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군들 죽음으로 내 모는 군대 내 성폭력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지난달 25일 해군 대위 A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대위가 24일 부대에 출근하지 않자 동료들이 집으로 찾아갔고 그곳에서 동료들은 목을 맨 채 숨져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A대위의 방에서는 ‘내일쯤이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 자살 암시글이 적힌 쪽지가 발견됐다.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충성을 맹세했던 그녀가 죽음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해군의 조직적인 은폐가 있는 게 아닌가 의구심
조용한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들 ‘보고받고 정리했다’ 

 
헌병대 조사 결과 A대위가 최근 민간인 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털어놓은 사실이 밝혀졌다. 성폭행 가해자는 다름 아닌 직속 상관인 B대령이었다. 헌병대는 성폭행 피의자인 B대령을 지난달 25일 밤 0시 30분경 준강간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B대령은 헌병대 조사과정에서 A대위와 성관계를 한 사실은 인정했다. 하지만 성폭행 혐의는 부인했다. 다만 ‘회식 때 만취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B대령은 기혼자였고 A대위는 미혼이었다.

군사법원은 지난 26일 A대위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B대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해군은 이날 “해군 검찰은 지난 24일 발생한 여군 A대위 사망 사건과 관련 ‘군인 등 준강간’혐의로 긴급 체포된 피의자 B대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26일 오전 청구했으며 이날 오후 4시께 영장이 발부됐다”고 밝혔다. 피해자인 A대위는 이제 고인이 됐고 남겨진 B대령은 범죄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할 말이 있다”
“나중에 이야기 하겠다”

 
기자는 A대위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찾았다. A대위의 부친이 장례식 기간이던 지난 5월 27일 여당 소속의 비례대표 C국회의원에게 “할 말이 있다”며 전화를 건 사실을 확인했다.

C국회의원은 지난 28일 D보좌관에게 “기다리지 말고 직접 찾아가서 들어야 하지 않겠냐”며 직접 만날 것을 지시했고 보좌관은 다음날인 29일 시민단체 관계자 1명과 함께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A대위 부친은 기차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향하던 보좌관에게 돌연 “지금 오면 할 이야기도 없고 하니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이야기하겠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난감한 상황이었지만 이미 장례식장으로 향하던 보좌관과 일행은 조문만 할 요량으로 장례식장을 방문했다.

지난 7일 기자와 통화한 D보좌관은 장례식 분위기에 대해 “영결식장에 갔는데 (유가족이) 너무 통곡을 하며 울고 그래서 마음만 아파하며 돌아왔다”고 말했다. 또 “(장례식장에는) 동기들이 꽤 있었다. 여성 동기들도 있었는데 슬프게 많이 울더라”라고 전했다.

이날 D보좌관과 일행은 A대위 부친에게 아무런 말을 듣지 못하고 올라왔다. 다만 D보좌관은 “(슬픔에 겨워 하는 유가족을 보면서) 억울한 게 있으면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 싶었다”며 “해군이 잘 조치를 취하거나 무마를 해서 설령 장례식을 치르게 했다고 하더라도 너무 슬퍼하는 모습을 보니 맺힌 게 있으면 그냥 넘어가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D보좌관은 A대위 부친의 연락 이후 사건의 중대성을 감안해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 측에 연락을 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대부분 ‘보고받고 정리했다’는 반응이었다고 전했다.

문재인 정부 취임 이후 군부대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시점에 발생한 성폭행 피해로 인한 A대위 자살 사건은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하지만 어찌된 이유에선지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분위다.
 
“이번에는 개혁이 돼야
하지 않겠나”

 
기자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레 해군의 조직적인 은폐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의 소리가 하나둘 나오고 있다. 그동안 군부대 내에서 성범죄 사건이 터지면 국방부 등에서는 감추기 급급했기 때문이다.

기자는 지난 8일 저녁 8시경 A대위 부친과 전화 통화를 시도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A대위 부친의 목소리는 아주 차분했다.

먼저 기자는 C국회의원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그는 기자의 질문에 “아직 이야기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의원님한테 요청할 건 요청할 거고 고칠 건 고쳐야 하지 않겠나”라고 대답했다.

기자가 거듭 A대위 수사 등과 관련해 하고 싶은 말이 없는지 묻자 그는 “지금은 특별히 이야기할 건 없고”라며 “지금은 언론에서도 주시하고 있으니까 지금 이야기 할 단계가 아닌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기자와 대화를 이어가던 A대위 부친은 “26일 날 제가 기자회견을 할 거다. 의원님들 다 모여 있는데 기자회견을 할 거다”라고 밝혔다. 이어 “준비도 하고 있다. 이번에는 개혁이 돼야 하지 않겠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는 직감적으로 A대위 부친이 많은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군 내부 범죄는 일반인이 그 진상을 밝히기도 언론에 알리기도 쉽지 않다. 소송까지 간다고 해도 처벌까지 갈 확률이 낮다.

