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인사 원칙·청와대 인사자료 지시 철회 ‘갈팡질팡’

왼쪽부터 이낙연 국무총리, 김동연 경제부총리,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정대웅 기자>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문재인 정부 초기 인사청문회가 중대 고비를 맞았다. 야당이 잇따라 주요 인사에 대해 ‘부적격’ 입장을 밝히면서 청와대의 향후 국정 운영에 빨간불이 켜진 형국이다. 자유한국당은 강경화·김상조·김이수 후보자 3명을 “부적격 3종 세트”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고, 국민의당은 이들 가운데 강 후보자에 대해 ‘NO’라며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청문회 정국에서 각종 인사 부실 논란이 벌어진 것을 두고 문재인 정부 인사정책에 혼선이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문 대통령의 인사 공약이었던 ‘5대 인사원칙’에 대한 후퇴 논란도 있었다. 최근에는 5대 원칙을 철회해야 한다는 내부 불만이 나와 잡음이 커지는 상황이다.
 
장·차관급 인사 ‘5대 인사원칙’ 위배 논란 지속
청와대, 사정기관 인사자료 거부하다 최근 ‘번복’
향후 장관 후보자 11명 줄줄이 청문회 예정 ‘첩첩산중’
“세부적 인선 마련” vs “5대 원칙 위배자 과감히 배제”

 
현재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등 주요 인사를 두고 야당의 공세가 거세다. 자유한국당은 이들 3명 모두 ‘부적격 3종 세트’로 규정했고, 바른정당은 후보자 3인에 대해 공식적으로 ‘부적격’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특히 ‘캐스팅보트’를 쥔 40석의 국민의당이 강 후보자에 대해 불가 판정을 내림에 따라 향후 정국에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靑 내부서 잇따른
임명 철회 ‘구설’

 
현재 ‘부처 수장’인 장관에 이목이 쏠려 있지만 차관급 인사와 그 아래 참모들 인사를 두고도 잡음이 나오는 상황이다. 지난 5일 김기정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청와대 입성 2주일도 안 돼 사임을 표했다. 연세대 교수 재직 시절 부적절한 처신으로 여성단체 등에서 각종 항의와 제보가 잇따른 것이 그 배경으로 알려졌다.
 
부적절한 품행과 처신 논란으로 사실상 ‘경질’이라는 시각이 우세했다. 문제는 김 전 차장이 지난 대선뿐 아니라 2012년 대선 때부터 문 대통령의 옆에서 외교·안보 정책을 다뤄왔다는 점에서 청와대의 부실 검증 문제가 제기됐다. 더욱이 청와대 차원에서 김 전 차장의 프로필 자료까지 이미 배포했었던 것으로 알려져 우려를 자아냈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 참모의 ‘여성 비하’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탁현민 행정관 내정자가 쓴 책에 여성을 폄하하고 모욕하는 내용이 있어 도마에 올랐다.

해당 책 <남자 마음 설명서>(2007)에는 ‘대중교통 막차 시간을 맞추는 여자는 구질구질해 보인다’, ‘이왕 입은 짧은 옷 안에 뭔가 받쳐 입지 마라’, ‘파인 상의를 입고 허리를 숙일 때 한손으로 가슴을 가리는 여자는 그러지 않는 편이 좋다’ 등 논란이 되는 다수의 내용이 있었다.
 
탁 내정자는 지난달 26일 이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혔지만 정치권과 여성단체 등을 중심으로 청와대가 탁 내정자 임명을 철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 밖에 안현호 전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의 일자리수석비서관 내정 철회, 이인걸 민정수석실 반부패비서관의 ‘가습기 살균제’ 가해 기업 변호 이력 논란 등이 있었다.
 
한 야당 관계자는 “이런 식이면 향후에도 추가 낙마자가 나올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며 “청와대 내부 검증 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라고 비판했다.
 
‘존안자료’ 거부하다 철회
5대 원칙, 내부서 불만 표출도

 
부실 검증 논란은 청와대의 ‘오락가락’ 지시가 바탕에 깔렸다는 지적이다. 청와대가 국가정보원과 경찰 등 사정기관이 주요 인물들에 대해 작성하는 인사자료인 ‘존안(存案)자료’를 받지 않다가 최근 뒤늦게 다시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부처와 기관 동향 등을 담당하는 국정원의 ‘국내정보 담당관(IO·Intelligence Officer)’의 국내 정보 파트를 폐지하겠다고 공약한 상황에서 사정 기관들로부터 존안자료를 받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 받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는 최근 입장을 선회해 다시 자료를 요구했다. 인사청문회 정국에서 주요 고위공직자에 대한 검증 부실 논란이 제기되자 다시 받아보기로 한 것이다. 다만 청와대는 “과거 생성된 인사자료는 청와대가 제공받아 사용하고 있고 사용할 것”이라며 “미래엔 당연히 그 업무(국정원의 국내 정보 파트)를 안 보니 자료를 만들 수도 없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미래 자료는 사라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5대 비리자(위장전입·병역면탈·세금탈루·부동산투기·논문표절) 배제 원칙’에 대한 후퇴 논란도 인사 잡음에 한 몫 했다는 평가다. 문 대통령은 논란이 지속되자 “공약은 그야말로 원칙이고, 실제 적용에는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반면 야당은 ‘고무줄 잣대’라며 “공약 후퇴”라고 비판하고 있다.
 
