한적이다.

중소기업은 낮은 자본, 제한적인 평판, 산업 규정·기준 충족에 필요한 능력의 결여 때문에 재벌과의 경쟁에서 배제된다. 불리한 조건에 놓인 중소기업 근로자는 1차 부문 참여를 차단당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역량과 열의를 드러내 보일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혜택 받은 대기업 동료들과 계속 나란히 경주할 수 없는데, 그것은 그들의 기술 역량이 비정규 일자리에서 감퇴되기 때문이다. 2차 부문 일자리에라도 들어갈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우선 기술 습득에 대한 열의부터 낮아진다.

이런 이원성의 상태는 따라서 노동시장의 구획들을 가로질러서가 아니라 그 구획들 내부에서 고용주와 근로자가 경쟁하는 양상으로 굳어진다. 그러다 보니 자본과 재능이 일정한 울타리 속에 갇히며, 그 최상의 용도를 찾아내는 일을 차단당한다. 소기업은 계속해서 소기업, 중기업은 계속해서 중기업으로 일관하는 것이다. 1차와 2차 시장 기업들은 만성적으로 다른 노동력 구성과 기업 위계 속에서 살아간다.

또 종업원과 기업 사이의 갈등해결 시스템이 부적절하다 보니, 노사가 채용 전 고용조건에 대해 유연하게 합의하기도, 채용 후 효율적으로 분쟁을 조정하기도 어렵다. 고용주는 왕왕 생산적인 근로자를 고용한답시고 불투명하고 비공식적인 방법에 의존한다. 이를테면 입사 지원자의 불확실한 역량을 가늠하는 방법으로 해당 지원자 부모의 근로 이력을 참고한다든지, 제3자에 의한 증명이나 하청에 의존함으로써 노동 기준을 우회한다.

노동 관행을 당국에 의해 현저하게 제약 당한다고 판단하는 기업들은 규제를 덜 받는 고용 대행 업체를 통해 아예 인력을 외주한다. 근로자 역량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보니, 심지어 역량이 똑같은 근로자들조차 대단히 다른 경력들로 나아갈 수 있다. 고용주들은 잘못된 인원수와 형태의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으며, 그 바람에 역량 획득에 대한 근로자들의 유인은 왜곡된다. 자질을 효과적으로 드러내 보일 수 없는 근로자들은 쉽게 관찰될 수 있는 신호에 대신 투자한다.

근로자, 일자리, 그리고 비정규 고용계약에 허용되는 규제 예외 간의 불일치는 경제 체제 내에서 소득과 근로조건의 만성적인 분산으로 이어진다. 잘못된 일자리에 포획된 근로자들과 진로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두 번째 기회를 잡지 못한다. 현존하는 공공지원 제도는 부적절하다. 경력 단절 근로자, 비전통적인 배경을 가진 젊은이, 어린 자녀를 둔 어머니들을 포함해 특별한 요구를 지닌 근로자들은 대안적인 근무 형태나 재교육을 제공받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 일자리로 내몰린다.

기회 불평등이라는 문제는, 충분히 활용되지 않은 근로자들의 기량이 감퇴되는 가운데 해당 근로자의 생애에 걸쳐, 그리고, 근로자 자녀들에 의한 역량 습득 기회에의 일출(溢出) 효과를 통해, 심지어 세대들을 가로질러 축적된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흘라스니 교수는 강조한다. 정책 당국자들은 이전에는 산업 참여자들 사이의 사회적 계약을 뒤흔듦이 없이 시장에서의 불평등을 바로잡으려 시도했다. 당국자들은 노동시장 회생자들에게 립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불투명하고 분열된 현재의 시장 조직을 강화해 왔으며, 기업 및 노동자 집단이 확실하게 도전해 올 것으로 예상되는 철저한 노동시장 점검에서 비켜 선 자세를 유지해 왔다.
한국은 기회균등 법률, 노동기준과 안전망 규정을 입법화했지만, 그것들을 뒷받침할 자원이 불충분하며 강제 조처가 느슨하다. 생산성 정체, 사회 양극화, 인구학적 내파(內破)가 시간이 흐르면서 더 크게 모습을 드러내는 가운데, 이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음이 드러났다. 따라서 기업과 근로자를 위해 시장 장애물을 철거하고, 투명한 시장 관행을 촉진하며, 분야들과 경력들을 가로지르는 노동 이동성을 장려하자면 포괄적인 정책 혁신이 필요하다.

기업들 사이에서 경쟁력 있는 분야가 평평해져야 하며, 기업들은 부문들을 가로질러 규모가 확대되도록 권한을 부여받아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근로조건 격차를 줄이고, 노동 이동성을 촉진하며, 역량 투자와 관련하여 근로자들을 안심시키는 데 노동정책이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흘라니스 교수는 조언한다.

일요서울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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