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세월호 혜택 비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중앙보훈병원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일 오전 현충일 추념식을 마치고 중앙보훈병원을 방문해 애국지사와 부상병을 위문했다. 문 대통령은 “보훈만큼은 국가가 도리를 다해야한다”고 말했으며 함께했던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은 현장에서 지뢰사고로 발목을 잃은 장병이 사용할 의족이 수입산밖에 없다는 소식을 접하고 “정부에서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현재 한국은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지정해 기리고 있다. 하지만 보훈병원의 경우는 한시적이지 않다.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 등에 대한 의료기관이다보니 매일 매일이 보훈 대상 환자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일요서울은 이런 보훈대상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이들의 현 실태를 살펴보고자 서울에 위치한 중앙보훈병원에 방문했다.

6.25 한국전쟁 참전자, 무공수훈‧일반 참전‧부상‧사망 혜택 모두 달라
“목숨 바쳐 싸운 만큼 독립유공자와 같은 대우받고 싶었다”


기자는 지난 8일 5호선 둔촌동역에서 하차해 1번 출구로 향했다. 지하철 역사 출구에서 중앙보훈병원까지 1km 남짓한 거리에서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조금 걷다 보니 중앙보훈병원에서 국가유공자들을 대상으로 한 무료 버스 정류장을 발견했으며 실제 운영 중인 버스들이 보였다. 국가유공자로 보이는 여러 어르신들이 탑승해 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보훈병원 인근에는 초‧중‧고교가 위치해 있었다. 곳곳마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해 “보훈가족에게 감사와 예우를” “나라를 위해 바친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등의 현수막을 걸어 눈길을 끌었다.

중앙보훈병원에 도착하자 환자들이 의사 인솔에 따라 중앙 공원에 나와 노래를 부르고 서로 소개를 하는 등 활기찬 모습을 보였다. 너나 할 것 없이 박수를 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환자복을 입고 휠체어를 타고 있거나 링거를 맞으며 공원을 걷는 환자들, 외래 진료를 받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내부에 들어서자 더 많은 환자들과 보호자, 간병인, 직원들이 몰려있었다. 이곳에서 기자는 전쟁 참전용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무공수훈자 위해
투쟁했다”

 
6.25 참전용사라 밝힌 김현상 씨는 많은 이야기들을 털어 놓았다. 그는 기자와의 대화에서 “나는 6.25 참전 용사이고 훈장을 탔다. 무공수훈자에 대한 훈장은 5가지로 분류된다. 인헌, 화랑, 충무, 을지, 태극 등 5등급으로 나뉜다. 나는 화랑무공훈장과 함께 보국훈장까지 포함해 2개를 탔으며 우리 같은 사람들을 ‘무공수훈자’라고 한다”며 “6.25 전쟁 당시에는 전쟁 시작부터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방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다. 사회에 나와서는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본회에서 기획관리실장‧이사‧부회장 등을 역임했었다”고 밝혔다.

이어 “초창기에는 6.25 참전용사 무공수훈자들에게 국가 차원에서 보상해 주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투쟁을 실시했었다. 왜냐하면 운동선수들은 올림픽에 나가 메달을 따오면 금‧은‧동 순으로 그때 당시 40~100만 원 가량의 연금을 매달 받는데 6.25 전쟁에 참전하고 무공을 세운 사람에게는 국가 차원에서 해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너무 억울했다”며 “물론 체육인으로서 국위를 선양한 것은 인정하지만 목숨을 내놓았던 사람들은 아니지 않느냐. 전쟁에 나갔던 우리들은 구사일생으로 살아온 사람들인데 국민이 낸 세금을 걷어서 단돈 한 푼이라도 주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는가 생각이 들었었다”고 말했다.

