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권 민심 의식 ‘특검’을 재물로 삼았다” 비판 여론 확산 한나라 핵심인사 “특검수사 주장했지만 우리 입장도 난감”3년전 6월15일의 감동은 ‘온데간데’ 없다는 지적이다. 정부차원의 공식행사도 없었다. 당시 감동을 이끈 주역들은 ‘구속초읽기’에 들어섰다. 와병중에 노구를 일으켜 대북송금이 사법적 대상이 돼서는 안된다는 소신을 거듭 밝혀야만 했던 김대중 전대통령의 모습만 봐도 7천만 온겨레의 눈가를 적시게 했던 2000년 6·15남북정상회담의 현주소가 얼마나 초라해졌는지를 실감케 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북송금 특검을 공포한 이후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 곳곳에서 분열과 비판이 일고 있다. 이런 와중에 노대통령은 6·15정상회담 3주년을 맞아 “정상회담의 역사적 의의와 정치적 의미를 다시 한번 새기는 게 좋겠다”며 정상회담의 의미를 애써 추켜 세웠다. 이와 관련, 민주당 관계자들은 “극도로 고조된 대북특검에 대한 비판여론을 의식한 것 아니겠느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또 “지금이라도 대북특검 연장수사를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는 게 민주당 의원 대다수의 주장이다. 여론 역시 ‘DJ예찬론’이 적잖게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이러한 분위기는 신당논의로 힘겨루기 양상을 보이고 있는 민주당내 ‘권력저울’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대북송금 특검수사 연장에 대한 우려가 민주당은 물론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우려는 남북정상회담 3주년을 맞이해 극에 달하고 있다. 시민단체들과 양대노총은 대북송금 특검으로 “6·15 공동선언의 정신이 훼손될 것” 이라며 노대통령의 대북특검 공포를 강도높게 비판했었다. YMCA와 한국·민주노총 등은 대북송금 특검에 대해 “남북 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의 의의에 대해 폄하하는 경향이 등장하고, 사려 깊고 현명한 논의는 실종된 채 또다시 무책임한 정쟁에 휘말리고 말았다”고 지적했고, 경실련은 “한국의 기본정책이 대북화해 및 포용정책임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경실련은 “노무현 정부의 갈팡질팡과 표류가 국민을 더욱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특검에 대한 비판여론은 특검연장 반대로 이어지고 있다. 신당창당으로 몇 개월째 신·구주류간 대결양상을 보여왔던 민주당도 오랜만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DJ의 남북정상회담 3주년 입장표명과 맞물려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특검수사의 부당성과 연장수사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대철 민주당 대표는 “조만간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 특검수사 기한 연장에 반대하는 당론을 전달할 것”이라며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고, 한화갑 전대표도 “남북교류가 특검 대상이 되고 북핵문제 때문에 한반도에 전운이 감도는 현상황에선 국내외적으로 남북교류의 앞길이 순탄치 않다”며 “남북교류를 촉진하기 위해선 6·15의 정신을 그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신당문제로 대립양상을 보여왔던 민주당이 ‘탈DJ’ 분위기에서 ‘DJ예찬’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그동안 ‘친노’를 앞세워 개혁신당 추진을 밀어붙인 신주류 강경파들의 입지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비판여론을 의식한 듯 노대통령도 남북정상회담의 역사적 의미를 추켜세우며, 햇볕정책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평화번영정책의 추진의지를 재피력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미 특검수사는 종반부로 치닫고 있고 그로 인한 국익손실도 상당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담을 순 없는 것 아니겠느냐”는 여론이 팽배하게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노대통령이 특검을 수용한 배경에 대해 지나친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두고 한나라당과 영남권 민심을 의식해 대북송금 특검을 ‘재물’로 삼았다는 것이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대북송금 특검에 대해 “한나라당과 영남민심에 대한 선물”이라고 폄하했고, 문화일보 기자로 활동중인 도올 김용옥 기자도 ‘노대통령, 당신은 통치를 포기하려는가’라는 글을 통해 한명 빼놓고 다 반대하는 각료회의에서 ‘그 문제는 이 정치9단에게 맡겨주십시오’라는 언급을 한 것을 두고, 당내 구주류를 물리치기 위한 정략적 수단으로 특검을 활용했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박준영 전 청와대 대변인도 언론사 기고문을 통해 정상회담이 범죄취급 받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면서 특검을 수용한 배경이 신당을 추진하기 위한 영남정서 달래기라는 정치권 해석이 있다고 지적했다. 노대통령의 현실적 정치적 계산으로 인해 특검이 실시됐고, 남북공동선언이 크게 훼손됐다는 지적이 팽배하다.

익명을 전제한 민주당 중진의원은 “특정지역 표심을 얻기 위해 민족사적 과업을 이용한 셈”이라고 맹비난하면서 “그래서 얻는 것은 지지층 분열과 이탈 뿐이고, 역사적 심판일 뿐”이라고 말했다. 대북특검 연장수사를 주장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부담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나라당 한 핵심인사는 “우리 입장에서야 당연히 특검수사를 촉구할 밖에 없었던 것인데 노대통령이 설마 공포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말하면서 “이런저런 여론을 살펴보면 역사적 과업에 대해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우리 입장도 참으로 난감하다”는 속내를 밝혔다. 핼쑥해질대로 핼쑥해진 TV에 비친 DJ의 모습은 동정을 얻기에 충분했다. 또한 “6·15남북정상회담이 사법적 잣대로 평가돼서는 안된다”는 그의 변함없는 소신을 놓고 찬·반 여론이 팽팽히 맞선 가운데에서도 정상회담의 역사적 가치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반면 대북특검 수사 연장 여부를 놓고 고심중인 노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는 분위기다.

이러한 분위기는 신당추진을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신주류 강경파들의 정치력에도 상당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들어 당내 무게중심이 DJ계인 구주류쪽으로 이동하는 양상을 띠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민주당내 한 핵심의원은 “DJ는 전략과 전술을 어떻게 교묘하게 활용할지에 대해 너무도 잘 았던 정치 9단이었지만, 노대통령은 나름의 전략과 전술은 많지만, 이를 적재적소에 이용할 줄 모른다는게 DJ와의 차이다”고 말했다. 또 그는 “노대통령의 특검수용은 지난 대선때 자신을 지지해준 지지층의 이탈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은 반면 그중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DJ의 정통적 지지층을 더욱 결집하게 만들었다”며 “이제는 노대통령이 아닌 DJ의 결집세력만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특검이 노대통령의 지지층으로 하여금 아노미 현상에 빠지게 하고, 지지층 이탈을 불러왔다는 지적이 팽배히 일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과연 노대통령이 특검수용에 따른 사회 각계의 비판적 여론을 뒤로 하고 연장수사까지 받아들일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