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계 일각 “정부의 역사 개입 적절하지 않다”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가야 역사 복원·연구사업 지시에 대해 역사학계가 술렁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일 청와대서 열린 수석비서관·보좌관회의에서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고대 가야 역사 연구·복원 사업을 (정책 과제에) 꼭 포함시켜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대사가 삼국사 중심으로 연구돼 오면서 가야사가 신라사에 겹쳐 제대로 연구가 안 됐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가야사에 대한 연구·복원 사업은 영호남 공동사업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이라며 “영·호남 간의 벽을 허물 수 있는 좋은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대통령의 지시에 그동안 가야사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해온 역사학자들과 해당 지자체는 반기는 분위기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부의 역사 개입은 결국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논란과 다를 바 없다며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남도 ‘가야문화권 특별법’ 김해시 ‘가야문화도시’ 지정 추진중
예산 정해지면 실제 연구에 들어가는 비용은 10%라는 지적도 

 
문재인 대통령이 고대 가야사 복원사업을 정책 과제로 포함할 것을 지시하자 지자체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경남 김해시는 지난 7일 김해시를 가야역사문화도시로 육성하는 5대 핵심과제를 발표했다. 5대 핵심과제는 가야역사문화도시 지정, 가야사 2단계 조성사업 조속 마무리, 가야고분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가야권 유물 유적 복원(왕궁터 확대 등), 가야테마 여행상품 영호남까지 확대 등이다.

허성곤 김해 시장은 “가야사는 그간 잊혀진 역사로 소외되고 제대로 된 조명을 받지 못했다”며 “이번 대통령의 지시는 김해뿐만 아니라 가야권역 지자체에 축복과도 같은 말씀”이라며 환영했다.

경남도는 한발 더 나아가 ‘가야문화권 개발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가야문화권 특별법)’ 제정 등 6개 사업을 핵심사업으로 정하고, 시·군에서 추가 발굴된 사업 중 전략과제를 선정해서 추진해 나갈 방침이다.

지난 8일에는 시·군 문화재 담당과장 및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관계자와 함께 가야사 복원사업 추진을 위한 긴급 전략과제 발굴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시·군별 추진과제 발굴 방향과 공동추진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도는 가야문화 복원사업의 본격적인 추진을 위해서는 행·재정적 지원 근거가 될 가야문화권 특별법 제정이 선결과제라고 판단하고 있다.

가야문화권 특별법(안)은 현재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상정돼 있다. 가야문화권 지정 및 종합계획안 결정, 개발계획 승인, 가야문화권개발심의위원회·지역발전기획단 및 개발조합 설립, 투자진흥지구 지정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도는 가야문화 복원사업 추진의 가속화를 위해 특별법 조속 제정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고, 가야문화권 5개 시·도(경남, 경북, 대구, 전남, 전북)와 공동 대응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문 대통령 지시에 힘입어 특별법 제정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특정 시기 연구 지시
“해외도 사례 없다”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가야역사 복원·연구 사업 지시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사람도 적지 않다. 이유는 정부의 역사 개입이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지난 6일 한국고대사학회장을 맡고 있는 하일식 교수는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정부가 역사에 개입하는 행위를 한다면 국정교과서 추진이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며 문 대통령을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가야사 연구나 유적 복원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라며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이런 것에 일일이 나선다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 교수는 “대통령이라는 위치에서 학문 문제에 대해 지시에 가까운 언급을 했으니 그렇다”며 문 대통령의 지시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많은 연구자는 김대중 정부 때 금관가야(지금의 김해 일대)를 중심으로 가야사를 복원한다고 국가 예산을 엄청나게 많이(1290억원) 쓴 것에 대해 부정적인 기억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지금 와서 또 이런 얘기가 나오니 적절하지 못하다는 공감대가 생긴 것이다”라며 “대통령이 학계에 ‘특정 시기 연구에 집중하라’고 하는 것은 외국에도 예가 없을 것이다. 미국이 그러겠나, 유럽이 그러겠나?”라고 말했다.

하 교수는 문 대통령의 발언 배경에 대해 “대통령이 언급한 맥락으로 추측건대, 아마 후보 시절에 지방 공약과 관련해서 지자체들이나 일부 연구자로부터 브리핑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연구 활성화 효과에 대해서도 하 교수는 “예산이 정해지면 실제 연구에 들어가는 비용은 10%도 안 되고 대부분 토목공사나 이벤트로 쓰일 것이다. 이미 그런 비슷한 일들을 많이 봐 왔다. 물론 지자체는 쌍수 들고 환영할 것이다”라고 쓴소리를 했다.
 
역사관 논란 휩싸인
도종환 의원

 
문재인 대통령의 가야사 복원·연구사업에 대한 우려 반응 가운데는 문화체육부 장관 후보자인 도종환 의원의 역사관을 문제 삼는 사람들도 있다. 하일식 교수도 마찬가지다.

하 교수는 도 의원이 ‘상고사 정립’을 내세운 재야사학자들을 옹호한 것에 대해 우려스럽다는 내용의 글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하 교수는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통해 “문제는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문체부 장관이 되면, 엉뚱한 쪽으로 예산을 돌릴 수 있는 여지가 교육부 장관보다 훨씬 많다는 데 있다”며 “도 후보자는 유명 재야 역사학자를 스승처럼 여기고 있다는 말도 들었다. 유사역사학에 경도된 사람들의 문제는, 한번 그렇게 사고하면 사이비 종교에 빠진 듯 대화나 토론이 안 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도종환 의원은 자신의 역사 의식에 대해 일부 역사학계서 비판여론이 나오자 “권력의 힘으로 역사연구와 교육의 자율성을 훼손할 의도가 전혀 없다”며 8일 보도 참고자료를 배포했다.

도 의원은 “역사 문제는 학문 연구와 토론으로 풀어야 하지 정치가 좌지우지할 영역이 아니다”라며 “특정 학설을 일방적으로 주장하거나 이를 정부정책에 반영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 밖에 동북아역사재단의 ‘동북아역사지도’ 사업 중단에 대해서도 “당시 지도 제작의 총체적인 부실을 드러낸 교육부의 사안조사 결과 때문이었다”며 “이후 동북아역사재단이 진행한 재심사 결과에서도 ‘D등급’을 받고 10억 원이 넘는 연구비 회수가 최종 결정된 바 있다. 심사위원 전원의 합의에 의해 내려진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19대 국회에서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점을 들어 “특위에서 고대사 연구가 진영 논리나 배타성을 극복하고 상대방을 이념 공격으로 무력화시키는 비학문적 태도를 넘어서는 노력이 필요하며 젊은 연구자들을 양성해 고대사 연구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점을 누차 강조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도 의원은 자신이 ‘하버드대 한국고대사 프로젝트’를 중단시켰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사실과 다르다”며 “이에 대해서는 특위나 상임위에서 질의를 한 적도 없으며 개입한 적도 없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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