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정말 대체복무제 도입으로 해결 봤으면 한다”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지난달 15일 광화문광장에는 푸른색 죄수복을 입은 사람들과 함께 대형 감옥이 등장했다. ‘세계병역거부자의날’을 맞아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에서 병역거부자 처벌 중단과 대체복무제 도입을 촉구하는 ‘옥중 기자회견’을 진행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이슈가 된 지도 이제 15년이 넘었다. 하지만 아직도 병역거부자에 대한 인식이 곱지 않은 게 사실이다. 따라서 아직은 대체복무제에 대한 논의도 진척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대체복무제에 대한 관심이 커짐에 따라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병역거부자 처벌 강제’ 과도한 권리 침해 될 수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 이유로 수감된 사람들 4월 기준 ‘397명’ 

 
‘세계병역거부자의날’은 1981년 세계병역거부자회의에서부터 시작됐다. 이후 국제평화단체인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이 전쟁을 거부하고 총을 들기를 거부한 사람들을 생각하고 병역거부자들과 함께 연대하기 위해 정한 날이다.

지난달 15일 기자회견장에는 그 동안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수감됐다 출소한 병역거부자 약 20여명이 함께 참가했다.

2002년 수감됐던 병역거부자인 나동혁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 활동가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제가 15년 전 병역거부를 선언할 때 저 같은 선택을 하는 이들에게 다른 기회를 달라고 이야기를 했었다. 그 이야기를 할 때만 해도 그 상황이 15년째 계속될지는 몰랐다. 이제는 정말 대체복무제 도입으로 해결을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주최한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의 김희진 사무처장은 “이번에 새롭게 취임한 대통령은 이 사안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어 보인다”며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밝히고 “여태까지 종교와 신념을 이유로 감옥을 가야 했던 이들과 앞으로 감옥갈 준비를 하는 이들에게 정상적인 삶을 되돌려 주기를 기대해 보겠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엠네스티 한국지부는 “올 4월 말을 기준으로 한국에 최소 397명이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이유로 수감돼 있다”며 “전과자를 양산하는 현 제도를 어떠한 방법으로든 개선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밝혔다.
 
대체복무 시기상조?
문재인 대체복무제 도입 OK


정부는 2007년 9월 대체복무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듬해 말 병무청 의뢰로 실시된 여론조사를 근거로 들며 국민적 합의가 부족해 “대체복무는 시기상조이며 현재로선 수용 불가능하다”며 기존 입장을 번복한 후 지금까지 이렇다 할 제도 개선 없이 병역거부자의 감옥행이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해 유엔 자유권위원회가 국제인권법 위반 결정을 내리는 등 국제사회의 반복적인 우려 표명도 이어지고 있다. 헌법재판소 역시 병역거부자 형사처벌의 근거가 되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 제1호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사건을 심리하고 있다. 최근 일선 법원에서는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사례도 늘고 있어 현 상황에 대한 개선 요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19대 대선 후보 시절 국제앰네스티가 제시한 8대 인권의제에 대한 답변서에서 “양심의 자유는 헌법상 기본권 중 최상위의 가치를 가지는 기본권”이므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여,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하여 형사처벌을 받는 현실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대체 수단 마련
불가능하지 않다

 
지난 4월 16일 서울북부지법 형사5단독 이정재 판사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9월 '2016년 10월 25일까지 35사단 신병교육대로 입대하라'는 현역 입영 통지서를 받고도 3일 이상 소집에 응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종교생활을 이유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택했다. 그의 아버지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유로 징역 처분을 받았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을 규정한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 대한 헌법재판소(헌재)의 합헌 결정과 관련해서는 '구체적 법령 해석에 대한 법원의 재량'을 제시했다. 법원이 합헌적 테두리 안에서 법률 해석을 한다면 병역법의 처벌 조항에 양심적 병역거부가 해당하는지 여부도 적극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A씨가 국방의 의무 자체를 저버리는 것이 아닌 이행 방식과 수단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형벌을 적용하는 기준을 보다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종교적 신념, 양심의 자유를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처벌 받고 있지만 그 수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을 근거로 형사처벌만이 적합한 수단은 아니라고 봤다. 특히 형벌은 최후의 수단이라는 점에서 병역기피자가 추상적으로 증가하리라는 가능성만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처벌을 강제하는 것은 과도한 권리 침해가 될 수 있다는 해석도 제시됐다.

또 국가안보라는 중요한 공익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대체수단을 마련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률적으로 형사처벌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병역·예비군법 개정안
발의 나선 이철희·박주민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도를 신설 등의 내용을 담은 병역법 개정안도 국회에서 속속 발의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도를 신설하되 중증 장애인 수발 등 난이도가 높은 사회복지, 보건·의료, 재난 복구·구호 업무를 현역 육군 병사보다 2배 길게 시키는 병역법·예비군법 개정안을 지난달 31일 발의했다.

개정안은 대체복무요원의 업무를 중증장애인 수발, 치매노인 돌봄과 같이 사회 복지, 보건·의료, 재난 복구·구호 분야에서 신체적·정신적 난이도가 높은 업무로 지정했다. 복무기간을 현역 육군 병사의 2배로 규정하고, 엄격한 복무관리를 위해 반드시 합숙 근무시키도록 했다.

대체복무 신청자를 심사하기 위해 국무총리 소속으로 대체복무사전심사위원회를 신설하고, 대체복무요원은 집총이 수반되는 병력동원소집과 군사교육, 예비군 훈련 등에서 제외하는 대신 그에 준하는 공익 업무를 수행하도록 규정했다.

이철의 의원은 “단지 집총을 거부한다는 이유만으로 매년 수백 명의 젊은이를 처벌하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손실이다”라며 “성숙한 민주국가라면 마땅히 이들이 신념과 사상의 자유를 지키면서도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체복무요원을 난이도가 높은 분야에서 현역의 두 배나 되는 기간 동안 복무하도록 한다면 복무기피 목적으로 악용될 우려는 적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개정안 발의에는 더불어민주당 김부겸·김영춘·박용진·송옥주·유승희·이해찬·표창원·한정애 의원과 정의당 김종대 의원, 무소속 서영교·윤종오 의원 등 12명이 참여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도 병역법·예비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주요 내용은 이철희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과 유사하다. 다만 복무기간을 이 의원의 2달보다 적은 1.5배로 정했다. 박 의원은 현재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인 양심적 병역거부 헌법소원 사건의 법률대리인으로 참여하고 있다.

박주민 의원은 “문재인 정부 집권으로 사실상 정치적 여건은 갖춰졌다. 이제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저도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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