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文 정부 인사 청문회 난항, 정면승부해야…
- ‘과장 광고’였든 ‘오판’이었든 인정하고 수습하는 것이 합리적


문재인 정부의 초반 행보는 국민들에게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민주당 선거 캠페인에서 보인 모습에 비해 훨씬 ‘준비된 대통령’ 같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선되고 열흘가량의 시간 동안 꿀맛 같은 나날이었다.

냉정하게 말한다면, 문재인 정부의 처신이 훌륭했기 때문만은 아닐 수 있다. 2016년 10월 말 ‘최순실 게이트’의 전면화 이후 반 년 동안 시민들은 피로해졌다. 청와대와 제 야당의 거취와 행동 하나하나에 촌각을 곤두세웠고, 상당수 시민들이 촛불이든 태극기든 집회에 나와 의사를 표시했다.

주권자임을 선포하는 것은 신나는 일이지만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생활인으로서 국가 운영에 대한 관심을 상시적으로 유지할 수는 없다. 현대 사회의 모든 민주주의 국가들이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이유다. 마땅히 시민의 의사를 대의해야 할 정치인들이 할 일을 안 하고 있다고 여겼기에 항의하고 나섰지만, 그런 상황이 상시적으로 지속될 수는 없다.

준혁명적 상황의 피로감에서 유례없는 조기 대선이 치러졌다. 다자 구도의 특성상 예전처럼 시민들이 두 패로 갈린 것을 넘어 사분오열했다. 정권 교체를 바라던 시민들 사이에서도 정치적인 격론이 벌어졌다. 이렇게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상황이 종결됐을 때, 어찌 됐든 이제부턴 정치인이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교체된 대통령은 조금만 그럴듯하게 처신해도 그를 지지하지 않았던 시민들에게도 큰 기대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다.

한 달이 지난 지금, 열흘 동안 시민들이 느꼈던 환희는 다소 꺾인 상태다. 80%를 넘던 지지율도 조정기에 들어섰다. 사드 배치 보고 누락 논란과 인사청문회 난항이 핵심적인 이슈다. 특히 후자의 문제에 대해선 대통령이 대선에서 공표했던 원칙을 훼손하면서 체면을 구겼다. 병역의무 불이행, 주민등록위장전입, 부동산투기, 논문표절, 탈세를 행한 이는 기용하지 않았다는 ‘5대 비리 배제 원칙’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현 정부 입장에서 억울한
부분이 없는 건 아니나…


물론 문재인 정부의 입장에선 억울한 부분이 있다. 지난 이십여 년의 맥락을 보면 저 5대 비리 배제 원칙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십여 년 동안 현저하게 훼손된 도덕성을 바로세우는 행위에 가깝다. 위장전입이 문제가 되어 공직자가 낙마한 것은 국민의 정부 시절인 2002년 국무총리 후보자였던 장상과 장대환이 최초였다. 인사청문회에서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의 공세로 지명이 철회되었다.

그러나 이후 보수 정부가 집권하자 저 비리 중 몇 가지가 중첩되었으면서도 지명이 강행되는 인사들이 나타났다. 이명박 정부 초기 인사들이 특히 심했다. ‘비리 몇 관왕이 아니면 고위 공직자도 못 된다’는 푸념이 나돌 정도였다. 문재인 정부의 입장에선 ‘비정상의 정상화’를 의도하는 데, 과거 정부보다 훨씬 엄격해진 기준이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엄격한 기준을 제시한 것이 야당이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이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여당에서도 ‘5대 비리 원천 배제’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항변이 나온다. 선거캠페인 과정에서 개혁성과 도덕성을 강조하기 위해 비현실적으로 무리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런 비현실적으로 무리한 기준을 제시했던 걸까. 사람들의 해석은 둘로 갈린다. ‘허위과장 광고’였단 이가 있고, ‘오판’했다는 이가 있다. 후자를 믿는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본인이 청렴하기 때문에 한국의 사회지도층의 평균 수준을 몰랐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홍은동 빌라에서 선선히 걸어 나오는 대통령 부부를 본 시민들은 좋은 의미의 충격을 받았다.

한국 사회에서 얼마 안 되는 재산을 굴려본 사람들이라면 그들이 부동산 시세차익에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실거주를 목적으로 집을 구매한 사람이란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지도층은 물론이거니와 대부분의 서민들도 그리 살지 않는다. 설령 남편이 특출나게 청렴한 공직자라 하더라도, 그런 경우엔 아내나 처가가 주도하여 어떻게든 재산을 굴리는 게 보통이다. 내가 구매한 집 옆 동네 아파트가 일 년 사이에 가격이 일억씩 치솟는 광경을 보면 안타까와서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이 한국의 중산층들이다.

헌재와 촛불이 만든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는 것이 새 정부의 역할


야당의 공세가 지나친 부분도 있다. 특히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청문회에서 그 지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아내의 암투병 때문에 이사갔다고 해명하면 그것은 실거주가 된다. 그럼에도 ‘위장전입’을 한 건 사실이지 않느냐고 계속 우겼다. ‘논문 표절’은 심각한 문제지만 ‘자기표절’은 글자만 비슷하게 생겼을 뿐 전혀 다른 일이다. 그런데도 ‘표절’이란 단어에 집착했다.

그렇지만 그것이 야당의 일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제 야당들은 원내에서 가장 세가 약한 정당인 정의당과도 차이가 없는 무의미한 지지율을 얻고 있다. 지지율이 좀 더 높다면 다른 전략적 선택을 할 여지가 있을 테지만 지금으로선 정부 여당에 각을 세워보는 것이 정치세력으로선 합리적인 판단이다.

무엇보다 시민들의 기대 수준이 높아졌다. 민주화 이후 삼십 년 동안 잠깐잠깐 역행하는 것으로 보였을지언정 한국 사회는 전진해왔다. 특히 시민들의 촛불과 함성을 곁에 두고 헌법재판소가 내린 대통령 파면 결정의 논거는 새로운 가이드라인이 됐다. 예전 같으면 통치행위로 퉁쳤을 일에 그래선 안 된다는 사인을 줬다.  

촛불시민의 지지를 등에 업고 등장한 정권은 도의상 이 가이드라인 위에서 전진해야 한다. 인수위가 없어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지 못했다는 청와대의 해명은 일리는 있지만 불충분하다. 정치적 관심이 높아진 시민들은 잘 알고 있다. 문제를 정면으로 대면하는 것과, 에둘러 가는 것의 차이를 말이다.

생활인들은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배제 원칙이 다소 무리한 것이었단 것도 이해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장 광고’였든 ‘오판’이든 깔끔하게 오류를 시인하고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일이다. 정부가 그리 나온다면 야당들의 입지가 오히려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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