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지난 13일 연세대학교에서 일어난 사제 폭발물 사건은 국민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사제 폭발물이 대학교 내에서 터졌다는 사실과 최근 들어 사제 총기, 폭발물 사고가 지속적으로 터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일반인이 벌인 범죄다. 인터넷 등이 발달하면서 사제 총기·폭발물 제작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보니 사고가 늘고 있다. 총기·폭발물 등과 관련해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 청정국가로 여겨졌던 우리나라도 이제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

알리바이 만들기 위해 연구실서 3D 프린터 켜 놓기도
비전문가가 만든 ‘못 폭탄’, 폭탄 제조법 찾아내기도 쉬워


연세대에서 일어난 사제폭발물 사건의 범인은 피해자인 기계공학과 A교수의 제자 대학원생 B씨로 밝혀졌다. 당일 저녁 거주지인 대학 인근 한 하숙 빌라에서 긴급 체포된 그는 경찰조사에서 범행을 시인했다. ‘묻지마 범죄’가 아닌 A교수를 노린 사실도 인정했다. 그가 경찰 조사에서 털어놓은 내용들을 통해 범행 시작부터 결말까지 재구성해봤다.

러시아 연수 후
재료 구입해 준비


B씨가 폭발물을 만들어 김 교수에게 상해를 입혀야겠다고 결심한 건 지난 5월 말이다. 수법을 강구하던 B씨는 언론 보도를 통해 본 해외 테러사건을 떠올렸다. B씨는 5월 13일부터 22일까지 러시아에 단기연수를 다녀온 이후 재료를 나눠서 구입하기 시작했다.

폭발물을 만들어 본 경험이 없는 B씨는 하숙방에서 약 2주 만인 지난 10일 못 폭탄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제조법 동영상 하나 참고하지 않았다. 못 수십 개를 담은 텀블러는 연구실에 있던 것을 가져왔다.

전과가 없는 B씨는 범행에 곧바로 돌입하지 못했다. 실행 여부를 두고 고민을 거듭하던 그는 폭발물 완성 3일 만인 13일 새벽 2시 37분에 하숙방을 나섰다. 못 폭탄은 길이 20㎝ 정육면체 종이상자, 쇼핑백에 담았다.

새벽 3시께 제1공학관에 도착한 B씨는 A교수의 방으로 곧장 가지 않았다. 알리바이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건물 내 CCTV를 의식한 B씨는 다른 일이 있어서 온 것처럼 보이기 위해 연구실로 향했고 거기서 실제로 3D 프린터를 작동시켜 놓기도 했다.
B씨는 그렇게 시간을 끌다가 아침 7시41분~44분 사이에 가방에 넣어 가져온 쇼핑백을 꺼내 A교수 방 앞에 놓고 하숙방으로 돌아갔다. 모자, 마스크 등도 쓰지 않았고 예행연습도 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만들어 놓은 시나리오대로 움직였다.

하지만 B씨는 범행 전 제1공학관 4층에 나타난 모습이 CCTV에 찍혀 용의자로 특정됐고 이날 오후 8시 20분경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 조사에서 B씨는 처음엔 “그 시간에 연구실에 간 건 작업 때문이었고 잠을 깨려고 복도를 돌아다녔다”며 혐의를 부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찰의 거듭된 추궁과 장갑에 묻은 화약물질 등 결정적 증거 제시에 결국 고개를 숙였다.

연구 지도과정서 받은
스트레스가 원인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지난 15일 수사결과 브리핑에서 “B씨는 평소 연구 지도과정에서 의견 충돌 등이 있을 때 심하게 A교수에게 반감을 가져왔다. B씨가 이런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던 중 지난달 말 자신이 작성한 논문과 관련해 크게 꾸중을 들은 후 범행도구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A교수는 논문작성 과정에 이견이 있어 교육적 의도로 B씨와 대화한 것이라는 입장을 경찰에 전했다. 그는 교육자적 입장에서 B씨에 대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뜻도 알렸다.

경찰에 따르면 기계공학과 대학원생인 B씨는 연구, 논문 지도와 관련해 다른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A교수에게 꾸중을 들었다. 폭발물 제조 착수에 결정적 영향을 준 5월 말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A교수가 B씨를 차별대우 해 온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경찰 관계자는 “A교수는 다른 대학원생도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종종 혼냈다고 한다"며 “유독 B씨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경찰은 A교수의 지도를 받는 대학원생 9명 중 B씨를 제외한 8명 모두를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다.

B씨는 조사에서 A교수가 ‘욕설'을 했고 ‘인격적 모멸감'을 느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그러나 이 역시 확실히 뒷받침되는 주변 증언은 없다.

경찰 관계자는 “B씨 연구실 동료들은 A교수가 욕설은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면서 “질책을 받는 측에서 느끼는 강도는 주관적이어서 사람마다 다르지 않나. A교수 꾸중에 힘들었다고 한 이도 있고 교수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말한 학생도 있다"고 전했다.

이어 “B씨는 욕설이라고 표현했지만 일반적으로 ‘욕설'이라고 불리는 내용은 아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B씨는 주변 평판도 좋은 편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동료들은 조사에서 B씨에 대해 “평소 매우 성실했던 친구"라고 말했다. B씨가 교수 등 다른 사람과 자주 싸웠다거나 성격이 안 좋았다는 등의 진술은 전혀 없었다. 연구 목적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는 B씨 일기장에도 '연구가 힘들다'는 취지의 내용 정도만 있었다

인터넷 유튜브 등
폭탄 제조법 찾기 쉬워


개인이 벌인 연세대 사제폭발물 사건으로 모방범죄 등 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해외에 비해 총기·폭발물 관련 사고가 적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배달물로 위장된 ‘못 폭탄’이 사용된 만큼 향후 비전문가들인 일반인들이 개인적인 원한 등을 이유로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사제 폭발물 사건은 2011년 5월에 일어났다. C씨가 서울 서초구 강남고속버스터미널과 중구 서울역 대합실 물품보관함에 부탄가스 등을 이용한 폭발물을 넣어 놓은 것이다.

이 때 C씨의 목적은 인명 피해가 아니었다. 범행 전 선물옵션 투자에 실패한 그는 옵션 만기일인 범행 당일 공공시설에 폭발사건이 발생하면 주가가 폭락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하지만 이번에 긴급 체포된 연세대 사건 용의자 B씨는 개인적 불만을 가지고 특정인을 겨냥했다.

문제는 마음만 먹으면 주변에서 쉽게 폭탄 제조법을 찾아낼 수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에 관련 키워드 검색만 하면 폭발물을 만드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동영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재료도 실생활 속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인터넷상 관련 자료 삭제와 통제가 필요한 상황이다. 국내 사이트의 경우는 통제가 가능하다. 하지만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사이트들은 차단이 쉽지 않다. 유튜브 등이 이에 속한다. 가족·친구·국민 등을 위해 방법을 강구해야 할 때다.

오두환 기자  odh@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