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문재인 정부 장·차관 인선이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현행 정부조직법에 따르면 17개 부처에 17명의 장관 후보자와 22명의 차관급 등 총 39명의 인선이 완료돼야 한다. 지난 13일 기준 장·차관 총 35명이 인선돼 90% 가까이 조각이 마무리됐다. 문재인 정부의 인사는 청와대 참모진 구성 당시 ‘파격 인사’로 전 국민의 시선을 모았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장·차관 인사를 살펴보면 파격과는 거리가 멀다. 이낙연 총리 인사청문회를 기점으로 ‘파격’ ‘변화’를 버리고 ‘장관 임명’을 목표로 잡은 모습이다.

‘2보 전진 위한 1보 후퇴’ ‘현실 정치에 무릎 꿇었다’
야당들 “5대원칙 무시” “청문회 통과를 위한 꼼수”


‘파격’이라는 인사 스타일을 버리고 ‘안정’을 추구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언론과 국민들 사이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인사를 두고 ‘2보 전진 위한 1보 후퇴다’ ‘현실 정치에 무릎 꿇었다’ 등 각양각색의 평이 나오고 있다.

용두사미 인사
속앓이 하는 文 정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김동연 전 아주대 총장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 지명을 시작으로 국무위원 인선을 시작했다. 같은 날 강경화 유엔 사무총장 정책특보도 외교부 장관 후보자에 지명했다.

이후 청와대는 한동안 장관보다 차관 인사에 집중했다. 예기치 않은 이낙연 총리의 인사 청문회 난항 탓이었다. 장관 후보자 발표에 뜸을 들이던 청와대는 첫 장관 발표로부터 9일이 경과한 지난달 30일 더불어민주당 현역 의원 4명의 입각을 발표했다.

행정자치부 장관에 김부겸 의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에 도종환 의원이 각각 내정됐다. 또 국토교통부와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에 각각 김현미 의원, 김영춘 의원이 내정됐다.

지난 11일에는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 법무부 장관에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장, 국방부 장관에 송영무 전 해군참모총장을 지명했다. 또 환경부 장관과 고용노동부 장관에 각각 김은경 지속가능센터 ‘지우' 대표와 조대엽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를 지명했다.

이어 13일에는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에 유영민 전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원장,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 조명균 전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에 김영록 전 의원,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 정현백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를 각각 내정했다.

여기에 추가로 이어진 차관 인선 발표에서 김현수 농림수산식품부 차관, 이인호 산업통산자원부 1차관, 이숙진 여성가족부 차관이 임명됐다.

국무총리 임명 후폭풍
靑 ‘임명부터 하고 보자’


문재인 정부 인사 전략이 바뀐 것은 이낙연 국무총리,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임명 후폭풍 탓이다. 이 국무총리는 청문회 도중 위장전입 사실 등 알려지지 않았던 의혹이 드러나며 예기치 않은 암초를 만났다. 결국 자유한국당은 국무총리 인준 표결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국무총리는 국회의원 표결을 통과했다.

이후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은 김상조·강경화 후보자의 공정거래위원장, 외교부 장관 임명을 반대했다. 당별 찬반을 둘러싼 온도차는 있었지만 두 후보 중 한명은 반드시 낙마시킨다는 각오로 청문회에 임했다.

하지만 김상조 후보자도 결국 공정거래위원장에 임명됐다.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국민의당 등 야당들은 ‘협치 포기’라며 반발하고 강경화 후보 낙마에 올인 한 분위기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야심차게 영입한 인사인 만큼 정부는 임명을 강행할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전 정권 외교부 장관들이 강 후보 임명을 지지하고 나섰다. 그 중에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도 있다.

국민적 여론은 문재인 정부 인사에 호의적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 입장에서는 반대하는 야당을 설득하지 못하고 임명을 강행하는 데 따른 부담감을 떨칠 수 없다. 추경예산 등 해결할 일이 산적한 상황에서 야당과의 갈등은 자칫 국정 수행에 발목을 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은 현실적인 선택을 내렸다. 파격적이고 혁신적인 인재 임명 보다는 청문회를 잘 통과할 수 있으면서 코드가 맞는 인사를 임명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적폐 청산’이라는 개혁 드라이브를 걸어도 부족한 시점에 청문회와 인사에 발목이 잡혀 새로운 정책을 수행할 수 없는 만큼 타개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청문회 통과 히든 카드
현직 의원 ‘장관 소환’


문재인 대통령이 장관 후보자로 임명한 김부겸 의원, 도종환 의원,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 송영무 전 해군참모총장 등은 대선 때부터 이미 하마평에 오르내리던 인사들이다. 대선 캠프에서 요직을 맡아 문재인 대통령 당선을 위해 애쓰기도 했다.

특히 김부겸·도종환·김현미 의원은 현직 국회의원인 만큼 청문회를 통과할 확률이 아주 높다. 과거 역대 장관 청문회에서 현직 의원이 탈락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다. 이낙연 국무총리,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등의 임명을 둘러싼 진통을 보며 문 대통령은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개혁을 추진하고 싶어도 같이 일할 사람이 없다면 문재인 정부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야당들은 한목소리로 비판하고 나섰다. ‘청문회 통과를 위한 꼼수’라는 얘기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야당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개혁을 포기했다’ ‘전형적인 코드인사다’라고 비판하는 언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당초 야당들이 문재인 정부 인사에 대해 비판에 나선 이유는 원칙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시절부터 인사 시 5대원칙 배제를 약속해 왔다. 5대 원칙은 위장전입, 병역면탈, 부동산투기, 세금탈루, 논문표절 등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임명을 발표한 인사들 중 다수가 이 5대 원칙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는 ‘인수위가 없었다’ ‘시간이 없었다’ ‘내용이 다르다’ ‘능력이 뛰어나’ 등의 이유로 국회에 이해를 부탁하며 후보들의 청문경과보고서 채택을 요청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의혹과 명쾌하지 않은 해명에 실망하는 사람도 적잖은 게 사실이다.

주도권 싸움 밀리면
국정 운영도 밀린다?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 보좌관회의에서 “인사청문회 검증 결과를 보고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국민의 몫이다. 대통령은 국민의 판단을 보면서 적절한 인선인지 되돌아보는 기회를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사청문회는 절차에 불과하며 결국 국민 여론이 최종 기준이 된다는 뜻이다.

민심을 존중하는 것은 좋지만 인선의 잣대가 모호하고 여론과 타협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야당들은 문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바른정당은 공식 논평을 통해 “대통령의 논리대로라면 여론조사로 인사청문회를 하고 국정운영도 여론조사로 하자는 말이 된다. 국회가 존재할 이유가 없고, 의회 민주주의는 더더욱 무가치한 것이 되고 만다"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이 정치적 리스크를 무릅쓰고 임명을 강행하는 데에 정권 초반부터 여야 주도권 싸움에서 밀리면 국정을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어렵다는 계산 때문이다. 게다가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80% 안팎을 오가고 있는 자신감도 한몫했다. 하지만 지금이야 말로 ‘협치’와 ‘소통’이 필요할 때다.

오두환 기자  od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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