최근에는 여당 내부에서 5대 원칙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민주당 4선의 오제세 의원은 지난 8일 여당의 중진의원들 모임인 ‘중진자문회의’ 조찬회의에 참석해 “(5대 원칙은) 완전히 잘못된 공약이다. 5대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지금 총리, 공정거래위원장, 외교부장관, 기재부장관 모두 다 5대 원칙에 걸린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오 의원은 이어 “여기 있는 국회의원도 한 명도 안 빼고 다 걸린다”면서 “이것부터 고쳐야 한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정치가 이렇게 사소한 정쟁에 몰두하고 국민이 볼 때 눈을 찌푸리게 (하면 안 된다). 12시, 2시까지 앉아가지고 뭐하는 거냐. 쓸데없는 것을 가지고 앉아가지고. 그런 정치를 했다가 대한민국이 망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5대 원칙 “다듬어 적용”
vs “위배자 과감히 배척”

 
새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이 돼 가지만 장관 18명 중 절반 이상인 11명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9일 기준, 인사청문회를 거친 인물은 강경화 외교부·김동연 기획재정부 후보자 2명에 불과하다. 앞으로 남은 인사청문회 여정이 긴 만큼 구체적 인사 검증 기준을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창렬 용인대 정치학과 교수는 “성인군자를 뽑는 게 아니라면 완벽하게 충족하는 인사를 찾는 게 어렵다는 게 현실”이라며 “5대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유연성을 발휘해 현실에 맞는 검증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부 장관은 논문 표절 금지, 법무부·외교부 장관은 이중 국적 금지 등 직위별 검증 기준 달리 유연하게 정립한 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최 교수는 강조했다.
 
서양호 더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인사라는 것이 절대 기준으로 보기 어렵고 상대적인 것”이라며 “5대 원칙 지켜 나가되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집권 초기인 만큼 국민들이 양해할 수 있겠지만 향후 인사에서 원칙 위배 등 같은 문제가 불거진다면 가혹한 평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대선처럼 인수위가 없는 상황에서 인사 검증을 해야 하는 선거가 있을 때 인수위를 둘 수 있게 한다든가 하는 제도적 보완장치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지금과 같은 야당의 강력한 검증 공세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 소장은 “야당이 (곧 다가올 전당대회로) 당권 투쟁에 돌입하기 때문에 제 코가 석자라 효과적인 대정부 견제 기능을 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유연하고 세부적 기준 마련보다 5대 비리에 해당하면 과감히 배척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대표는 “지금까지 인사청문 대상자나 고위직 임명자를 보면 원칙에 어긋나는 인사가 수두룩하다”며 “5대 원칙 위배자는 과감히 배제해야 한다. 이거를 못하면 다른 정부랑 뭐가 다르냐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엄 대표는 5대 원칙을 그대로 적용하면 ‘인물난’에 빠질 수도 있다는 일각의 반론에 대해선 “인력풀을 보다 넓히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촛불 민심으로 출범한 정부답게 문재인 정부는 그에 걸맞은 고도의 공공성과 도덕성을 갖춘 인사를 등용해야 한다”며 “다소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거치더라도 그것이 문재인 정부가 지켜야할 가치”라고 강조했다.
 
靑, ‘현미경 검증’ 중
국정기획위, TF 꾸려

 
청와대는 최근 5대 인사 원칙 논란이 커지면서 인사 검증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유력했던 한 교수가 논문 표절 문제가 불거져 원점 재검토에 들어갔다는 보도도 나왔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으로 거론되는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도 다시 검증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의 인사를 위해 지난달 29일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와 청와대 인사수석실, 민정수석실이 협의해 구체적인 인사 기준을 마련할 것을 주문한 바 있다. 이에 국정기획위는 이틀 뒤인 31일 ‘인선검증 기준개선 및 청문제도 개선 TF’를 구성했다.
 
TF는 지난 1일 본격 가동돼 5대 비리들과 관련한 세부적인 고위공직자 인사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TF는 오는 25일쯤까지 인사 기준을 마련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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