또 그는 “독립유공자도 우리와 같이 5등급으로 나뉜다. 이들은 연금을 받으며 자손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결과적으로는 3대까지 간다. 이들은 빼앗긴 나라의 국권 회복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싸웠던 사람들이다. 이들에 대해 절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도 같은 대우를 받고 싶었다”라며 “그래서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국회의사당 등을 찾았다. 안 좋은 얘기지만 투쟁을 한 것이다. 대통령, 국무총리, 국회의장 등에게 전할 탄원서를 만들어 찾아가며 싸웠다. 국가유공자에 대해서 나라가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결국 내가 현직(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에 있을 때 나라에서 국가유공자에 대한 수당을 주기로 결정했다. 처음 6.25 참전 무공수훈자들에게 5만 원을 책정했다. 이후 3만 원을 올려줘서 8만 원을 받았다. 그때 갑자기 6.25 일반 참전자들도 보훈처에 찾아갔다”며 “그들은 우리에게 수당을 주면 무공수훈자를 제외한 일반 참전자들에게도 단돈 1만 원 이라도 줘야 하지 않느냐고 따졌으며 결국 5만 원을 책정받게 됐다. 그래서 현재는 65세 이상이 되면 (참전명예)수당이라는 것이 나온다. 일반 참전자들은 22만 원 정도 무공수훈자들은 28만 원 정도가 훈장 등급에 따라 나온다. 물론 부상자‧사망자에 대한 대우는 다르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초창기 수당을 못 받던 시절에는 회원들에게 질타도 많이 받았다. 도대체 무공수훈자회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서 무엇을 하고 있냐는 것이었다. 따라서 단돈 만 원이라도 책정된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다”면서 “결국 수당은 받게 됐지만 전쟁 참전용사가 현실적으로는 힘들다. 먹고살기도 어렵다. 독립유공자, 부상당한 사람, 유족, 미망인들은 연금을 받고 사망 시 자손들에게 승계가 되는데 우리는 없다. 그래서 이런 것들이 개선됐으면 한다. 6.25 참전용사는 우리 세대가 마지막이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옆에 있던 A씨는 “미국의 재향군인회에 가면 전사자 명단이 다 떠 있다. 또 기념곡이 울린다. 하지만 대한민국 재향군인회에 가면 그런 것도 없다. 왜 없을까. 우리나라는 너무 국가유공자에 대해 알아주지 않는다”라며 “일부 시민들은 우리 같은 6.25 참전용사들이 남북통일을 저해하는 방해꾼이었다고 말한다. 나라나 사회는 우리를 신뢰하고 인정해줘야 한다. 나는 대우보다는 국민의 인식이 바뀌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현충일만 해도 그렇다. 내가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에는 400세대 이상이 사는데 국기를 단 집은 6곳밖에 없었다. 그게 대한민국의 현주소라고 생각 한다”고 밝혔다.
 
“국민과 나라 지켜 받은
혜택이 고작 이것이냐”

 
기자는 더 많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보훈병원 인근에 있는 국가유공자 환경운동본부 서울시지부를 찾았다. 그곳에 있던 관계자는 자신이 베트남 참전용사라고 밝혔다.

그는 “전쟁 참전자(6.25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등)들은 모두 대한민국 땅을 지키기 위해 엄청난 희생을 한 분들이다. 특히 6.25 참전용사들은 과거 5~7년씩 전쟁터에 가 있었는데 살아있는 생존자들의 현주소는 어떠한가”라며 “돈을 벌어서 잘사는 분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어렵고, 못 배우고, 저소득층으로 살아가는 분들이다. 이런 분들에게 정부에서 20만 원가량을 보상해준다? 국민과 나라를 지킨 분들에게 나라에서 혜택을 준다는 게 고작 이것이냐”라며 질타했다.

이어 “5.18 유공자, 세월호 희생자 등에게 몇 억씩 지원을 해주고 후속조치까지 하는 것과 비교하면 형평성이 맞지 않다. 또 대대적으로 천안함 폭침, 연평해전 등에서 싸우다가 전사한 군인들은 얼마 받았느냐. 故윤영하 소령의 계급이 제일 높아서 몇 천만 원가량 받은 것으로 아는데 앞서 말한 5.18, 세월호의 혜택과 비교가 된다고 생각되느냐”라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현재 참전용사들은 ‘국가가 잘살아야 우리한테도 약간의 혜택이 돌아오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목을 빼고 기다리는 것이다. 선한 지도자가 나와서 우리를 이해해주면 좀 나아지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으로 말이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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