기자는 A대위 부친에게 조심스럽게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아 지금 그거 이야기하기 그렇다”며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나중에 D보좌관에게 확인한 바로는 기자회견 소식도 본 기자에게 처음 들었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A대위 부친 측이 연락해 오면 적극적으로 도울 방침이라고 밝혔다.

A대위 부친 계획대로 오는 26일 기자회견이 열린다면 국방부를 비롯 해군에는 또 한 번 커다란 태풍이 휘몰아칠 전망이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군부대 내 성범죄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은 만큼 변화의 요구도 높을 전망이기 때문이다. 또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강도 높은 개혁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유명무실해진
회식지킴이 제도

 
당초 해군은 2014년 8월 중순부터 여군에 대한 성추행을 막기 위해 ‘회식지킴이’ 제도를 도입해 운영해 왔다. 여군에 대한 성범죄가 회식 자리에서 많이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회식지킴이는 여군이 포함된 회식 자리는 사전보고를 하고 여군이 2명 이상일 경우는 그중 1명이 음주를 하지 않고 안전한 귀가까지 확인해주는 제도다. 여군이 1명일 경우에는 남자 군인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특히 지킴이는 여군 앞에서 성적 농담 혹은 성적 비하 발언을 하거나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하는지 등을 집중 감시하게 된다. 해군의 이같은 조치는 여군 성추행 사건이 빈번해지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마련한 일종의 ‘고육지책’이었다.

실제로 제도 도입 후 해군 2함대 소속 호위함 함장(중령)이 부하들과 회식 도중 만취 상태에서 위관급 여군 간부 2명을 성추행해 보직 해임됐다. 이후 해군사관학교의 영관급 장교 2명이 여성 부사관을 성추행하고 성희롱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해군이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A대위 사건 등에 비춰보면 군대 내 성추행은 아직도 회식자리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어 실효성에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늘어나는 성범죄
처벌은 솜방망이

 
군부대 내 성폭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14년 8월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홍일표 의원이 군사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군내 여군 피해 범죄사건 및 처벌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0년부터 2014년 6월까지 발생한 여군 피해 범죄는 132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83건은 강간, 성추행, 간음 등 성범죄로 확인됐다.

하지만 당시 5년간 군대 내에서 83건의 여군 성범죄 피해가 발생했지만 실형은 단 3건에 불과했다. 특히 영관급 이상 8명의 피의자 가운데 1명(벌금 400만 원)을 제외한 나머지 7명은 모두 불기소 처분에 그쳤다.

범죄행위 중에서 강간과 강간미수, 강제추행 등의 혐의를 저질렀지만 불기소 처분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지난 2012년 육군 E대위는 군인 등 강간 혐의로 입건됐지만 불기소 처분을 받았고, 같은 해 육군에서 발생한 7건의 군인 등 강제추행 범죄행위자 역시 모두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다.

2013년 해군 소속 F중사의 경우 ‘키스를 하며, 가슴을 만지는 등 20회 추행’을 한 범죄사실이 드러났지만 무죄를 선고받았다.

A대위처럼 상관의 성폭행으로 자살을 선택한 사례는 또 있다. 2013년 10월 13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G대위다. G대위는 유서에서 상관이었던 H소령이 지속적인 성관계를 요구해 왔으며, 이를 거부하자 10개월 동안 지속적인 야간 근무를 시키고, 언어폭력을 행사하는 등의 가혹행위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사건 1심인 육군 제2군단 보통군사법원은 군검찰의 공소사실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초범이고 성추행 범위가 상대적으로 경미하다는 이유 등을 들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다행히 유가족이 항소해 2심인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은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고등군사법원 역시 일부 직권남용 가혹행위와 성희롱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군부대 특수성을 감한해 더욱더 엄격해야 할 군법정이 오히려 제 식구를 감싸는 듯한 판결을 해 비난을 자초했다.
 
인권위, 육·해·공군
전체 여군 피해 조사

 
상황이 심각해지자 지난 1일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육·해·공군 전체 여군에 대한 성폭력 등 인권침해 상황에 대한 직권 조사에 나섰다.

인권위는 A대위 자살 사건에 군의 특수성과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인 문제가 혼재돼 있다고 보고 관련 전문가와 인권 단체로부터 피해 사례의 수집은 물론 전문적 의견을 자문받아 직권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인권위가 군 내 성폭력으로 인한 여군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조사를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인권위는 2012년 여군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2013년 국방부에 여군 인권 증진을 위해 성폭력 예방조치 방안과 고충처리 시스템 보완 등 종합적인 정책·제도 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국방부는 2014년 이러한 권고를 수용한다며 군 차원의 각종 예방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인권위는 그럼에도 군 내 성폭력 사건이 반복해 발생하는 것은 여군의 실질적인 권리보호를 위한 근본적인 문제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고 판단, 이번 직권조사를 결정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지난 5월 대통령 취임과 함께 새 정부의 10대 인권과제 중 하나로 ‘인권친화적 병영문화 정착’을 제시했고 여군 인권보호 강화가 그 핵심이다”며 “이번 직권조사를 통해 개별 사건의 조사에서 더 나아가 여군 인권보장제도를 재구성하는 계기가 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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